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 나이 37, 하고 싶은 일도 여전히 많지만 그중에는 일종의 버킷리스트 같이 몇 가지 클리어해 낸 항목도 있다. 나름 보람도 있으나 아직은 이뤄가고 싶은 게 더 많아서인지 의욕이 앞서는 상태다. 오늘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닐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너무나 어려울 수 있는 일. 바로 엄마와 친해지는 것이다.
우선 엄마는 올해 61세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은, 불현듯 서로에 대한 생각이 날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걱정이 될 때 거리낌 없이 통화를 할 수 있는 정도의 관계다. 통화는 주로 밥은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끝에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당부를 잊지 않는 것으로 마치는 일반적인 패턴으로 이어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남들 눈에 우리 모녀는 지극히 평범한 사이로 보이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서로를 나름 챙기는 사이가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엄마와 나,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하지 않은 모녀였다. 내가 우리 모녀관계에 있어 이상한 조짐을 느낀 건 어렸을 때였다. 혹시 몰라 미리 밝혀두자면 우리 엄마는 다행히도 자녀를 학대하지도 않았고 끼니를 거르도록 방치하지도 않았으며, 기를 죽이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였다. 학교에서 어버이날을 기념해 부모님에 대한 글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 여자 아이가 엄마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진 않지만 그 뒤에도 다른 여자 아이도 마찬가지로 발표를 하던 중 엄마 얘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엉엉 울어서 다른 친구인가 선생님이 달래야 할 정도였다.
그날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깜깜한 천장을 보며 왜 엄마를 생각하면 그 친구들처럼 그렇게 울컥하지 않을까? 반대로 아빠에 대한 생각을 할 땐 애틋한 감정이 쉬이 올라왔다. 엄마도 알고 계시지만 나는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했다. 첫 딸이라 그런지 내가 사랑하는 아빠의 얼굴을 쏙 빼닮은 것도 좋았고 굳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아빠의 따뜻한 눈빛과 미소만 봐도 마음이 편해졌다. 아빠 말만 듣는, 누구 딸이라고 물으면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아빠 딸이라고 대답하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그날 처음으로 엄마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성인이 되고도 한참 시간이 흘러 가족의 다양한 형태, 관계를 알고 존중하는 입장이지만 당시는 우리는 왜 저렇지 않을까 어찌 보면 너무나 단순하지만 가족이라는 관계를 지속하는 데, 건강한 교류를 하는 데 필수적인 질문을 할 수 있었던 첫 기회이기도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그전까지 엄마와 나는 서로 할 말만 했다면 이후로 나는 의식적으로 엄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 결과 30대 초반에 이르러(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엄마의 성격을 나름대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엄마의 가족관계는 연세 많으신 부모님과 위에 6명의 오빠로,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언니가 있었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엄마의 어린 시절로 가보지 않고선 정확히 알진 못하겠지만 그렇게 말할 정도면 가정에서 마음을 터놓고 속얘기를 나눌 존재가 있진 않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또 나에게도 똑같이 있는 모습인데 자신의 의사를 시원스레 표현하기보다는 뭔가 마음에 안 들 때 어두운 표정과 뾰로통한 말투로 바뀌는 수동적인 공격성을 보면 가족 간의 기본적인 소통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방식을, 피드백을 받지 못했을, 조금씩 비어있는 구멍이 있었으리라 조심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외모는 아빠를, 성격은 엄마를 많이 닮았다)
거기다 해야 할 말만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이러쿵저러쿵 사소한 수다도 잘 떨지 않는 걸로 봐서는 대화가 활발한 집안 분위기가 아니었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이점은 우리 집과도 같다. 나와 내 동생은 말이 없다.(정말 없다) 그런데 이 부분은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살아생전 엄마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아빠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어떤 면죄부처럼 그간 아빠에게 쌓인 걸 다 용서한 듯한 모습을 보이던 엄마는 곧 일을 하기 시작하시면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는 경제적인 상황이 좀 나아지면서 차차 사회생활에도 적응해 가자 직장, 동네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나중에 더 지켜보니 엄마는 지인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장을 보거나 일을 할 때도 모르는 사람들과 곧잘 웃으면서 얘기를 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도 잠깐씩 일을 하신 적은 있지만 보통 아빠와 싸우거나 무기력한 모습으로 계시던 것만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그런 엄마의 변화는 꽤나 놀라웠다. 아마도 원래 엄마는 나와 동생 같이 말이 없는 편이 아니라 수다쟁이에 더 가까웠던 모양이었다. 막내 공주님 모먼트로다가. 그렇게 나는 엄마의 생기 있는 목소리에 담긴 조잘조잘 떠들기 좋아하는 순수한 시골 소녀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엄마에 대해 새로운 점들을 발견할수록 단순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간 왜 이런 엄마를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풋하고 터져 나오는 장면들이 있는데 사춘기 시절 엄마에게 괜히 반항했던 날, 소리쳤던 날, 별일 아닌 일로 원망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날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편하게 웃으며 서로를 걱정하는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쩌면 엄마와 나의 마음을 더 가깝게 해 주었던 두 번째 계기였던 것도 같다.
