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안고, 나를 바라보다

[짧은소설] 장성희(이란)/ 그와 그녀의 시선

by 이란

완벽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틀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이뤄내는 삶이 진정한 완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인신문에 실린 제 짧은 소설입니다.

https://www.munhakin.kr/news/articleView.html?idxno=5968


Illustration created with Microsoft Copilot (AI illustration tool)


[짧은소설] 장성희(이란)/ 그와 그녀의 시선


그녀의 시선



핀 적 없는 꽃에서도 향기가 날까. 보여지는 모든 것에서 완벽이라는 틀에 갇힌 채 잃은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갖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좋은’이라는 단어에는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고 ‘나’는 그곳에서 설 자리가 없다. 선택에 있어서 고민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이미 정답으로 채워진 답안지와 같았다. 고민이 없어서 간단해 보이지만 노력이 필요하고 그 뒤에는 부모님의 기대가 자리해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자랑스러운 딸의 모습은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님의 설계도를 따르는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 모습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의외로 편안했다. 주변의 시선은 늘 부러움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누구에게도 거절당하지 않았다. 예쁘고 똑똑하고 능력있는 여자는 그 누구에게도 비굴해질 일이 없었다. 남자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남자를 선택할 수 있다. 결혼도 윈윈이 될 수 있는 삶의 연장선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 없다. 나의 모든 것을 던져 상대를 일으켜 세우는 희생도 없다. ‘그 누구보다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가장 좋은 것을 입고 배우며 그러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셨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오류와도 같았다. ‘노력하고 경쟁해서 높은 곳에 오르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가야 한다.’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 했다. 결혼도 그 과정의 일부였다. 학벌부터 직업까지 내가 이루어 놓은 결과물을 빛나게 해줄 남자를 만났다. 부모님은 흡족해 하셨다. 누구에게 보여도 자랑스러운 사위이니까. 다정한 그의 인품까지 헤아려 결혼했지만 나는 그를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로서 선택했을 뿐 설레임은 없었다. 그를 존중하지만 희생이라는 단어까지는 떠오르지는 않는다. 부모님이 말씀하신 자기애는 사회적 시선을 충족하는 것이지 나의 내면적 욕구에 부응하지는 않았다. 가지치기를 하듯 나는 그러한 감정들을 잘라냈다. ‘저 남자는 학벌이 모자라.’ ‘저 남자는 인물이 부족해.’



커튼을 열자 햇살이 쏟아졌다. 봄날 아침이었다. 아이가 봄볕처럼 달려들었다. 샐러드,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오븐에 구운 통밀빵을 접시에 담아냈다. 아이는 우유부터 마셨다. “천천히 마셔. 체해.” 모범생인 남편을 닮았는지 아이는 깨우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완벽주의자라서 숙제라든가 준비물이라든가 무언가 빠지는 것이 싫어서 아침 일찍 책가방을 미리 한 번 더 챙겼다.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였다. “오늘 학교 끝나고 뭐하니?” “오늘은 수영 배우는 날이에요.” 아직 어려서 공부 이외에 다양한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 중 하나가 수영이었다. “끝나는 시간에 엄마가 데리러 갈게.” “엄마 회사 오늘 일찍 끝나요?” “응.” 나는 뽀얀 아이의 뺨을 매만졌다. 엄마품이 그리워 밝게 웃는 평범한 초등학생 남자아이일 뿐이었다. 가끔은 아이의 방과 후 활동에 그런 식으로 찾아가 아이가 잘 지내는지 살폈다. 시간이 나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만들어서 가는 것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급한 회의가 있어서 일찍 출근했다는 내용이었다. ‘바빠도 아침 잘 챙겨 먹어요. 나는 현우와 함께 학교 가요.’ 일상적인 내용으로 답장을 보낸 후 아이와 함께 차에 올랐다. 책가방을 맨 채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옹기종기 모여가는 모습이 병아리들 같았다. 현우를 학교 앞에서 내려주었다. 늘 그렇듯 아이는 나의 뺨에 가볍게 키스하고 학교로 향했다. 봄바람처럼 설레는 키스였다. 나는 그 어떤 남자도 현우만큼 사랑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아이 앞에 서면 손 끝에 닿은 비스킷처럼 잘게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회의 끝났어. 당신, 회사 운영하기도 힘들텐데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어때?’ 가끔 한번씩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일만 하는 자신과 달리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내가 지독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현우 좀 더 크면.’ 그만둔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현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핸들을 돌려 회사로 향했다.



