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릿 슈즈를 신고 달렸다.

그릿그라운드&얼바인 트레이닝, 그 첫번째 날.

by 이라하

아침에 무사히 도착했다. 헤매서 늦을까 미리 출발한 보람이 있어 늦지 않았다.



도착해서 서먹서먹하게 탁자 앞에 앉아 있는데...

의자가 모자랐다.


교육생은10명.

마케팅부 대리님 1명.

육지영 코치님 1명.

육지환 트레이너님 1명.

의문의 직원님 1명.


하지만 앉을 수 있는 사람은 8명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했는데

코치님과 트레이너님이 서 계신데 앉아 있어도 되는 건가... ?


코치님은

“이곳은 운동하는 곳이라 의자가 없어요.” 라고 대답해주셨다.


교육이 시작되면서 A팀, B팀 두 조로 나뉘었다.



나는 먼저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는 조에 속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있었다.

이런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웹툰작가들 중에서는 꽤 체력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만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을까?


당장 나와 함께 행아웃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멤버 6명 중에서는 내가 제일 체력이 좋다(아마도).

잠시 생각해보니 아는 사람이 적어 후보군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다.

이건 후보 집단이 너무 적으니까 사실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언젠가 만화가의 체력에 대한 연구를 해서 내 체력이 만화가들 중에서는 비교적 좋은 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 현실도피를 하는 사이에 너무 멀리 왔잖아.


힘들고 괴로웠던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을 생각하니 지금도 허벅지가 땅기는 것 같다.


문제는 이 나에게는 힘들고 괴로웠던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이

트레이너 님에게는 너무나 쉬운 시간이었다는 것...


그래서 오늘 한 낙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마치고 나서,

와트바이크 트레이닝을 했다.


이 와트바이크라는 것은 대단히 비싸 보이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까맣고 반짝반짝한 바퀴 달린 고정 자전거다.

클릿 슈즈를 착용하고 타야 한다.


이 클릿 슈즈라는 것은 자전거 선수들이 착용하는 특별한 신발인데,

여러 브랜드에서 나와 있다.



주 목적은 페달과 자전거용 신발을 결합하는 것.

마치 암나사와 수나사가 결합해서 좀더 단단하게 벽에 선반을 박을 수 있는 것처럼,

페달과 신발을 붙여놓고

"자! 선수들! 페달을 밟을 때만이 아니라 페달을 밟고 다리를 올라오게 할 때에도 힘을 써서 페달을 올리시지!" 라고 잘난 척하는 물건이다.


이 물건의 무시무시한 점은 또 다른 데에 있다.

처음 클릿 슈즈를 착용한 사람들은 반드시 넘어지게 된다는 징크스! ...가 있다.


자전거 동호회에서는 이걸 '클빠링' 이라고 한다.


동호회에서는 '저 클빠링 했어요.'

'저 3빠링 했어요.' 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2015년에 자전거 페달을 평페달(보통의 평범한 페달)에서 클릿페달(클릿슈즈 전용 페달)로 교체한 나는...

클빠링이 무서웠다.


넘어지는 것은 무섭다.

요즘에는 손목을 쓰지 못하는 것이 더 무섭다. (일은 해야 먹고 살지...)


2016년에는 클릿 슈즈를 사지않고 평페달화를 신고 자전거를 탔다.

평페달화는 끈이 달렸고 아주 멋있게 생겼다. 꼭 프로 같았다. 그걸 신고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페달을 다시 평페달로 교체하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클릿 슈즈를 신고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2017년에도 나는 거의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살이 쪄서 더이상 평페달화를 신을 수 없었다. 병원을 그만두고 만화가를 하게 되면서 8kg 이상 살이 쪘다. 그렇게 되니 신발이 들어가지 않더라. 아쿠아 슈즈는 물을 흡수하는 기능이 있어서 그런지 쭉쭉 잘도 늘어났고, 그래서 신을 수 있었다.

그리 많이 타지는 않았다. 1년간 50km 정도 탔다.


2018년의 나는... 큰맘 먹고 클릿슈즈를 샀다. 쿠*에서 저렴하게 할인하고 있는 브랜드 슈즈를 보고 혹해서 샀다. 내 자전거가 파란색과 흰색, 녹색이 섞여 있는데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신발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신발을 사서 신어 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지그재그로 묶여 있는 끈은 현란하고, 똑딱 버튼과 뜨르르륵 체결되는 잠금장치는 아예 풀 수도 없었다. 평범한 신발끈과 찍찍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클빠링이 무서웠다. 내 오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체 모를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새 신발을 신어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선반 속에 올려두고 먼지만 쌓여갔다.


그러다가 이벤트 프로필 촬영이 있었고, 클릿슈즈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었다.




신발을 제대로 잠그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

그걸 보니까 너무 행복했다.


신발을 신을 수 있으니까, 달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얼바인&그릿그라운드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전부 클릿 슈즈를 필수 지참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배낭에 클릿 슈즈를 넣고, 평소 신는 샌들을 신고 자전거를 끌고 갔다.


'클릿 슈즈가 필수라고는 했지만, 꼭 신어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마음 편한 생각을 하면서 갔는데


맙소사 ㅋㅋㅋㅋㅋ


첫날부터 신발을 신으라는 거다!!!


자연스럽게 '앗,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습니다. 50년쯤 있으면 신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면서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신발을 신을 줄도 몰랐다.


당시의 내 마음은 정말로...



이런 느낌이었다...


(물론 실제의 육코치님은 안선생님과 비교할 수 없는 미인이시다! >_)b)


다행히 육코치님과 육트레이너님, 의문의 직원A님이 도와주셔서 신발 장착은 무사히 완료했다.


신발을 신고 보니 세상에!!

이 신발을 신는 것 자체는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신발 속에 발을 밀어넣은 다음에,

하얀 레버를 돌리고,

고정 장치를 느슨하게 했다가 다시 조이면 되는 것이었다.



와트바이크-(결국 짱 비싼 고정 실내 자전거;;;)-의 클릿 페달에 클릿 슈즈를 끼우고(!!)

페달을 돌리고 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주 오랜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돌아올 때는 클릿 슈즈를 신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다.



혹시 넘어질까봐 예전에 보아두었던 팁대로 왼발만 클릿을 체결하고, 오른발은 그냥 밟다가.

오른발만 클릿을 체결하고 왼발은 그냥 밟다가.



페달을 돌리는데 유난히 씽씽 나갔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던 오후의 하늘은 파랗고 예뻤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도 후덥지근하니 사우나같고 좋았다.

중간 중간 있는 아리수 음수대에서 멈추어 팔다리에 물을 뿌리며 달렸다.


집에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해있는 한양대 공과대학 건물도 오늘따라 잘생겨 보였다.


좋은 날이었다.


p.s.




집에 도착한 후에는 체력이 완전 방전되어 그대로 너덜너덜하게 뻗어서 세 시간을 잤다.

원래 오후에 작업을 조금 할 계획이었는데, 앞으로는 토요일 일정은 완전히 비워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