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대신, 포근함을 구웠어 _ 견과류 비건 토스트
나는 일명 ‘빵순이’다.
빵집에 들어서면 주저 없이 트레이와 집게를 든다. 같이 간 사람은 자연스럽게 빵을 둘러본다. 순수한 눈망울을 향해 나는 말한다.
“이 트레이는 내 거야. 네껀 네가 들어야 해.”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내 수북하게 빵을 담아 계산대로 향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끊어야 할 음식 목록 중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 밀가루였다. 빵을 멀리하게 된 나는, 종종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트레이를 들고 빵집을 돌아다닌다. 선반마다 수십 가지의 빵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허둥지둥거린다. 그러다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마감 10분 전입니다.”
화들짝 놀라 발발 동동 구르다 잠에서 깬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혼잣말을 한다.
“또 꿈이네... 아무거나 집을걸... 한 입이라도 먹어볼걸...”
다음엔 꼭 먹겠다고 다짐하지만, 꿈은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깨운다.
배달음식을 끊는 건 견딜만한 일이었지만 빵을 끊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곧 깨달았다. 빵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을.
‘건강빵’을 검색하고, 빵집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떡인지 빵인지 알 수 없는 질감들의 연속이었다. 한참을 방황하다 ‘비건빵’을 알게 되되었다. 기대감이 무색하게 우유도, 버터도 들어가지 않은 비건빵이라고 해서 반드시 건강한 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찾아 헤매던 그것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듯했다.
서울 유명 비건 베이커리를 찾아가 보기도 했고, 택배로 주문해서 냉동고에 쟁여두기도 했다. 익숙했던 부드러운 식감이 아닌, 퍽퍽한 낯선 식감뿐이었다. 결국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유, 버터, 밀가루를 쓰지 않고도 빵을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곧 깨달았다.
글루텐 없이는 ‘빵’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익숙한 그 맛과 식감을 위해서라면 조금의 글루텐은 눈을 감기로 마음먹었다. 글루텐이 첨가된 쌀가루인 강력쌀가루로 만들기 시작했다. 강력쌀가루, 소금, 기름, 설탕, 이스트로 식빵을 구웠다. 결과물은 매번 빵이라 부를 수 없는 떡이었고,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베이킹 서적을 사고, 유튜브를 보며 문제점을 하나씩 고쳐가던 어느 날. 드디어 ‘식빵’ 다운 식빵을 만들어냈다. 쫀득한 식감과 담백한 맛. 기존의 식빵과는 조금 달랐지만, 오히려 더 맛있었다. 그때부터 자주 빵을 구웠다.
이제는 견과류도 넣고, 재료도 다양하게 바꿔보며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맛있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커다란 식빵 하나를 구워 토스트용으로 먹기 좋게 잘라 냉동실에 얼려둔다. 출출할 때면 하나씩 꺼내 토스트기에 넣는다. 테두리가 살짝 그을릴 만큼 노릇하게 구워진 식빵을 한 입 베어 물면, 바삭 소리가 울려 퍼진다. 쫀득한 식감 사이로 호두와 블루베리가 톡톡 씹힐 때면 간식을 먹으면서도 건강을 챙기는 기분에 왠지 모르게 뿌듯해진다. 두 장, 세 장을 마음껏 먹어도 죄책감 없는 간식이 있다는 건 꽤 든든한 일이다. 식빵도, 나도 조금씩 매일 구워진다. 오늘은 더 노릇하게 구워진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