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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Sep 06. 2020

그의 생일을 완벽히 잊어버렸다.

200904.

그의 생일을 완벽히 잊어버렸다.


0904. 금요일. 제품을 배포했는데, 여러 이슈가 있었다. 그 이슈의 해결 방법을 애석하게도 퇴근 직전에 찾아 어쩔 수 없는 금요일 저녁 야근을 맞이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자!'라는 생각에 정신이 팔려ㅇ... 다 변명이다.


9월이 되어 OKR 미팅을 했고, 그 날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다른 일 때문에 그것도 하지 못하고 뭐 여러모로 속상하다며 징징거린 날도 있었다. 그에게. 9월이 된 것을 나는 분명 알았는데 왜 9월에 그의 생일이 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을까?


"어제 누나랑 형이 카톡으로 선물을 보내줬더라고" 그 강력한 힌트를 받기 전까지 나는 정말 몰랐다.


금요일 저녁 야근하고 지쳐 전화를 했는데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선심 쓰는 마음으로 씻고 저녁 먹으러 갈 테니 데리러 오라고 했는데.. 됐다고 그냥 내일 먹자고 하길래 되려 화가 났다. 그리곤 오늘까지도 삐져서는 연락도 잘 안 하고 그 와중에 오는 연락에도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지? 이래서 우리가 결혼을 하고 살 수는 있나?라는 생각들을 했다.


그는 그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웬만한 일들은 빠르게 해결방법을 찾고, 여우같이 대처하는 편인데... 이번 건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왈칵 눈물이 났다.(진짜) 그가 나에게 쓰는 마음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아는데.. 이런 나의 행동에 얼마나 서운했을까? 얼마나 상실감을 느꼈을까? 그 와중에 나한테 연락을 해주고, 퉁명스럽게 대하는 날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부랴부랴 쫓아가 그래도 얼굴 보고 사과하고 애교도 부리고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씻는데 착잡했다. 그리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정말 크게 많이 실망했을까 봐. 두려웠다. 또 한 편으로는 오늘은 정말 혼자 쉬고 싶다는데 또 내 마음대로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을 막 밀어 넣으며, 상대에게 받아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이 행동이 오히려 더 정 떨어지는 행동은 아닐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내가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표현을 해야 했기에 집으로 향했다.


아무튼, 지금 나는 그의 집에서 돌아와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일은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다. 오늘은 푹 쉬고 싶다고 해 그렇게 자리를 피해 주고 집으로 왔다.


편지로 나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써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너무 미안하고 오빠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하면 너무 맘이 아프고, 속상하고,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서 미안하다는 둥의 이야기를 쓰면 이해가 될까? 바꿔서 나라면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도대체 나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생겼는지 모르겠다.


이 글은 발행하기 못할 글이지만, 브런치에 글 쓰길 바라는 그가 아침에 이 알림으로 나의 마음을 보면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이 못난 글을 실어본다.


기념일 까먹기는 기본에, 원하는 생일 선물을 안 사준다고 삐지기도 하고, 내가 보자고 한 영화가 무섭다고 짜증을 부리기도 하는 정말 이상한 나를 그렇게나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그에게 나의 무심한 행동이 큰 상처가 되었을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섭다. 만나면서 항상 큰 마음을 받고 나면 그저 여기저기 자랑하기에 바쁘고, '내가 더 잘할게~'라는 말은 인사치레로 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내가 그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지에 대한 큰 반성을 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말인가 보다. 소중한 그에게 진짜 정말 잘해야겠다......


미안하고, 사랑해. 그 마음을 오빠가 온전히 느낄 수 있게 정말 잘할게. 앞으로 내가 더 잘해서 이번 일은 오빠가 두고두고 나를 놀릴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게 만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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