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득아삭떡볶이

붉은 추억 위에 올린 따듯한 위로 _ 야채떡볶이

by 붕대토끼


빨간 떡볶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해 온 간식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가는 곳은 언제나 분식집이었고 떡볶이를 먹느냐 마느냐는 고민거리조차 아니었다. 당연하게 주문했고, 당연하게 친구들도 함께했다.


떡볶이는 무엇을 곁들이냐에 따라 매번 새로운 얼굴이 된다. 그중에서도 납작 만두는 단연 최고였다. 노릇하게 구워진 만두에 떡볶이를 둘둘 말아 한입 가득 넣으면 바삭함과 말랑함이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납작 만두에 싸 먹으면 달갑지 않은 파조차도 맛있기만 하다. 그다음은 단연코 튀김이다. 길쭉하고 통통한 오징어튀김을 제일 좋아했다. 김밥, 튀김, 순대, 어묵 국물이 차려진 떡볶이 밥상은 작은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분식집을 드나드는 복장이 교복으로 바뀌면서 떡볶이 밥상도 조금씩 변해갔다. 낯설기만 했던 고추튀김 속에 담백한 야채소가 들어있다는 사실은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햄치즈토스트를 빨간 국물에 적셔 한 입 크게 물었다. 빵의 촉촉함이 매운맛을 감추는 순간 나의 창의성에 흡족해했다.


"토스트를 국물에 찍어서 먹어봐. 이상할 거 같지? 진짜 맛있다니까!"

"쿨피스 시켜야겠지?"

"떡볶이 다 먹고 볶음밥도 갈까?"


떡볶이 밥상은 언제나 친구들과의 진지한 회의의 장이었고, 짝사랑하는 아이가 누군지를 조심히 꺼내보는 은밀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자신만의 떡볶이 먹는 법을 공유하는 비밀 메이트였으며, 매운맛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전우였다. 그렇게 우리는 오래 끓인 떡볶이 국물처럼 점점 더 달아지고 깊어져 갔다.




빨간 떡볶이가 그리운 날이면,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야채들을 하나씩 꺼낸다.


쌀떡볶이, 어묵, 양배추, 파프리카, 팽이버섯, 파, 콩나물을 하나씩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는다. 쌀떡볶이는 물에 담가 부드럽게 풀어준다. 하얗고 넓은 도마를 꺼내 싱크대 왼편에 올리고, 팽이버섯과 파의 흙 묻은 밑동을 잘라낸다. 수도꼭지를 젖히면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 숨어있는 흙을 흘러 보낸다. 손바닥만 한 양배추 잎 세 장과 빨간 파프리카도 차례로 씻는다. 팽이버섯은 듬성듬성 찢고, 파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널찍하게, 파프리카는 길쭉길쭉하게, 어묵은 조그마한 네모로 썬다. 넓은 프라이팬을 꺼내 참기름을 한 바퀴, 두 바퀴 두른다. 기포가 살짝 오르면 파를 촤르르 부어 휘휘 젓는다. 이어서 파프리카와 팽이버섯을 넣자, 흘러나오는 물이 파향기와 만나 부엌 공기를 떠다닌다. 다진 마늘 한 스푼, 간장 한 스푼, 사탕수수원당 두 스푼을 넣는다. 찬물에서 헤엄치던 떡볶이를 건져 어묵과 함께 넣는다. 단단했던 떡이 말랑해지면 어묵도 어느샌가 몸집을 불린다. 흘러넘치진 않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주걱을 천천히 휘젓는다. 떡에서 전분이 흘러나오자 야채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영롱한 윤기 위에 콩나물 한 줌을 씻어 살포시 얹는다. 불을 끄고 콩나물이 야채들과 인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어색함도 잠시,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건네기 시작하면 넓은 오목한 그릇을 꺼낸다.


야채떡볶이의 핵심은 떡볶이가 아닌, 콩나물이다. 부들부들한 야채들이 한 몸이 되어 흐느적거릴 때, 혼자서 아삭함을 뽐내는 콩나물. 단조로운 식감이 지루해질 찰나 불쑥 나타나는 아삭함은 젓가락 질을 재촉하고야 만다.




맵고, 달고, 짠 음식의 다른 말. 맛있는 음식.

익숙하고 강렬한 맛을 포기하는 일은 음식을 끊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다르다는 것.

나는 평범하지 않다는 것.

난 사소하고도,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음식이, 나 자신이 미웠다. 그 미움의 시간들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맵지 않아도, 달지 않아도, 짜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세상에는 아직 내가 맛보지 못한 맛이 있었다. 아삭한 맛, 쫀득한 맛, 부드러운 맛 그리고 우리만 아는 '심심하지만 든든한 야채 가득 떡볶이' 같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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