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시간을 타고 흐르는 내면의 색채들
《서평》
시간을 타고 흐르는 내면의 색채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에세이 『어느 시인의 죽음』을 읽고
이란(장성희)
글에 관해서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나의 글을 써내는 것과 타인의 글을 읽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고 그렇게 고전이나 명작을 중심으로 독서의 틀을 형성했다. 하지만 등단 후 직장생활을 하며 실용서와 최신 정보를 담은 신서를 중심으로 독서의 방향이 달라졌다. 중요도에서 필요성으로 그 방향성이 변화한 것이다. 그러던 중 작가로서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서로다독독서포럼에 참여하게 되었다. 선정된 작품들을 주제로 작가분들과 토의하는 과정은 여러 측면에서 신선한 자극이었다. 일단 문학에 관련된 작품들이 선정되는 측면에서 전체 독서의 프리즘이 다채로워졌다. 그 다음으로 현직 작가분들의 고견을 들을 수 있는 토론 시간이 있어서 내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최근 문단에서 관심을 받는 작품 혹은 숨겨진 보석 같은 작품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작가분들과 의견을 공유하며 앞으로의 작품 방향을 구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 작품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어느 시인의 죽음』이다. 『의사 지바고』의 저자인 그를 집안 책장의 양장본으로 만난 기억을 떠올리며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읽어 내려갔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에세이 『어느 시인의 죽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1900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아침, 급행열차가 쿠르스크 역을 떠나려고 하는 참이었다.” 작품에서 첫 문장이 지닌 영향력과 힘은 제목만큼이나 절대적이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주제의식 내지는 작가의 문장력이 집약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시간과 공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190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러시아의 쿠르스크라는 지역적 배경이 그것이다. 1900년은 니콜라이 2세의 전제 군주제가 유지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 쿠르스크는 러시아 제국의 지방 도시로서 아직 산업화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었다. 첫 문장을 시작으로 서술은 시간을 따라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1900년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0세였던 시절로서 이 시점이 본 에세이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 작품은 마치 급행열차처럼 빠르게 그 후 30년간의 시기를 달리다 1930년에 권총으로 자살한 러시아의 시인 마야콥스키의 죽음에 다달아 멈춘다. 즉,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을 제시하며 일종의 출발점으로 쓰여졌으며 독자는 급행열차의 승객처럼 그의 문장들을 따라 그후 30년 동안 그의 족적을 따라 작품을 여행하게 된다.
이 작품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에세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제를 제거하고 보더라도 이 작품은 문학적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실존 인물의 실화에 기반했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소설적 혹은 시적 기법들이 충분히 사용되고 있다. 또한 작품 전체가 그림을 그리듯 쓰여져 있다. 그 대상은 인물, 사건, 시간과 공간, 감정 등으로 다양하다. 때문에 문장은 빠른 속도로 읽힌다. 첫 문장의 급행열차에 대한 언급이 떠오르는 이유이다. 그의 문장들은 리트머스 종이처럼 독자의 관심을 순식간에 흡수하여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다시 이 소설의 서두의 한 문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향기가 풍겨나오던 점포에는 이탈리아의 소인이 선명한 외국 우표가 잔뜩 붙은 빈 광주리들이 천장까지 차곡차곡 들어찼다. 두툼하게 덧씌운 낡은 문짝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응답하듯,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듯, 짙은 수증기의 구름이 안에서 몰려나왔는데, 그것만으로도 기대 심리가 자극을 받기에 충분했던 까닭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흥분시키는 무엇인가를 벌써부터 예상해도 좋을 듯한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낯선 분위기에 대한 묘사를 단문에 이어지는 장문으로 밀도 있게 연결함으로써 점포에 대한 외적 이미지와 내적 함축을 동시에 담고 있다.
다음으로 이 작품의 내용적 측면을 살펴보면, 미학적 요소와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는 그의 성장배경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아버지인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는 화가였고 어머니인 로사 코프만 파스테르나크는 음악가였다. 그는 자라서 1910년부터 1912년까지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철학을 공부했다. 본 작품에 나타나듯 그는 이러한 성장배경을 토대로 예술 세계를 향유하였으며 다양한 예술인들과 인연을 맺었고 영향을 받았다. 또한 시를 쓰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자전적 에세이에 철학이 깊이 있게 논의되고 시적 함축이 나타나는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시를 얻으려고 산문을 시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음악을 얻으려고 산문을 시로 이끌어간다. 그렇다면 이것은 살아가는 인간의 새로운 세대가 태어날 때마다 한 번씩 종을 치는 시계가 설정하는 것으로, 나는 그것을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서의 예술이라고 불렀다.” 본 책에 기술된 작가의 예술관에는 이러한 점이 분명히 규정되어 있다. 문장들은 개념 규정의 부분이나 의식의 형상화 부분 등에서 독자에게 상당히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다. 즉, 한번에 읽히는 글이라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할만한 문장과 사색적 깊이가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글이 좋은 글일까. 읽는 즉시 독자의 감정에 깊게 닿는 글이 있고, 문장을 하나씩 곱씹으며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글도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이미지 시대에 가독성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예술의 가치가 형상화에 의한 주제의식에 있다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표현 수단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어느 시인의 죽음』은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빠른 속도의 필치로 풀어나가며 작가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건과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그 문장들은 장면이나 인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 또는 철학적 개념의 형상화와 같은 각기 다른 면모를 곳곳에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어느 순간 흡입하듯 읽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멈춰서 그의 생각을 다시 정리해야만 한다. 단지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작가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섬세한 장면과 내면에 관한 묘사가 이어져서 속도감 있게 읽히는 글이기도 하다. 그러한 묘사들도 이미지화의 측면에서 다시 읽어 볼만한 요소가 있어,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읽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작품은 자전적 에세이를 소설적 방식 내지는 시적 방식으로 접근하여 문학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