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제르.
이제 6월 30일이면 갓 한 살이 되는 제르.
인생의 두 번째 여름을 나와 함께하고 있다.
첫째 나미에 비하면 미묘하게 허리가 긴 것 같은 기분이 살짝 들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허리인지 더듬어 봐도 잘 모르겠다.
이중모로 긴 은빛 털과 짧은 회색 털을 갖고 있어 은빛이 자르르 흐른다.
제르와 함께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첫째 나미는 절대로 부엌 선반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물건이 많은 책상 위를 돌아다니더라도 날렵하게 요리조리 피해갔다. 그래서 난 원래 고양이는 저렇게 물건을 피해다니는줄 알았다.
의자 밑을 다닐 때에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용 의자 밑에는 내가 없을 때에만 들어간다. 인간이 앉을 기미가 보이면 잽싸게 멀리 달아난다.
하지만 제르는 그렇지 않다.
이 작고 하찮은 회색 털뭉치는 (차마 고양이라고 부를 수 없다) 후추와 소금 양념통이 있으면 후추, 소금, 간장을 전부 선반 아래로 떨구며 탱크처럼 앞으로 전진한다.
후추통과 소금통, 고춧가루통의 비명이 들리는 것만 같다. 전진은 멈추지 않는다.
이 ‘멈추지 않는 전진’ 은 꼭 선반 위에 있을 떄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이 작은 회색 털뭉치는 우다다를 한다. 우다다라는 것은 고양이가 느닷없이 어딘가로 마구 달리는 것을 말한다. 갑자기 놀고 싶을 때, 제르는 어딘가로 힘껏 달린다.
여기서 나미와 제르의 다른 점이 나타난다.
나미는 달리면서 앞을 본다. 식탁 다리나 의자의 다리, 침대 기둥 같은 것을 날렵하게 피하며 계속해서 속도를 유지하고 달린다. 마치 정상급 로드레이서의 주행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작은 회색 털뭉치는 그냥 달린다. 달리다가 눈앞에 침대 기둥이 있으면 그대로 들이박는다. 머리를 있는 힘껏 침대 기둥에 들이박은 다음 어리둥절해 하며 일어나 다시 달린다. 그리고 또 식탁 다리에 들이받힌다.
제르가 나미와 함께 살게 된 지 어느덧 6개월.
아직, 제르는 앞을 보고 달리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폭주기관차처럼 앞을 보지 않고 달린다.
나는 의자들을 쌓아 포개 책상 밑에 두었다. 옷걸이를 벽에 바싹 붙였다. 책상은... 그냥 책상 자리에 있다. 침대도 마찬가지다.
이제 제르는 달리다가 문에 들이박기도 하고, 벽에 들이박기도 한다. 제르의 돌진에 망설임이란 없다. 후회 따윈 없이 전속력으로 달리고 부딪히고 다시 일어나 멈추지 않고 또 달린다. (그리고 또 부딪힌다.)
어쩌면 내가 저것을 배워야할지도 모른다.
계산하고, 재고, 쉽게 포기해버리지 않고 그저 주욱 달리는 것을.
바닥에 뺨을 비벼보는 회색 털뭉치.
1초간 이러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또 달렸다.
그래, 마음껏 달려라.
벽 빼고 다 치울 테니 계속 달리렴.
(이름을 제르가 아니라 하니라고 지어야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