보름에 한 번 꽃가게에서 꽃을 샀다. 사무실에 놓을 꽃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 직접 골랐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어떤 꽃으로 하실 건가요?” “하얀색 히아신스 주세요. 다른 꽃들은 적절하게 섞어서 주세요.” 나는 그의 선택을 믿었다. 그 이유가 단지 유명 패션지에 소개된 플로리스트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잡지에 실린 사진이 마음에 들어 이곳으로 온 지 3년이 흘렀지만 부족하다 느낀 적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느낌이 그의 꽃에 담겨 있었다. 메인으로 할 꽃만 정하면 나는 그가 꽃다발을 채우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 날의 날씨를 읽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옷이나 구두 또는 나의 표정을 읽었다. 그러한 모든 정보들이 그가 꽃다발을 만드는 데 반영되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고 그 결과물을 보름 동안 즐길 수 있었다. 그는 하얀색 히아신스에 그 무엇도 더하지 않았다. 그 위치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살필 뿐이었다. 순백의 종이가 꽃을 감쌌다. 여러 꽃을 더할 때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새하얀 히아신스를 한아름 안고 가게를 나서는 내게 그가 건넨 인사였다.



그의 시선



꽃이 좋아 꽃과 함께 했다. 어린 시절 초대받은 결혼식에 어머니를 따라 가서 본 꽃장식은 유난히 눈부셨다. 하얀 장미는 우윳빛 드레스를 입은 신부에 대한 경의였다. 함께 했던 어머니의 장례식을 따스하게 위로해주던 것도 꽃이었다. 새하얀 국화는 정갈한 모습 그대로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꽃은 내게 선물이고 위로였다. ‘사내는 예술을 가까이 하면 유약해진다’며 반대하던 아버지를 두고 고등학교 때 프랑스 유학을 선택했다.



다시 돌아와 서울에 꽃가게를 차렸을 때 아버지 옆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아버지의 숨겨진 유약함을 이제는 다른 여자가 품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이야기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늘 밖에 있었고 어머니는 늘 내 안에 있었다. ‘강한 사내’였던 아버지에게 아내도 자식도 자신의 삶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했다. 꽃을 사랑한 나는 그런 아버지를 경멸했다.



꽃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어우러져서 더 큰 무언가가 될 뿐이다. 나는 플로리스트가 꽃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꽃 한 송이가 놓일 자리를 정확하게 찾아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게 한다. 꽃의 세계는 고요하고 평화롭다. 서로 짓밟고 올라서려는 인간의 세계와는 다르다. 집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의 물건은 모두 창고에 들어가 있거나 불타 없어진 상태였다. 아버지를 떠난 나였기에 무언가 더 말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저녁식사 시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너는 인사 한 마디 할 줄 모르는구나. 버릇 없게. 어머니가 너 없는 동안 얼마나 혼자 힘들었는데.” “죄송하지만 어머니는 제게 한 분 뿐이에요.” 나는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직 젊다. 아버지를 남편으로 두기에는. 화장이 고왔지만 그럴수록 옆에 선 아버지가 추해 보였다. “저는 괜찮아요. 부담 주기 싫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식사 마치고 곧 제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어머니의 유품을 창고에 처박듯 나 또한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어머니의 그림자일 뿐이니까. 도망치듯 빠져나온 집은 더 이상 나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그동안 얼마나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을까. 그녀의 괜찮다는 말에 소름이 끼친 것은 가면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것을 부수고도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내 앞에서 미소를 짓는 모습이 공포스러웠다. 차라리 식사 자리가 불편하니 피하라고 이야기했다면 좀 더 자연스러웠지 않을까.



내가 애써 아버지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한 것처럼 그녀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결혼 역시 그녀에게는 해치워야 하는 절차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감내하느라 그녀는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까지 더해서.



