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락사스의 방

-[짧은 소설] 이란(장성희)/ 게임 중독

by 이란

이 글은 『문학인신문』에 게재된 저의 짧은 소설입니다. 현실의 힘겨움 속에 가상세계로 탈출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빛과 어둠처럼, 가상과 현실이 교차합니다. 둘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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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created with Microsoft Copilot (AI illustration tool)




게임 아이디는 아브락삭스. 로그인 후 펼쳐지는 화면은 아름다운 전쟁터이다. 현실을 압축해 놓은 그곳에서 나는 적들과 싸우고 레벨 업을 한다. 함께 하는 이들은 협력자인 동시에 경쟁자이다. 눈부신 아이템들은 적을 확실하게 처단하기 위한 수단이자 자기 과시이다. 모두가 나를 본다. 수치화된 나의 경험치와 무장하고 있는 강력한 아이템들이 내 존재를 드러낸다.



나는 그 화면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나 드라마는 수동적으로 감독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게임은 아바타를 통해 직접 플레이할 수 있다. 가상 세계는 몇 번을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신이 만든 세계이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도 나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나는 아바타의 가면을 쓰고 그곳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시작이 어디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처음에는 게임이 현실을 보조했고 지금은 현실이 게임을 보조한다는 것이다.



마우스를 컨트롤할 때마다 파괴되는 적들을 본다. 더 센 적을 만날 때는 더 강하게 무장해야 한다. 그동안의 경험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온다. 순수하게 게임 경험치로 살 수 있는 아이템에는 한계가 있거나 그 아이템을 얻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빠르게 좀 더 빠르게.’ 현실과 가상 세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버튼 몇 번을 클릭해서 아이템을 구입하면 된다. 다른 상대를 본다. 파괴력이 상당한 아이템을 여러 개 구비한 다른 캐릭터를 보면, 얼마를 썼는지 대략 가늠이 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을 갖을 수 있는 방법은 개인 거래를 통한 구매뿐이다. 몇백만은 가볍다. 이곳에서도 능력은 각자 다르다. 그리고 그 능력의 차이는 수직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돈을 쓰면 된다. 후자가 더 빠르고 쉽다. 일단 시작했으면 잘해야 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태어났으면 잘 살아야 한다.



아브락삭스는 잘 나가는 캐릭터이다. 고급 아이템을 구비하고 강력한 적들과 싸워서 가볍게 승리한다. 플레이할 때마다 나는 캐릭터에 나의 자아가 흘러 들어감을 느낀다. 그리고 전율을 느낀다. 갑옷과 무기는 스스로를 지키는 동시에 자아의 표출이다. 눈부시고 화려할수록 좋다. 모두 나를 중심으로 모이기를 원한다. 승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선망하는 타인의 시선을 받아본 적 있는가?’ 그 시선은 일종의 중독이다. 그 의미를 알고 나면, 그 시선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다.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남들이 바라보는 곳으로 가야 한다. 더 높은 곳으로.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아브락삭스는 그곳에 있었다.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피우던 담배를 끄고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300만 원의 현금 이체를 알리는 은행 푸쉬 알림이었다.



“용준아! 지난번에 원서 넣은 곳은 어떻게 되었니?” 어머니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명문대 로스쿨을 졸업할 때까지 집안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 5년이 지나도록 합격 소식은 없었고 어머니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괜찮은 회사에 취직하면 되는 거야.” 3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오후 3시 같았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좋은 회사에서 신입사원으로 일하기에 나의 나이는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높이를 낮추면 주위의 시선이 걸렸다. 같은 로스쿨을 졸업한 동기들 중에는 유명한 로펌에 취직해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 사람도 있고, 대기업에 법률 자문직으로 취업한 이들도 있었다. 또는 자력으로 개인 사무소를 차린 이들도 있었다. 그가 동기들과 나란히 서기는 힘들었다. 공부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시험운은 없었다. 마지막 패배를 알게 된 순간에는 안에 있던 모든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공부하다 기분전환을 위해 하던 게임에 몰입하게 된 계기였다. 게임을 알게 해준 동기 “해성”은 합격 후 꽤 유명한 로펌에 입사했다. 해성은 합격 후 파티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술에 취한 나는 해성의 멱살을 잡았다. “거지 같은 새끼가 시험 하나 합격했다고 거들먹거리기는.” 말 그대로 해성은 뒤가 없는 처지였다. 입사 후 로스쿨 졸업을 위해 대출받은 돈을 갚아야 했다. 공부하는 동안 여유가 있었던 나와는 달랐다. 어머니는 집안 기둥이라며 공부만 하라며 매달 생활비를 주셨다. 뭐든지 지독하게 해야 하는 해성과는 달랐다. “너는 변호사 못 하면 슈퍼 차리면 되겠다.” 해성은 농담 반 진담 반처럼 그런 말을 뱉고는 했다. 그런 해성도 남들에게 지기 싫어 게임을 하고 있었고 하던 게임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해성은 게임에서 상당히 낮은 레벨이었다. 갖고 있는 아이템도 별로 없었다. 현실에서 밀린 나의 자아는 게임 속에서 새롭게 거듭나고 있었다.



