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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고양이다

여행과 고양이

고양이는 나와 함께 여행을 가지 않는다

by 이라하

중국에 갔다.


——-배를 타고 가던 중 지나친 섬.


여행가기 전 제일 마음에 밟혔던 것은 우리 고양이들이었다.

3박 4일 동안 Y가 고양이를 돌봐주기로 했다.


중국 호텔에서 밤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면서 고양이 생각을 했다.


'지금쯤 우리 나미가 돌아다니다가 내 배를 밟을 시간인데.'


하지만 나미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나타나서,

작고 토실토실하고 따뜻한 발이 내 배를 밟고 지나가는 일은 당연하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삼박 사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열여덟 시간의 긴 항해를 끝나고 인천항에 도착했다.


다시 한참 시간이 걸려서야 작업실에 도착했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조그마한 고양이 두 마리가 문 앞에 뽀르르 달려나왔다.


"애애앵. 애애앵. 애애애애애애애앵."


첫째 나미를 안아올렸다. 작은 얼굴을 손목에 부비며 아기처럼 나지막이 울었다.



연수가 옆에서 거들었다.


"언니 없는 동안 얘가 밥을 잘 먹지 않더라구요."

"그래요?"


잘 먹는 파우치를 열어 40g을 붓고, 그 옆에는 다시 건사료를 놓았다.

파우치 수프에 달려들어 허겁지겁 분홍빛 혀로 쪽쪽 바닥을 핥는 나미를 보며 연수가 어이없어했다.



"얘는 진짜 언니가 있어야 밥을 먹네요."

"또 며칠 지나면 잘 먹는데. 그 기간 전에 내가 돌아왔군."


같은 사료, 같은 공간인데 사람이 바뀌었다고 밥을 덜 먹는다.
평생 이 사료를 먹을 것도 아니고.
평생 이 집에서만 살 것도 아니고.
평생 내가 얘 곁에 있어주려고 노력하겠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닌데.


안타까우면서도 내심 약간은 좋은 나는

이기적이다.

고양이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가슴 속 은밀히 기뻐한다.


조금씩 변화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렴, 큰 고양아!



물론 둘째 제르는
밥주는 사람이 바뀌든 말든
공간이 바뀌든 말든
사료가 바뀌든 말든
아무래도 상관없이 밥을 잘 먹는다.


허허.


그래, 네가 최고다.




작은 털뭉치들아.

잘 먹고, 잘 자고.

오래오래 건강하렴.


이라하는 저스툰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를 연재하는 만화가입니다. 5월 31일 단행본 1권이 발매되었습니다.
고양이다! 매거진은 이라하, 세모입, 최은경 세 명이 함께 하는 고양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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