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_ 무생채비빕밥
가스불을 켜고 프라이팬을 올린다. 현미유를 두른 뒤, 팬을 살짝 기울여 고르게 퍼지도록 돌린다. 따듯한 온기가 올라오면 밥그릇에 미리 깨두었던 계란 두 알을 조심스레 붓는다.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을 터뜨리면 어김없이 빠지고야 마는 껍질 조각은 평온한 부엌의 불청객이었다. 투명했던 흰자에 하얀빛이 감돌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넓은 냄비 뚜껑을 덮는다. 쌀밥을 한 주걱 크게 떠 라면 하나가 너끈히 들어갈 만한 커다란 그릇에 담는다. 빨간 무생채를 밥의 절반이 가려지게끔 포갠다. 후끈한 열기를 머금은 냄비 뚜껑을 젖히면 반숙으로 변한 계란이 기다린다. 남겨진 하얀 부분 위에 살포시 얹는다. 뚜껑 사이에 고소함을 묻힌 참기름병을 꺼내 위아래로 가볍게 흔든다. 뚜껑을 열고 한 바퀴 그리고 두 바퀴 두른다. 한 번은 아쉬우니까.
슥슥 비벼 한 입 베어 물면, 화려한 전주비빔밥도 부럽지 않은 오후의 행복이다.
메뉴판에 비빔밥이 보이면 수많은 메뉴 사이에서도 늘 망설임 없이 고르곤 했다. 자주 먹고 싶은 음식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 건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나물을 준비할 자신도 없었지만, 빠른 시일 내에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신경 쓰였다. 어느 날, 냉장고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무생채 반찬을 발견했다. 상하기 전에 얼른 먹어야겠단 생각에 꺼내 들었다. 먹을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땐 계란만 한 게 없다. 계란프라이가 비벼진 밥 한 입, 무생채를 한 입. 노른자의 고소함과 무의 달큼함은 오래된 친구처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알고 보니 '무생채비빔밥'은 이미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어쩐지, 이렇게 완벽한 맛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지.' 아마도, 간장계란밥 다음으로 사랑받는 조합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 이후, 자주 만들어먹기 시작했다. 노른자의 고소함과 무의 달큼함만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노른자를 어떻게 익히는지가 관건이다. 반숙으로 익혀 무와 밥을 모두 적셔야만 입 안에서 고소함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한 알로는 부족하다. 두 알이 딱이다. 그리고 마무리는 반드시 참기름이다. 그것도 국내산 참기름이어야만 한다. 중국산 참기름은 깨의 고소한 풍미가 아쉬워 코에서만 감돌뿐, 입안을 감돌기엔 부족하다. 국내산 참기름은 뚜껑을 열기 전부터, 그 사이에 묻어난 기름만으로도 고소함을 노래하고 있다. 한 바퀴만 둘러도 충분하지만, 참기름만이 가진 향기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넉넉하게 두르고야 만다. 식료품 중에서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단연코 국내산 참기름이다. 한두 방울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행복을 선사해 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빨강노랑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대단한 요리도, 근사한 상차림도 아니지만, ‘나에게 잘 먹는다는 건 이런 거야’라고 말해주는 음식. 어쩌면 그 고소함이, 잃어버렸던 입맛이 아니라 무너졌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아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