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빠에게 돈을 빌려줬다 돌려받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아빠는 내게 다시 물었다. 그 돈을 다시 빌려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아빠는 그 돈이 그대로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물어왔고 나는 돈이 없어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길 들은 엄마가 나를 한심하게 여겼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엄마는 내가 얼마나 돈을 모았는지 종종 물어왔다. 그러면 나는 사실대로 "돈 없어~ 적금 안 들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엄마는 '설마'했나 보다. 많이 놀라고 실망한 모습이었다.
퇴사 당시 가지고 있던 돈과 퇴직금을 합하면 내 기준 큰돈이었고 그 정도 돈이 있다면 수개월은 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만약의 경우 계획에 실패해 어느 곳에서도 제의가 오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알바든 다른 일이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니 큰 걱정을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나름대로 규칙들을 만들어 잘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 날 터졌다.
엄마의 걱정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엄마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너 나이 서른에 돈도 없이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하니?"
"이 집에 안 살았으면 너 어떻게 하려고 했니?'
"엄마 딸이 말은 그렇게 해도 아닐 줄 알았는데 어쩌면.."
"서른이 뭐 어때서. 내가 언제 지금 결혼한다고 했어? 그리고 이 집에 잘 살고 있는데 왜 이 집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 또 왜 나는 돈을 모아서 시집을 가라고 하는 거야? 언니는 다 해줬잖아. 여태까지 나보고 돈 모아서 가라고 했던 말이 진짜였구나"
라는 말이 입 안에 맴돌았으나 차마 꺼내지 못하고 삼켰다. 그리곤 "내가 알아서 살아! 걱정 마!"라고 화를 냈다.
가족 식사를 하다 보면 종종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농담처럼 아빠가 나에게 한 이야기가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아빠는 내게 '돈 없어 네가 모아서 가야 해'라고 했고, 그럼 나는 '에이~ 그럼 뭐 안 가고 평생 같이 살아야지 뭐'라고 했다. 이 글을 읽는 다수의 사람은 나를 세상 철없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랬다.
다음 날 오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나에게 진짜로 돈을 모아둔 게 없는 것인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그 돈을 다 썼는지 모르겠다며 참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쏟아내고 전화를 끊었다. 무차별 폭행을 당한 기분이었다.
내 나이 서른이 맞다. 그리고 결혼 자금을 모아두지 않은 것도 맞다. 그렇다면 나는 무언가를 잘못한 걸까? 앞으로 오래도록 안정적으로 먹고 살 돈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나의 지난 시간들은 그렇게 치부되어야 할까?
대학 졸업 전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만족한다. 첫 직장에서 즐겁고 보람차게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고, 두 번째 직장에서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 배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른이 되었고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때의 내가 그 자리에서 충실히 내 몫을 다했기에.
자식을 향한 부모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걱정으로 조금 상처 입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걱정 어린 비난보다는 '엄마 딸은 잘 해낼 거야'
라는 응원을 부탁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