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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괜찮은 생

by ri

‘갓생’이란 신을 뜻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生)'이 합쳐진 남들에게 귀감이 되는 바람직하고 부지런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다.


내가 갓생을 사는 건 도통 엄두가 안 나는데도 희한하게 남의 갓생은 보고 있으면 사실 사람만 달라질 뿐 거기서 거기나 다를 거 없는 영상인데 눈을 못 떼고 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나도 갓생 유튜버들처럼 5시나 6시쯤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독서를 하고, 9시부터 밤 6시까지 회사에서 열일을 한 뒤에 집에서 건강하고 예쁜 저녁을 직접 만들어 먹은 다음 취미활동이나 자기 계발까지 야무지게 조지고, 10시쯤 잠자리에 들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상상도 했었다.


그런데 우선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수많은 목표를 세우고 작심삼일로 그친 날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30분이라도 독서를 하기 위해서 6시 30분에 일어난다고 하면 밤 10시 반쯤에는 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 10시 반이 넘어서까지 야근을 하기도 하기에 나에게 미라클모닝은 시작부터 성립이 안 되는 일이었다. 또 회사까지 이동 시간이 1시간이 넘어서 출퇴근 시간에 잠들지 않는다면 틈틈이 책을 읽고 있어서 굳이 독서시간을 무리해서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중요한 저녁식사를 보자. 자취 3년 차에 접어든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배달을 시켜 먹는데 너무 편하고 맛있다(여기서 맛있다는 그냥 잘 먹었다가 아니라 먹고 나서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다). 자취 초반에는 요리도 자주 하면서 실제로 실력도 늘어서 요리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남은 식재료 처리도 어렵고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왔다. 거기다 배달은 1인분을 시키더라도 양이 많아서 두세 번에 걸쳐서 먹기 때문에 그렇게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맛, 편리성, 가성비 면에서 요리를 하는 빈도를 줄이게 되었고 그건 앞으로도 딱히 바뀔 것 같지 않다.


취미활동이나 자기 계발, 이 부분은 반대로 할 것이 없어서 문제다. 무슨 말이냐면 취미라고 해봤자 독서나 영화 보기, 음악 듣기, 산책, 글쓰기 말고는 특별히 즐기는 것이 없기도 하고 자기 계발도 정말 해야겠다 마음먹지 않고는 꾸준히 뭔가를 계속해나가는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갓생러분들을 잘 관찰해 보면 어떤 목표를 향해서 계속해서 나아가는 원동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인간이다. 그리고 퇴근 후에 뭔가 생산적인 걸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다는 것도 큰 이유를 차지한다.


이렇게 긴 시간 골똘히 생각한 뒤 갓생을 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갓생의 좋은 점은 하루에 맞춰진 시간표를 지키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좋은 습관을 들여서 어제보다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 올해 3월경 나는 밥을 먹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기웃대면서 시간을 허비하고는 부랴부랴 씻고 자길 반복하는 저녁 루틴을 바꿔보기로 했다.


거창한 건 아니다. 내가 정한 루틴은 딱 두 가지인데 쉽고 금방 끝나는 것들이라 일주일 내내 한다. 하나는 간단한 맨몸운동하기, 다른 하나는 성경 필사하기. 퇴근 후 저녁을 먹은 뒤에 얼마간 휴식을 취하다가 10시 전에 팔굽혀펴기를 15번씩 2세트를 하고 마무리로 1분 플랭크를 한다. 그러면 넉넉하게 3분이면 된다. 이제 2개월 차인데 확실히 처음보다는 자세가 좋아지고 숨도 덜 찬다.


그렇게 몸이 따뜻해지면 샤워를 하고 자기 전 성경을 펼친다. 성경 필사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필사를 주말에 날을 잡고 해 볼까 월, 수, 금마다 해볼까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민해 보다 마침 저녁 루틴에 넣게 되었다. 의욕만 앞서서 욕심껏 많은 양을 하면 처음엔 뿌듯하겠지만 오래 지속하지 못할 것 같아서 하루에 한 페이지만 쓴다. 필사를 하다 보면 그날 있었던 일도 중간에 떠오르고 말씀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되면서 그 상황을 나에게도 대입하게 된다. 분량을 다 쓰고 한 번 더 읽어보는 데는 15분 정도 걸린다.


성경 필사는 나에게 일종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따져보면 별 건 아니지만 의외로 이 두 가지 저녁루틴을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평안을 얻고 있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싶다면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작은 습관들, 대단치 않아도 좋다! 시작이 중요한 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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