방안에 들어서자 고양이가 반겨주었다. 소파에 앉아 무릎에 앉은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달빛이 스민 방안은 한없이 고요했다. 유학생활은 너무나 외로웠다. 꿈을 갖고 스스로 선택한 삶이지만 힘든 시간 속에 기댈 곳 없는 외톨이라는 생각이 밀려들면 솟구치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아버지와의 연락은 인사치레였다. 어쩌면 어머니의 죽음으로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나는 더욱 꽃에 집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꽃은 감정이 없다. 내가 갖는 애착조차 꽃에게는 무의미할 뿐이다. 방황하는 이들을 보았다.



유학생활 속에서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이들을. 젊음은 그 순간 속에서 너무나 길기 때문이다. 반짝임은 타인의 눈에 보일 뿐. 자신에게는 족쇄일 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그 모든 어둠을 밀어내려는 현재의 고단함까지. 나는 방황 대신 고양이를 선택했다. 하루 온종일 꽃을 만지고 남는 시간을 고양이와 함께 했다. 그를 돌보는 것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결과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손을 뻗어 보드 판에 붙여 놓은 기사 하나를 손에 쥐었다. 3년 전 이 기사를 가지고 가게를 방문한 여자 손님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파란색 히아신스를 주문했었다. “히아신스를 좋아하시나요?” “네.” 그녀는 짧게 답했다. “하아신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히아킨토스’의 이야기가 담긴 꽃이에요. 그는 매우 아름다운 남자여서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어요. 하지만 원반 던지기 중 사고로 죽게 되고 그의 피에서 피어난 꽃이 히아신스라고 해요.” “꽃에 관한 이야기를 알지는 못해요. 저는 단지 이 기사에서 플로리스트 분의 작품을 보고 이곳에 온 것처럼 우연히 저 꽃을 보고 마음에 남아 종종 책상 위에 두고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면 일로 생긴 스트레스들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라서요.” “히아신스는 누군가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꽃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꽃을 제가 좋아하는 플로리스트 분에게 맡기고 싶었어요. 제게는 나름대로 중요한 순간이에요.” 그녀가 가볍게 웃었다. 고급스런 베이지색 정장을 갑옷처럼 입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따스한 미소였다.



꽃을 받아 들고 결제를 마친 그녀에게 차를 건넸다. 가게 안을 카페처럼 꾸며 잠시 머물기에 나쁘지 않았다. “기사를 들고 여기까지 온 분은 처음이에요. 그 잡지가 꽃 전문 잡지도 아니고 패션지여서 그리 크게 기사가 실린 것도 아닌데.” 만족스럽게 파란색 히아신스를 바라보던 그녀가 명함을 건넸다. 멀지 않은 곳의 변리사 사무실이었다. 다소 차갑고 딱딱해 보였던 첫 이미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법률을 다루는 공학도였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중 유일한 한 가지가 꽃이에요.”



그녀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비쳤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많이 하시나 봐요.” 나는 따스한 얼그레이를 마시며 답했다. “다를 그렇게 살지 않나요.”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명품 정장과 가방, 그에 어울리는 미모, 그리고 좋은 직업. 다른 사람 보기에는 화려하고 부러워할만한 조건을 갖춘 이에게 듣기 어려운 푸념이었다. “본인이 갖고 있는 것 중에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것이 있나요?” “꽃 빼고는 전부.” 그녀는 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달빛이 스민 방안에서 고양이의 하얀 털을 쓰다듬으며 꿈 속을 걷는다. 그곳에서 어두운 감정들은 무거운 먼지처럼 가라 앉는다.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겠다.’ 유학생활 동안 그런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결혼을 숙제처럼 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맞선을 보지 않았다. 그 질문은 다시 꼬리를 문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한다면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그녀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완벽하지만 또한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결핍을 올바르게 채우는 법을 알고 있다. 나는 올바르게 그녀 곁에 머무는 방법을 안다. 그렇게 3년 동안 머물러왔다. 그녀에게 좀 더 어울리는 꽃들을 만들면서. 밤은 깊고 무겁다. 시간은 길고 고요하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어쩌면 부정적인 감정들과 싸운 결과물일지 모른다. 나는 고양이를 끌어안은 채 더 깊은 꿈 속으로 빠져든다.



출처 : 문학인신문(http://www.munhakin.kr)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브락사스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