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왔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마침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가 있던 남동생이 도움을 요청했다.
그대로 일본으로 떠났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비행기표를 샀고 훌쩍 떠나 낯선 공항을 지나 낯선 강을 건너 낯선 마을의 작은 집에 도착했다.
반 년간 갖은 고생을 해서 20kg가 넘게 살이 빠진 남동생이 나를 맞이했다.
사실 일본에 오면 그림이 잘 그려질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했다.
신기하고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다가온 것들은 낯선 일상들이었다.
버스 표를 낼 줄 몰라 쩔쩔맸다.
한자를 몰라 길을 잃었다.
사진 보고 고른 음식 맛이 괴상해서 남겼다.
안전한 남동생의 자취방 안에서 동생을 잔뜩 그렸다.
비가 내내 와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원룸에서 굴러다니는 남동생과 함께 굴러다니며 남동생을 계속해서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
멋진 곳에서 살지 않아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에 가면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 가도 제대로 그려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고, 그림 그리는 것은 내 손과 내 뇌일 뿐이다.
여행을 와도 나는 나였다.
나는 나로부터 도망칠 수 없고, 내 실력은 내가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