변호사의 꿈이 사라지고 어머니의 지원은 공식적으로 끊어졌다. 하지만 어머니가 내게 숙식비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통장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버틸 만큼의 현금이 있었다. 나는 그 돈을 게임을 위해 썼다. 그리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게임 속에서 나의 자아는 아브락삭스를 통해 인정받고 있었다. 문제는 방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였다. 목표가 사라지고 그 목표가 아닌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의 무게는 매일 새롭게 다가왔다. ‘해성의 말처럼 슈퍼를 차려야 하나.’ 문득 스친 생각에 쓴 웃음만 나왔다. 무슨 일을 하든 돈은 벌 수 있다. 그리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신분이 다르다. “너 우리 사무실에서 사무장 해라.” 개인 사무소를 차린 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사람보다는 네가 믿을 수 있고 좋다.” “아니, 괜찮아.” 길게 생각하지 않고 거절했다. 어머니가 매달 용돈처럼 주던 돈을 받으며 그 밑에서 일할 생각을 하니 지옥으로 떨어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재벌만큼은 아니지만 돈은 있을 만큼은 있었다. 생각하니 머리가 무거웠다. 다시 PC를 켜고 게임에 로그인한다.



게임을 언제 끝냈는지 모른다. 지칠 때까지 하다 잠이 들면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혜진이었다. “오늘 만날 수 있을까?” “그래.” 카카오톡으로 해도 될 이야기를 직접 전화로 전한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 사실, 문제는 변호사 시험에 최종으로 낙방했을 때부터 있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결혼하는 것이 정해진 절차였다. 그런데 그 그림이 깨져 버린 것이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나일까, 나의 미래일까. 나는 혜진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 청혼을 기약 없이 미룬 채 게임의 세계에 빠져들 뿐이었다. 혜진은 처음에 아침이면 기운 내서 공부하라며 애정 어린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여유가 있던 나는 그녀를 데리고 해마다 하와이며 유럽을 여행했다. 마치 합격은 정해진 수순인 것처럼 행복한 수험생활을 했던 것이다. 카페에서 서빙을 하며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혜진은 작은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남자 친구가 비록 직업이 없어도 둘의 연애는 따스하고 즐거웠다.



카페에서 만난 혜진은 캬라멜 마키아토를 주문했다. 쓴 커피를 싫어하면서 꼭 커피를 주문하는 그녀가 독특하게 느껴졌다. 혜진은 청첩장을 건넸다. 그 안에 혜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랑은 공교롭게도 해성이었다. “설마 지금 나를 초대하려는 건 아니지?” “아이를 임신했어.” 동문서답이었다. “언제부터야?” “오빠가 합격하고 내게 사귀자고 했어.” 그녀의 오빠는 내가 아닌 해성이었다. “그리고 회사 합격한 후에 청혼했어.” 내가 원하는 것은 해성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혜진이 무엇을 선택했느냐였다. “너 그 자식 사랑해?” “오빠는 내게 청혼한 적 없잖아.”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고 미래를 응원하고 함께 밤을 보내고 여행한다. 그런데 그런 관계를 확인하는 방법이 청혼이라는 절차뿐인지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한 번도 그녀가 내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모두가 커피를 마시는 카페에서 커피 아닌 다른 것을 마시고 싶지 않아 한없이 달콤한 캬라멜 마키아토를 고르는 혜진의 선택이었다.