나는 요새 엄마와 함께 시간 보내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는 한 달에 한두 번 내가 본가에 갈 때 함께 보드게임을 한다. 처음엔 카드 그림을 보고 먼저 종을 치는 게임이었는데 엄마는 몇 번 해보더니 이게 뭐냐고 재미 하나도 없다고 툴툴대시더니 규칙에 익숙해지고 속도가 더해지면서 점수를 얻자 깔깔깔 소녀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은 플라스틱 칩으로 하는 입체사목이었다. 일정상 게임만 두고 왔었는데 나중에 같이 할 때 혼자 해보셨다면서 혼자서는 재미없었다며 후기를 들려주셨다. 일부러 져드리지 않는 이상 나의 독주였는데 혼자서 연습 좀 하라며 엄마를 은근히 자극하면서 채근하는 게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이번 주에는 특별히 젠가와 얼음 깨기를 준비했다. 모여서 밥을 먹고 간단한 안부를 묻거나 근황을 얘기하는 건 쉽지만 그렇게 대화의 초반이 지나고 나면 할 말도 없고 tv나 휴대폰을 보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드게임을 시작하면 없던 얘기 거리가 생긴다. 예기치 못하게 서로의 재미난 면모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별 거 아니지만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 있곤 한다.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보드게임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또 최근에 환갑을 넘은 엄마의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 같아 스티커 북, 색칠 북, 필사 북 등등을 선물로 드렸다. 일과를 마치고 여유가 있을 때 재미 삼아 손을 쓰고 또 그것이 작품이 된다는 점이 좋은 듯해서였다. 엄마는 자주 하시진 않지만 생각날 때 한다면서 본인이 하신 걸 자랑스럽게 보여주시곤 한다. 그리고 올해로 우리는 약 3년째 봄, 가을마다 아라뱃길에서 자전거를 탄다. 처음에 엄마는 무슨 자전거냐 애도 아니고, 귀찮다 하시더니 막상 지치지도 않고 슝슝 잘 타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놀랐었다. 좀 더 빨리 가자고 해볼걸. 아쉬운 마음이 커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건강하게 시간을 내서 함께 여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어색한 사이에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건 누구나 어렵다. 나도 엄마와 처음에 뭔가를 할 때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나 자신이 뭔가 가식적인 것 같이 위화감이 있었지만 오히려 눈앞에 활동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떠오르게 되는 걸 경험했었다. 다음 주에는 엄마와 도자기 원데이클래스를 같이 가기로 했다. 항상 멀리만 내다보고 살았을 땐 몰랐는데 정작 돌아보니 어느샌가 나와 엄마가 함께 하는 그림이 이제는 꽤 자연스러워 보인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꽁냥꽁냥 애틋한 관계까진 아니어도 나름 이 정도라도 쿵짝이 맞게 된 것이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한데 모든 가족들을 두고 말할 순 없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가족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엄마와의 관계에서 여기에 쓰지 못할 상처들을 받았고, 상처를 드리기도 했었지만 그보다는 나를 건강하게 키워주신 것에 감사하는 데 집중하고 남은 시간을 되도록 즐겁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앞으로 더 성장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세상에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따뜻하고 평안한 가정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이만 엄마에게 부탁한 해물김치전을 먹으러 갈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