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부터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다. 바로 영화 시나리오 수업을 듣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즐겨 보는 건 당연하고 대학을 다닐 때는 영화 관련 수업을 듣거나 두세 편 직접 시나리오를 써본 적도 있었다. 물론 결과물은 내가 봐도 재미도, 감동도 없는, 그저 그런 형식만 갖춘 참 볼품없는 시나리오였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내 능력의 한계치를 아주 현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인물을 그려보고, 내 마음에 고여있는 어떤 메시지를 담는 과정들이 그것이 얼마나 타당한지, 흥미로운지를 떠나서 그 자체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졸업 후 나는 내가 쓴 시나리오로 한국영화아카데미라는 학교에 지원까지 하게 된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영화 <기생충>, <미키 17>의 봉준호 감독, <타짜>, <암살>의 최동훈 감독,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1등 상을 받은 <첫여름>의 허가영 감독 등을 배출한 학교다) 특출난 재능은 없지만 그럭저럭 말이 되는 이야기를 얽어낼 줄 아니까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실전 경험이 있는 교수님,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면 나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정도의 가벼운 생각이었다.
전공도 아닌 데다 전문 입시 지도도 받아본 적 없는, 정확히 의욕만 넘칠 뿐 전문 지식은 1도 없는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전공자들 중에서도 영화에 진심인 사람들, 혹은 당장 영화 촬영에 들어가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준비된 학생들만 선발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불합격이었고 영화감독의 꿈은 그렇게 싱겁게 잊혀져 갔다. 그러다 진로를 새로운 분야로 바꾸게 되었는데 일에 적응하느라 취미나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게다가 업무량 자체도 많은 편이어서 야근이 잦다 보니 회사와 집만 오가며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아침이면 사람들로 넘쳐나는 지옥철에 올라 9시부터 6시까지 업무를 보고, 그러고 나면 아침과 다를 바 없이 사람들 틈바구니를 지나 집에 도착했다. 그런 다음엔 유튜브와 함께 하는 저녁 시간이 이어졌다. 조금 현명했더라면 부지런하고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어쩐지 퇴근을 하고 나면 억눌려 있던 보상심리가 터져 나와 보란 듯이 게으르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일상의 반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응어리진 현타를 느낄 무렵, 다른 글에서도 썼듯이 갓생을 사는 유튜버들의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24시간을, 내가 무의미하게 보낸 그 시간을, 누군가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꾸준히 실천하면서 보내는 것을 보면서 2차로 현타를 느꼈다.
동시에 살면서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겠지만 나 또한 어떤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무언가를 지속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인식하게 되었다. 처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려고 하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의욕도 넘쳤지만 오래 꾸준히 해서 정말 내 삶의 질을 높이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을 찾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런 과정을 지나 나만의 퇴근 후 루틴을 몇 가지 만들었고, 다행히 그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잘 지켜오고 있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처럼 대단하지 않은, 소소한 것들로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루틴을 만든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업계 분위기상 여유로운 6월이 되어 심심하면 들여다보던 한겨레교육에서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님의 단편 영화 시나리오 클래스를 발견하게 된다. 수업은 8월 말부터 10월까지 총 8회로 주 1회, 수업시간은 2시간 반이었다. 위치도 회사에서 가깝고 갑자기 잊고 있었던 창작욕이 불타오르면서 길지 않은 고민 끝에 수업을 신청했다.
그 이후로 7월에는 접수해 두었던 jlpt 시험날이 가까워져 부랴부랴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걱정스럽기도 했고 준비가 부족했지만 다행히 제일 걱정했던 독해에서 웬일로 고득점을 받으면서 N3에 합격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끝날 것 같지 않았는데 8월도 금세 지나가고 어느새 단편 시나리오 수업일이 다가왔다.
그나마 수업을 신청하고 나서 쓰고 싶었던 주제가 떠올라서 시놉시스를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업은 한 편의 단편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학생들이 기한에 맞춰 과제물을 제출하면 감독님께서 수업날 한 명, 한 명씩 피드백을 주는 식이었다. 감독님의 피드백에는 내가 글을 쓰면서 조금 걱정되던 부분이나 묻고 싶었던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질문해 주셔서 글을 수정하면서 점점 입체적인 인물로, 실제로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일로 다듬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총 8회 차 중에 지난 월요일이 벌써 5회 차였다. 지난 시간에는 시놉시스의 주인공을 바꾸고 후반부의 내용을 다르게 쓰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넣었다. 썩 마음에 드는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것이 신기하면서 재미도 있었는데 감독님의 피드백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지 않았다. 솔직히 가장 큰 패착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짧았던 탓이었다.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지만 처음 수업을 신청했을 때만큼의 열정도 떨어지고 지루하고 괴로운 수정의 과정을 거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재능 있는 사람만 예술을 한다.’라는 내 오랜 편견이 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게으름이 치고 올라와 나도 모르게 또다시 익숙한 합리화의 순환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꼭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엄청나게 재미난 이야기만 영화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런 이야기만을 하는 영화도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글을 쓸수록, 피드백을 받을수록 나는 아직 쓸 군번이 아닌 것 간다라는 선판단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그런데 이 또한 그저 지금 이 떠오르지 않는, 써지지 않는, 그래서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지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내 합리화일 뿐이라는 걸 이제는 모른다고 말할 수 없었다. 더불어 이 고통이야말로 모든 창작자들이 몇 번이고 부딪치고 깨지면서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도록 한 근원이라는 것, 그러한 부침이 없이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한동안 글을 안 썼다가 다시 쓰기 시작했던 때를 떠올려 봤다. 어렵고 괴로우면서도 다시 글로 돌아가는 이유는 글을 씀으로써 따라오는 장점도 있지만 그 어떤 것보다 단순히 쓰는 것에 몰입했던 순간들 때문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고요한 가운데 선명한 타자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평소에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 깨끗한 집중력이 발휘되고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기분 좋은 고조까지 느끼게 된다. 말 그대로 글 쓰는 것에 푹 빠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세상에서 좋다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다. 이제는 반드시 좋은 작품을 남겨야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게 되었는데 이렇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채 100%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는 지금이 참 아쉽다.
다음 주는 감독님의 개인사정으로 휴강이다.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벌게 되었으니 충분히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서 써보려고 한다. 좋은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내가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래 놓고 갖은 핑계를 꾸며내 시간을 허비할 수 있으므로 나름 전략의 힘을 빌려보려 한다.
이름하야 하루키 전법. 소설 <노르웨이의 숲>, <1Q84>를 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정 시간 동안 글쓰기 루틴을 정해 매일 수행한다고 해서 한때 루틴의 아이콘으로 sns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번 과제는 하루키 선생님처럼 매일매일 꾸준히 같은 시간을 들여볼 작정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결과물의 퀄리티를 떠나서 적어도 ‘재능이 없어서 못 썼다’는 최악의 핑계는 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잘 쓰냐, 못 쓰냐가 아니라 좋아하는 글을 계속해서 써나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