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 뒤집어 보는 기억 _ 애호박전
어느새 키가 자라 부엌 조리대에 손을 올릴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엄마는 일정한 두께로 썬 애호박에 소금을 톡톡 뿌렸다. 그리곤 한참 동안, 홀로 두었다.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뿜어내는 애호박들. 엄마는 그제야 부엌으로 돌아와 손으로 꾹꾹 눌러 그 눈물들을 닦아주었다. 한껏 서러움을 쏟아낸 만큼 아이들은 작아졌다. 줄어든 몸집이 안쓰러운지, 노란 옷을 고이 입혀주고 하얀 눈을 덮어주었다. 따듯하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하나씩 천천히 올라갔다. 애호박들은 갈색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내게로 왔다.
엄마가 부쳐주던 애호박전은 가장 좋아하던 메뉴였다. 칼을 쥘 줄 아는 나이가 된 뒤부터는 어깨너머로 보았던 엄마의 손놀림을 떠올리며 혼자 만들어 먹곤 했다. 어느 날, 한 식당에서 '모둠전'을 시켰다. 다소 두꺼운 모양새에 걸맞게 단단한 식감이었다. 맛도 밍숭맹숭했다. 그때 알았다. 보통의 애호박전과 엄마의 애호박전이 다르다는 걸. 내가 아는 애호박전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알맞은 간은 간식으로도, 밥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었다.
엄마의 애호박전은 너무 얇게 썰어버리면 흐물흐물해지고, 너무 두껍게 썰면 절여지지 않아 식감이 단단해진다. 적당한 두께로 썰어야만 말랑말랑한 식감을 만날 수 있다. 흔히 먹는 두께는 0.5cm이지만 그보다 살짝 얇은 0.3cm가 딱이다. 접시 위에 겹치지 않도록 고르게 펼치고 선, 고운 소금을 뿌린다. 얇고 고르게 뿌려야 짠맛이 없다. 20분쯤 지나면 송골송골 수분이 맺힌다. 네댓 개씩 한 줄로 줄 세워 양쪽을 손으로 꾹 누르면 물기가 흘러나온다. 중앙 부분이 옴폭 들어가면 수분이 잘 빠진 거다. 부침가루를 꺼내 앞뒤로 고르게 묻히고 계란물에 담근다. 중불로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기름을 적당히 두른 후, 하나씩 올린다. 어서 먹고 싶은 마음에 뒤집개를 쥔 손이 들썩인다. 삼 분이라는 긴 시간이 간신히 지나면 조심스레 뒤집는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노릇한 갈색빛을 품은 애호박전이 마침내, 내게로 온다.
애호박 하나를 사면 아쉬움 없을 만큼 수북한 애호박전이 나온다. 한 접시를 부치고 먹는데 까지 꼬박 한 시간이 걸린다. 먹는 데는 고작 삼 분. 그렇지만 그 기다림과 고생은 기꺼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보통의 레시피와 다른, 엄마만의 방식으로 내가 만든 애호박전. 분명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이지만, 그 맛에는 엄마의 시간이 배어 있다. 부엌 한편에서 젊었던 엄마가 서성이고, 만화영화에 빠져 있던 어린 내가 겹쳐진다. 애호박전은 언제 먹어도, 언제나 엄마가 만들어준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