회사에 가지 않는 그 첫 번째 날을 기다리며
만화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꿈이었다.
밤늦게 퇴근해서, 새벽 일찍 출근하기 전에 일찍 일어나서 그린다던 그림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했다. 그럭저럭 이상한 간격으로 세 편을 그리고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다시 업무와, 면담과, 회의 속에 파묻혀서 만화 같은 건 물방울만큼도 없는 그런 생활을 보냈다. 벽돌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여서 건물이 되듯, 꿈은 생각지 않은 회색 날들이 견고하게 쌓여 딱딱하고 단단한 내가 되어갔다.
만화 학원을 찾아갔다. 학원비는 무시무시하게 비쌌다. 열두 명의 수강생이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앞에서 현역 만화가가 강의를 했다. 용기를 내어 등록하고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꽤나 그리던 간호사였던 나는 수많은 만화가 지망생 사이에 파묻혔다. 입시 미술을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완전한 초보자였을 뿐이었다. 세상에, 이래뵈도 나는 '그림 좀 그리는 간호사'였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아주 아주 초짜 만화가'일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에요?"
"보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해야지."
"왜 페인트를 쓰지 않고 일일이 칠하는 거죠?"
선생님의 질문은 뾰족뾰족하고 아팠다. 고민하지 않았더 것들,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일일이 생각해야 했다. 능력있는 수강생들 사이에서 나 혼자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앞이 막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