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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고양이다

제게는 고환이 하나, 있습니다.

하찮은 수컷 고양이와 그의 자그마한 주머니

by 이라하

둘째 제르에게는 아주 명확한 신체적 특징이 있다.


"얘는 진짜 특징이 확실한 애야."

"믹스같지 않고 러시안 블루 같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Y가 제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녹색 눈이 아주 예쁘잖아요. 완벽한 러시안 블루!"

"녹색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는 아주 많아. 그리고 얘는 꼬리와 몸통에 미묘한 태비 무늬가 있어."

"으-음."


Y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얘는 젤리가 분홍색이잖아요. 지금은 조금 회색기가 도는 분홍색이 되긴 했는데. 발바닥이 너무 예뻐요."

"항상 바닥 짚고 돌아다니는데 발바닥을 눈여겨볼 새가 어디에 있어?"

"으---으음."


Y가 턱을 괴었다. 그녀가 웃었다.



"뭔지 알겠어요! 얘 이 표정. 뭔가 굉장히 하찮아 보이는 표정이에요. 얼굴이 찌그러진 것처럼 슬퍼 보이는 거. 이 표정은 진짜 얘만 갖고 있는 것 같아."

"그건 그냥 얘 표정인 거고. 얘가 항상 요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네. 아니, 언니 뭔데요? 왜 말을 안 해줘? 나 답답해! 말을 해달란 말이야!"


어른스러운 Y는 가끔 이렇게 느닷없이 떼를 쓰는 경우가 있다.

나는 진지하게 얘기해 주었다.


"얘는 불알이 한쪽밖에 없어."

"네?!"



Y는 발라당 누워 있는 고양이의 사타구니에 눈길을 두었다.

흔들리지 않는 곧은 시선은 한참 동안 멈추지 않았다.


"고환이 왼쪽밖에 없네요..."

"그렇지."

"진짜에요?"

"그럼 가짜겠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거예요?!"


간호사 출신인 나는 잠복고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인간의 경우에는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 고환이 복강에서 음낭으로 내려오게 되거든. 근데 내려와야 할 애가 안 내려오면 그걸 잠복고환이라고 해. 고환은 시원한 곳에 있어야 하는데 뱃속에 있으면 따끈따끈해서 정자가 생성이 안 되서 문제가 생기지."

"아니, 인간 말고요! 얜 고양이잖아요!"


Y는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인간의 간호사 출신이고 고양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수의학 논문을 몇 건 검색해 봤을 뿐이다.


"얘도 어딘가에 고환이 있을 거야. 아마도 뱃속에?"

"그럼 어떡해요?"

"인간 아기는 원래 태어나서 70퍼센트는 3개월 내에 고환이 알아서 내려오게 되거든. 고환이 잘 내려올 수 있게 배 마사지를 해 주자..."

"아니, 또 인간 얘기야! 인간 남자의 잠복고환은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언니!"


나는 Y를 빤히 바라보았다. Y는 진정하고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고양이도 70%가 고환이 내려온대요?"

"10개월까지는 내려올 수도 있다고 하니까, 잘 내려오라고 배 마사지를 해 주려고."


그때는 아직 제르가 7개월이었다.

배를 문질문질해서 털을 쓰다듬어 주자 고양이는 좋아하지 않았다.


고양이 두 마리의 건강을 기원하며 그린 Y(세모입)의 수채화. 나미와 제르.


매일같이 배를 문지르고 11개월이 되었지만 고환은 내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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