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도시락

오늘만 허락된 사치 _ 유부초밥과 컵라면 그리고 과자

by 붕대토끼


-"루고야, 오랜만에 같이 낚시 갈까?"


-"그럼, 우리 마트 가는거야?"




용이는 두 달에 한 번쯤 포항 바닷가로 향한다. 바로 낚시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중 절반만 따라나선다. 야간 낚시를 선호하는 용이 때문에, 매번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고, 밤 열두 시가 되어야 도착한다. 무거운 몸을 이기지 못한 채,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따라나서는 데에는 꽤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과자와 컵라면을 먹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낚시터에서의 저녁 메뉴는 단 하나. 유부초밥과 컵라면이다. 용이의 오랜 루틴이다.




오랜만에 용이를 따라 낚시를 가는 날이다.


어젯밤, 집 앞 마트에서 사 온 유부초밥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갓 지은 쌀밥을 양푼이에 두 주걱 담고 선, 포장지 안에 함께 들어있던 소스를 붓는다. 휙휙 고루 저어 한 김 식힌 뒤, 물기를 꽉 짜낸 유부에 밥알을 가득 채운다. 통통한 삼각형이 만들어지면, 유리용기에 차곡차곡 담는다. 장바구니에 나무젓가락 두 개를 함께 넣고 선, 현관문을 나선다.


트렁크를 활짝 젖힌 채, 커다란 장비를 넣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보인다. 조수석에 앉자 이내 시동이 켜진다. 대형 마트에 들어서자 용이는 음료 코너가 있는 오른쪽으로 향하고, 나는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형형색색 과자 봉지가 모여 있는 선반으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다가선다. 어젯밤부터 무슨 과자를 집을지 상상한 탓일까, 조금의 두리번거림 후에 바나나킥과 빈츠를 집어 든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갈 때면 봉지 과자 하나와 박스 과자 하나를 고르던 나만의 규칙이 있었다. 봉지 과자를 한 손에 들면 왠지 모를 마음이 풍성해지는 듯했고, 박스 과자 속 소포장된 비스킷을 하나씩 아껴 먹을 때면, 점점 사라져 가는 과자가 애틋하게 느껴지곤 했다.




각자의 쇼핑을 마친 후, 우리는 컵라면 코너에서 재회했다. 과자는 가끔 한 조각씩 먹는 날이 있었지만, 라면을 먹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신장질환이 악화된 이후, 끊은 음식 중 하나였기에, 낚시를 가는 날이 유일하게 허락된 날이었다. 라면은 어린 시절, 엄마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 허기를 달래주던 소중한 친구였다. 빨간 국물, 하얀 국물, 자박학 국물까지. 매번 달라지는 내 기분에 맞장구라도 쳐주 듯, 다양한 모습으로 반겨주던 친구. 그리고 아쉬움을 밥 반공기로 허전할 틈 없이 채워주던 그 자상함. 언제나 그리운 존재다.

가장 좋아하는 너구리 컵라면을 집자, 용이는 새우탕 라면을 골랐다.


'너구리가 최고인데...'




조수석에 앉자마자 바나나킥을 집어 든다. 바나나를 연상케 하는 살짝 말아 올린 노란 몸을 한 입 베어 물자, '바사삭'하는 경쾌한 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진다. 입 안에선 바나나 향기가 감돌고, 입가에는 노란 가루가 후드득 휘날린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날카로운 용이의 눈빛과 마주쳤다. 말 대신 과자를 그의 입에 넣는다.

"에휴, 맛있게 먹으면 됐다~"

그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잠시, 한 봉지를 깨끗이 비우고 이내 빈츠 박스를 손에 든다.


"우와, 바다다!"

입 안이 조용해질 무렵, 바다에 도착했다. 이미 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의 차로 가득하다. 들뜬 나와 달리, 용이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낚시할 자리 없을 것 같아..."

우리는 간신히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선, 낚싯대를 펼쳤다.




밤 8시.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파도 소리만이 고요히 울려 퍼질 즈음, 용이가 출출한 모양인지 밥을 먹자고 했다. 작은 버너에 불을 켜고, 조그마한 주전자에 생수를 가득 붓는다. 끓인 물을 컵라면에 부으니, 단단했던 면발이 어느새 부드럽게 풀린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면발을 호호 불어 한 입 넣는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쓸쓸함이 불어온다. 라면을 함부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이 괜스레 아쉽다. 그러나 곧, 국물에 살짝 적셔 먹는 유부초밥이 입 안을 가득 메우자 모든 서러움은 잊히고, 라면 면발과 함께 황홀함만이 남는다.

나는 원래 유부초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새콤달콤한 밥맛이 늘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도시락도 이 순간보다 완벽할 수 없었다.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대신, 한 입 한 입을 마지막 한 입처럼 음미할 수 있는 슬프지만 조용한 축복. 오늘은 슬픔 모두 내려놓은, 순수한 축복만이 남은 저녁이었다.

오늘의 저녁은 용이가 좋아하는. 아니, 우리가 좋아하는 유부초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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