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난 사회를 배웠다.
두 번째 직장 이야기
직장생활이 다 그렇듯 종종 짜증나는 일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두 번째 직장에서도 보람을 찾았다. 나와 같은 청년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기뻐 열심히 일했다. 그래도 전에 비하면 너무 할만하고 좋았다. 매달 4~8개의 강연과 직무 교육을 기획했다. 유료 컨설팅을 받는 청년들을 위해 전국적으로 자소서, 면접 컨설팅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재단 내 취업 상담사, 심리 상담사 관리, 온라인 멘토링, 멘토 섭외 및 관리 등 그래도 다양하게 많은 일을 했다.
약 4년의 시간 동안 나의 급여는 한 해 물가 상승률보다 낮게 올랐다. 속상했지만 청년들을 위한 재원으로 우리의 급여를 막 올릴 수 없다는 회사의 변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취업 상담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회사 급여 시스템의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존 직원은 재단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정규직 전환을 한 상담사들은 재단에서 일한 기준까지 적용되어 기존 직원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게 되었다. 그 피해자는 나이가 제일 어린 나에게 해당되었다. 역차별로 인해 지속적으로 발생할 문제였다. 그 외에 다른 많은 규정들도 개선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노조를 만들기로 했다. 대림동에 위치한 노조 사무국에서 여러 차례 교육을 받았다. 몇 안 되는 직원들 속에서 노조원을 모았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는 우리끼리 이래저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창립총회도 하고 단협안도 만들고 노사협의도 했다. 하면 할수록 답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비슷한 또래 청년을 위해 일했는데 시간이 점차 흐르자 내가 그 나이를 뛰어넘고 있었다. 다른 청년들을 지원하면서 정작 나는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청년을 위해 일하는 청년인 나는 불행했다. 그즈음 진행하던 사업도 기업 섭외에 어려움을 겪어 추진하지 못했다. 노조 활동은 물론이고 일 마저 힘들어졌다. 회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며 오기로 버텼다.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다. 대학생 인턴을 대상으로 휴가 대장 점검을 했다. 전자 결재로 바뀐 이후 그들은 구두 보고를 했는데. 본인팀 인턴의 휴가 대장만 급하게 만들어 눈속임을 했다. 놀랍게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냥 그들의 말에 따라 연도도 맞지 않는 대장에 억지로 휴가 결재를 받았다.
그런 황당한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나와 많이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있는 것이 항상 힘들었다. 그날 이후 매일매일 심각하게 고민했다. 심지어 총장님과 면담을 하고도 조금 더 고민해보라는 제안에 흔들리는 나의 모습을 보며 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것을 느꼈다. 회사 밖 환경이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서른의 나는 어렵게 두 번째 직장을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