카페에 혜진과 청첩장을 던져둔 채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해성이 시험에 합격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해성은 나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혜진이 떠난다 해도 상관없었다. 연애는 언제든지 할 수 있고 하는 그동안 즐거우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 더러운 것을 삼킨 것처럼 밑바닥부터 솟구치는 역겨움을 누르기 어려웠다. 그래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깊은 연기가 폐부에 닿아 모든 감정을 뒤덮기를 바랄 뿐이었다. 집도 차도 없이 빚만 있는 해성에게 밀렸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인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며 화려한 수험생활을 하던 결과는 싱글에 백수라는 꼬리표로 남겨졌다. 담배가 꽁초가 될 때까지 피우다 엑셀을 밟고 바에서 술을 잔뜩 마신 후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술에 취한 아들을 말없이 침대에 누인 후 방을 떠나셨다. 게임이 없는 방 안은 온통 새카만 어둠뿐이었다.



타는 듯이 속이 쓰려 눈을 떴다.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잔뜩 마셨다. “내가 너를 잘못 키운 것 같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아버지 없이 키운다고 더 욕심을 부린 것이 화가 된 것 같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의 뜬금없는 말에 언성이 높아졌다. “너는 열심히 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촌스러운 소리 그만 하세요.” 밀리면 죽는다. 동물의 세계의 법칙이다. 죽음은 순환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동물은 그 안에서 죽지 않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가. ‘열심히’라는 단어는 시대착오적인 단어이다. “저더러 지금 슈퍼라도 차리라는 건가요?” “거기 직원이면 어떠니?” 나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가 너를 판단하는 잣대라고 생각하니?” “현실이 그래요.” “나는 네가 공부를 좋아하니까 할 수 있는 한 공부만 잘하라고 지원한 거야. 누군가 위에 군림하라고 한 게 아니라.” “혜진이와 헤어졌어요.” “인연이 아닌 거야.” “그만 하세요!”



모두가 나의 현실을 비웃고 있는 듯한데 어머니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나를 꾸짖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아무 일이나 하면서 아무 취급이나 받으라는 것인가. 차라리 재벌 집안에 태어나야 했다. 회사 하나 차릴 만큼 부유한 집안이었다면 모든 것이 간단하지 않은가. 기껏 시험 하나 겨우 합격한 새끼한테 밀려서 여자를 빼앗기는 치욕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버리면 내가 버리지, 버려지고 싶지 않다. 이런 감정이 잘못된 것인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래가 장밋빛일 때는 평생 함께할 듯 꿈을 꾸다가 좀 더 나은 선택지가 나타나면 돌아서는 것이 현실이다. 반짝이고 싶은 것이 잘못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알을 깨고 새가 되어 날아간다. 아브락삭스를 향해. 나는 새가 되고 싶었다. 나만의 색깔을 가진 새. 알 껍질에 갇힌 채 죽고 싶지 않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존재한 적이 없다. 앞으로 그럴 것이다. 마르크스가 꿈꾸던 이상 사회는 결국 실패했다.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자본주의가 살아남았을 뿐이다.



‘당신의 아브락삭스는 선인가요? 악인가요?’ 채팅창에 말을 거는 이의 아이디는 ‘해피’다. 아이템 거래도 아닌 이런 류의 질문에 할 일 없이 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템도 고급이고 레벨도 높고 당신이 나를 무시해도 이해해요. 아마도 당신은 둘 중 하나일 거에요. 현실에서도 잘 나가는 사람이거나 그 반대로 완전히 폐인이거나.’ ‘후자라면은 당신의 통장 잔고를 조심해요. 이곳은 행복을 파는 곳이 아니라 그 반대니까요.’ ‘당신은 누구죠?’ 처음으로 해피에게 말을 건넸다.



그가 사기꾼이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무언가 색다른 면이 보여서 궁금했다. ‘게임 세계의 끝을 보고 다시 돌아온 사람이에요.’ 사실이 그랬다. 그의 경험치도 아이템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한 달 안에 당신 위에 있을 거에요.’ ‘어떻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면 돼요. 당신도 이미 어느 정도 알지 않나요?’ ‘나에게 말을 건넨 목적이 뭐죠?’ ‘외로워서.’ ‘당신은 행복한가요?’ ‘행복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물었다. ‘내 위에 있으면 행복한가요?’ ‘당신이 나를 선망한다면 그럴 것 같아요.’ ‘당신은 지금 내가 부러운가요?’ 해피는 답이 없었다. 아브락삭스는 어느새 해피를 찾고 있었다. 그가 어느 위치에 있고 어떤 아이템을 구입했는지 확인했다. 나는 거울 속 용준을 향해 물었다. 게임 밖 나는 어디에 있는가.



출처 : 문학인신문(http://www.munhak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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