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원이었나 120만 원이었나?

그때는 꿈이 있었다.

by 이랑

기억도 가물거린다. 200만 원이었나 120만 원이었나? 엄마에게 물어보면 정확히 기억해낼 것 같은데 묻질 못하겠다. 미안해서. 그 투자의 결과물이 이렇다고 굳이 인지시켜주는 것은 못하겠다.


고등학교 때 영어 과외를 했는데 입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영어 과외 선생님의 소개로 수학 과외 선생님을 추천받아 영어, 수학과 함께 매일 독서실처럼 공부할 수 있는 관리형 과외를 했다.


주말에도 학원에 갔다. 정확히는 어느 주택가에 위치한 오피스텔이었다.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했다. 꽤 친하게 지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학원 차로 집에 돌아갈 때 그 친구가 내리던 장소. 그 사진관 앞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도 말이다. 그 사진관이 잘 나오기로 유명해서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글을 쓰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마도 120만 원이었을 것이다. 과외 한 과목당 50만 원, 그리고 관리 비용 20만 원. 관리비용이 100만 원이라면 그건 너무 비싼 거니까.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지 못하는 점을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적어도 1년은 다닌 것 같은데 그 돈이 1,440만 원이다.


대학에 들어가 종종 생각했다. '그 돈을 가지고 있었다면 등록금을 4번은 냈겠다.' 그때는 몰랐다. 그 돈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계좌이체로 학원비를 보냈는데 엄마가 학원비 보냈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했다. 단 한 번도 고맙다거나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어떻게 그랬을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매일 계획을 세웠고 동그라미 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을 열심히 보내고 나니 고등학교 3학년 첫 모의고사에서는 꽤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KakaoTalk_20191112_102016957_02.jpg
KakaoTalk_20191112_102016957_01.jpg
깨알같이 적어가며 열심히도 했다. 좋아하는 주황색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왜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래야 하는 줄 알고 했나? 아니다. 꿈이 있었다. 그래서 외대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했다. 반년을 해보니 대충 안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직감했고 아예 손을 놓아버렸던 것이다.


19살에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한계가 있다고 단정 지어버렸다. 원래의 나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인데 '대학'이라는 첫 사회에 첫 발을 그렇게 디뎌서 혼란스러웠다. 도전하고 싶은 나와 실현 가능성을 재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시간에 했던 노력은 눈 앞에 대학이라는 결과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경험과 시간은 나에게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이전 01화영어 말하기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