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난생처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 이제 킥판 없이 자유형, 배영을 해내는 수영인이 되었다.(자유형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말도 안 되게 짧다는 것은 비밀) 지난주 초등학교 방학이 드디어 끝이 났고, 그 덕분에 우리 반에는 7명의 신입회원이 늘어났다. 나는 혼자 진도를 나가는 유일한 회원이다. 그랬기에 오늘은 어떠한 지도도 받지 못하고 내 맘대로 레인을 돌며 수영 수업을 마쳤다. 울적했다
수영 수업에서 지도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늘이 9월 2일이라서 울적했다. 아무런 소속 없는 백수의 생활을 한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그 소속이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다 할지라도 소속감으로 얻을 수 있는 '안정 욕구'가 꽤 크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기분을 씻어내기 위해 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초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부끄러운 글 한 편을 발견했다.
예쁘게 깎아두면 뾰족한 연필.
연필 주인에게 자신을 내어놓고 뭉뚝해질 수 있는 연필.
썼다 지우기 편리하고 쉽게 접할 수 있어 좋은 연필.
세련되진 않더라도 수수하고 평범한 매력을 가진 연필.
자기 자신을 닳게 하더라도 무언가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를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 기쁜 연필.
누군가에겐 제일 길고 예쁘게 깎아진 뾰족한 연필, 또 누군가에겐 어쩌다 손에 잡혀 그저 쓰임을 당하는 연필.
쓰고 깎고 뾰족해지고 뭉뚝해지는 반복을 겪어내는 연필.
사용자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연필.
어떠한 이유에서든 언제나 그 만의 가치가 있는 연필.
당시 글쓰기 주제는 '내가 어떠한 존재로 변신한다면 무엇이 되고 싶고, 왜 그 존재로 변신하고 싶은 지'에 관해 쓰는 것이었다. 어려웠다. 나는 변신을 하지 못하고 그냥 나를 어떤 사물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에 그쳤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민망하지도 않다. 그 날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친구들에게 그 날의 소감을 이야기해줬다.
"내가 어떤 집단에서 꼴찌라고 느낀 적은 오늘이 처음이야. 그래서 민망하지도 않고 그냥 '우와'만 하다 왔어"
내가 타인들에게 나를 설명했던 글은 노트 속에 묻혀있다 오늘 발견되었다. 그때의 나는 아마도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었나 보다. 연초가 되었는데도 개선되지 않는 회사 내부 문제로 지칠 때로 지쳐있었다. 나는 내가 그 공간에서 그저 쓰임을 당한다고 느꼈다. 그때의 나를 그 날의 글을 통해 마주했다.
백수로 두 달을 살면서 하루하루 불안했는데, 어젯밤 거실에서 하반기 취업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내용의 뉴스 소리가 들려와 불편했는데, 그래도 이 글을 읽고 나니 다행스럽다. 지금의 나는 쓰이지 않는다. 내가 뭉뚝해지길 원하는 곳에서 나를 굴리기 위해 기다린다.
예쁘게 깎여진 뾰족한 연필은 지금처럼 나만의 글을 쓸 것이고 그 연필은 언젠가 그 만의 가치를 해 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