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허락받지 못한 아이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2025
감독: 기예르모 델 토르
출연: 오스카 아이삭, 제이콥 엘로디, 미아 고스
어릴 적 멋진 삽화가 그려진 어린이용 소설로 '프랑켄슈타인'을 처음 보았다. 울퉁불퉁 꿰맨 자국, 커다랗게 드러난 치아. 우락부락한 덩치의 주인공은 무시무시한 괴물 같기도, 로봇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리즈에 함께 포함된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을 여러 번 보았다. 괴물이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걸어가는 모습, 축 늘어진 여인을 안고 있던 드라큘라 백작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장면들은 공포와, 매혹, 갈망, 고통, 외로움 같은 느낌들을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 지금도 잘 만든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데, 삽화가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 책들로부터 시작된 취향인가 싶다. (아, '전설의 고향'이 공헌한 바도 크다.)
기예르모 델 토르의 <프랑켄슈타인>은 무섭진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람의 이야기. 태어나서 받은 마음이라곤 배척과, 혐오뿐이라면 어떤 마음을 돌려줄 수 있을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의사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다. 빅터의 아버지는 최고의 의사로, 재산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했다. 냉철한 아버지는 검은 눈과 검은 머리칼의 예민한 아내, 그리고 아내를 빼닮은 아들을 경멸했다고 빅터는 기억한다.
가족상담 분야의 선구자인 보웬(Murray Bowen)은 부부 갈등이 심할 때, 긴장을 줄이기 위해 제삼자를 끌어들여 '삼각관계(triangulation)'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이때 가장 흔하게 개입되는 제삼자가 자녀다. 아이는 부모 중 한쪽과 밀착되어 '가족이라는 체계'가 유지되도록 정서적 완충 역할을 한다. 전통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바깥으로 돌고, 어머니와 자녀가 한 편이 된다. 절절한 하소연을 들으며 성장한 아이는 어머니의 감정과 생각을 흡수한다. 자녀는 어머니의 렌즈를 통해 아버지를 본다. 어머니를 외롭고 슬프게 만든 아버지에게 적대감이 싹튼다. 지금도 많은 가정에서 목격할 수 있는 드물지 않은 구도다.
남자아이들은 동성의 아버지를 동일시하면서 남성성을 획득한다. 빅터의 경우, 아버지가 늘 부재해 있고 관계가 좋지 않아 긍정적인 남성성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아버지가 집에 들이닥치면 대를 이어 의사가 될 아들을 혹독하게 대한다. '외과의사가 될 소중한 손 대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얼굴'을 회초리로 때리며 벌을 준다. 아버지가 귀가하는 날이면 부모님 방에선 밤새 고성이 오가고, 어머니를 보호하지 못하는 빅터는 무력감에 괴롭다. 설상가상으로 둘째를 출산하던 어머니가 사망하고 만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금발머리 동생은 순하고 애교가 많다. 냉혈한인 줄 알았던 아버지가 동생 앞에서 웃는다. 빅터는 결심한다. 아버지가 극복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죽음을 정복하겠다고.
빅터는 아버지의 재능뿐 아니라, 자식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닮았다.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에게 이름을 주는 대신 '괴물'이라 부른다. 갓 태어난 생명은 한동안 '빅터, 빅터'... 소리 밖에 배우지 못한다. 빅터는 자신의 창조물이 배움이 더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저 녀석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괴물 같은 놈에게 영혼이란 게 있을까 두렵다.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없을까 후회한다. 창조자도 품지 못한 괴물을 세상이 쉽게 받아줄까. 괴물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도,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다. 괴물은 불멸이다.
폭력 때문에 아버지를 증오했던 아들이 폭력을 휘두른다. 어머니의 통제에 숨 막히던 딸이 제 자식을 들볶는다. 아이를 키우며 나의 역사를 재현한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현상을 '반복강박'이라 한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다시 반복함으로써 통제하거나 해결하려는 시도로 본다. 인지 능력이 발달하기 전, 몸으로 마음으로 새겨진 경험이 그래서 무섭다.
이해되지 않은 감정은 힘이 세다. 무의식 깊이 자리 잡은 감정은 이성보다 앞서고, 더 멀리까지 우리를 휘두르곤 한다.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부모의 뒷모습을 닮아버렸다. 부모 또한 그들의 부모로부터 대물림한 삶을 물려주었을 거다.
많은 부모가 헌신적으로 자식을 돌보고 책임을 다하려 애쓴다. 그러나 심리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자식 사랑이 타고난 본능은 아니라는 거다. 사랑은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것, 충분히 받아서 고였다 다시 흘러가는 물줄기 같은 것이다.
어쩌면 정말 사랑한, 더 사랑한 쪽은 아이가 아닐까.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태어나서 처음 부모를 알아보고, 눈 맞추고, 웃고, 말을 하면서 아이가 부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은 엄마. 할머니가 키워줘도 제일 좋은 사람은 엄마. 이다음에 커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엄마, 아빠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온 우주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도, 그처럼 맹목적으로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괴물이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멋대로 만들어놓고 마음에 안 들어 내친 것은 빅터다. 괴물이 한동안 '빅터, 빅터'만 반복하는 모습은 '엄마, 엄마' 소리 밖에 못하는 아기를 떠올리게 한다. 아기는 사랑스러워 보호 본능을 이끌어내지만 괴물은 아름답게 태어나지 않았다. 괴물은 성장 속도가 다른 아이, 늦되지만 폭풍 같은 잠재력을 가진 아이였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은 증오로 얼굴을 바꿀 수 있다. '내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면, 분노로 답하겠다.' (If you are not to award me love, then I will indulge in rage.)라고 괴물은 말한다. 우리가 문제 행동이라 부르는 청소년들의 어려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일이라 스스로도 자기 행동에 통찰은 없다.
다행히 괴물을 배척하지 않고 순수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경이와 연민의 눈으로 괴물을 바라보는 '엘리자베스', 편견 없이 괴물의 선량함을 발견해 준 노인. 지혜로운 노인은 성경을 비롯해 아름다운 책들을 괴물에게 읽어준다. 그들은 괴물의 마음에 온기를 심어준다. 자신과, 인간, 세상을 이해할 싹을 틔워준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했다 해도, 다른 만남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힘들 때 곁에 있는 친구, 나도 몰랐던 나의 자원을 발견해 주는 스승, 갈등을 겪더라도 끝이 아니라는 믿음을 주는 연인. 안정적인 관계를 통해 상처가 치유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을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