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지만 완벽한 식탁 _ 누룽지와 들깨미역국
젖혀진 커튼 너머로 바람과 햇살이 스며든다. 부풀었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커튼을 멍하니 바라보다 방안의 고요함을 물리치는 알람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한 손에 쥐어지는 아담한 민트색 텀블러에 하얀 커피포트로 막 끓여낸 물을 한 컵 붓고 찬물로 나머지를 채운다. 따스한 온기가 목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노란 글씨로 '프로바이오틱스'라고 적힌 보라색 포장지를 뜯어 입에 털어 넣는다. 텀블러가 가벼워졌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스테인리스 냄비를 꺼내 누룽지 한 줌과 물 두 컵을 붓고 불을 킨다. 전날 밤 끓여둔 들깨미역국도 꺼내 함께 끓인다. 미역이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하면 계란 하나와 한 입 크기로 반듯하게 썬 두부 반 모를 조심스레 넣는다. 조용한 부엌이 국물 튀어 오르는 소리로 아득해지면 약불로 줄인다. 단단한 공이 된 노른자가 들깻가루 사이로 비치면 가스불을 끈다. 계란은 어떤 국과도 어우러지는 친화력 좋은 녀석이다. 오늘 하루와 어울릴 하늘색 국그릇을 꺼내 하나가 된 계란과 두부를 차례로 쌓고 미역 이불을 덮는다. 들깨가루가 녹아든 뽀얀 국물 한 국자로 그릇의 여백을 채운다. 밥그릇엔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누룽지를 담아낸다. 냉장고 문을 열자 투명 플라스틱 용기 속에서 잠든 동치미가 보인다. 무 세 조각을 건져 올리고 국물 두 국자를 더한다. 쟁반 위에 세 개의 그릇과 양배추즙 한 포를 나란히 올린다.
호호 불어 누룽지 한 입을 입에 넣는다. 다른 반찬 없이 누룽지 한 그릇만 먹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따듯한 구수함이다. 손바닥 크기 다시마 한 조각으로 우려낸 육수에 간장 한 스푼, 마늘가루 반 스푼, 핑크솔트 한 꼬집을 넣어 만든 미역국. 미역을 수북이 덮은 숟가락이 입천장에 닿는다. 너무 싱겁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삼킨다. 들깻가루의 고소함이 입안을 감돌자 걱정은 이내 사라지고야 만다. 간장을 더 넣어볼까 하는 유혹을 참아낸 순간이 기특하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다시마와 미역은 서로 뒤엉켜 깊은 사이가 된 듯하다. 싱겁다는 불안을 이겨냈기에 생겨난 녹진함이다. 보통의 국은 끓일수록 서로의 주장만 강해지기에 옅게 만들어야만 하지만 이 둘 사이는 그저 깊어만 갈 뿐이다. 누룽지의 뜨거움이 사그라들 즈음 무 한 조각을 아삭 베어문다. 시원한 시큼함이 "오늘 하루도 잘 보내보자."라고 응원을 보낸다.
그릇이 바닥을 드러내면 마지막으로 양배추즙을 뜯는다. 익숙하게 아침약을 꺼내 든다. 한 움큼의 약들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온다. 어느덧 17년. 이 시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지나온 순간이지만,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분명 나를 살리는 고마운 녀석들인데 어쩐지 한숨 말곤 건넬 말이 없다. 숨 막히는 어색함을 깨는 건 언제나 양배추즙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순간들의 연속에서 늘 곁에서 나를 지켜주겠노라고. 속삭인다. 오늘도 한 움큼의 배가 불러왔지만, 왠지 더부룩하진 않다.
요리에서 가장 신경 쓰는 건 언제나 재료다. 단순한 과정과 신선함을 갖춘 식재료는 그 자체로 요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 되곤 한다. 그다음은 조리법. 기름에 굽거나 튀기는 방식은 가능한 멀리한다. 계란을 국에 익혀먹는 건 계란프라이를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찾아낸 방법이다.
정해진 레시피는 없다. 다진 마늘이 없으면 마늘가루를 넣고, 다시마가 없으면 없는 대로 요리한다. 부족한 맛은 오히려 재료 본연의 맛을 드러내준다. 그래도 아쉬울 땐 평소 두세 모금만 마실 수 있는 동치미 국물에 좀 더 욕심을 내본다. 그럼 고개가 끄덕여지고야 만다. 동치미는 저염식이라는 원칙 속에서 받은 작은 허락이다. 하얀 무와 하얀 국물은 외로운 밥상 앞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다.
오늘도 여전히 서툴기만 한 밥상이지만, 천천히 음식을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