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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미 Jun 04. 2022

살면서 감사하고 싶은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감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댁~"
"새댁~"

따뜻한 미역국을 한가득 담은 쟁반을 들고 들어온다.
"얼른 먹어 국에 말아서 꾹꾹 많이 먹어야 회복도 빠르고 아기 밥도 많이 나와 식기 전에 얼른 먹어"

미안한 맘 보이기도 전에 아기를 들여다보며 기저귀를 갈아준다.
"아이고 이쁜 우리 꼬마 아기씨 아이고 귀여워 아이고 하품도 하고 아고고 ~~ 우쭈쭈~~"


어느 추운 겨울 첫딸 출산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주인집 수민 언니는 친언니와도 같이 따뜻한 분이었다.

"새댁 산후조리할 사람은 누가 올 거야?"

"올 사람이 없어서 아기아빠가 휴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이고~ 입이 하나 더 늘었는데 아빠는 회사 가서 더 열심히 돈 벌어야지~"
"친정 엄마는 애기가 태어난 줄도 모르고 계시고, 시어머니는 집안 내림으로 산후조리를 하시면 산모랑 조리해주는 사람이랑 같이 아프다고 하시고 연세도 많으셔서~ㅠ"

어린 나이에 남편을 만나 동네 부끄럽다고 서슬 푸른 친정 오라비가 무서워 친정 엄마한테조차 소식도 못 전하고 살던 때였었다.


"그래? 새댁 걱정하지 마 내가 해 줄게"
"나도 혁기랑 수민이 낳고 몸조리를 잘 못해서 아직도 겨울엔 동상이 걸렸던 손가락이 가려워  

산후조리는 잘해야 해 잘못하면 평생 고생해~"

"?"
"괜찮아, 내가 해 줄게 나도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내 산후조리를 친정 언니가 해줬어 언니나 나나 둘 다 철이 없어서 산후조리 그런 거 신경을 못써서 아직도 겨울만 되면 손가락이 가려워." 


그렇게 고생을 스스로 자청하는 집주인 언니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받기만 하는 날이 시작되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연탄보일러에 따뜻한 물도 데워서 써야 하는 시절에 수민 언니는 아침나절 아기 목욕물부터 들여와 씻겨주고 기저귀랑 빨래는 겨울 짧은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하얗게 말려서 반듯반듯 개벼 놓아주었고 고기를 곱게 갈아서 참기름에 다글다글 볶아 끓인 뽀얀 미역국의 진한 맛은 먹어본 미역국 중 최고였던 것으로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었다.

삼칠이 되도록 무리하면 안 된다고 극구 쉬도로 하고 아기가 울세면 얼른 달려와 얼르고 안아주고 업어주며 일인 몇 역을 하는지~
그아기가 자라 결혼을 하였고 손주를 낳아서 산후조리를 해봤지만 시간 맞춰 먹이고 씻기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이 결코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었음을 경험한 바 있다.

만약 그때 친정 어머니가 오셨어도 시어머니가 오셨어도 그 언니만큼은 절대 할 수없었을 것이라 장담하며 새삼 그 고마움을 새기게 된다.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갓스물 사회 초년생,

입사한 첫 직장의 품질관리과에서 근무하던 내 서방님은 참 단정하더라.

제눈에 안경이라 할지언정.

전영록을 닮은 듯 비슷한 잠자리 안경에 꼭 다문 입술은 차가운 듯 조용하였고 잘 정돈된 옷매무새는 거리감을 갖게 하여 함부로 말을 건네기 어렵다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내 서방님이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그의 첫인상~.


어느 날 함께 근무하던 동료 순자가 다가왔다. 

"나 있제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ㅋ"
"진짜?"
"근데 나 혼자 짝사랑이야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지도 몰라ㅠ"
"ㅠ 그럼 좋아한다고 말해보면 되지~ 그쪽도 좋아할지 모르잖아~"

"용기가 없어 나한테는 관심도 없는 것 같아"
"뭐하는 사람인데?"
"너도 아는 사람이야"
"그래?"

뜻밖의 고백을 한다.  

내심 혼자 속앓이 하지 않고 얘기해줘서 고마웠고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친구야 이번 주말 뭐할 거야?"
"왜?"
"나랑 은주네 놀러 갈래?"

"그럴까?"

생글생글 잘 웃는 순자는 얼굴이 자그마하고 입술이 도톰하며 웃는 인상이 아주 매력적인 친구다. 


다음날~
우리는 예쁘게 뿜 뿜 하고 친구 은주네 집으로 향했다.

"순자야 은주네는 이쪽으로 가는 거 아니야?"
순자가 은주네 집이 아닌 옆길로 들어선다.
"요기 어제 내가 말했던 그 사람 집이야"
환하게 불이 켜진 창 앞에서 조용조용 손짓을 하는 순자의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어 초롱초롱하기까지 하였다.
"그래?"
"응"
망설이는 친구를 대신해 성큼성큼 대문 앞으로 가서 살짝 문을 밀어보니 스르르 열린다.

"계세요?"

문 앞에 슬리퍼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고 방금 씻고 들어간 듯 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다.
"누구세요?"

목에 수건을 두른 체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 웬일이에요 여기까지~"
뜨악해하는 남자를 마주하고 있는 내 등 뒤에서 순자는 발그레한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수줍수줍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여기 그냥 서 있을까요?"
"아 네네 들어오세요" 당황스러워 하는 남자를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뭐 별것도 아니구먼 말을 못 해서 그러냐'는듯 당당하게 디밀고 들어가니 남자 혼자 쓰는 방이 여자들 방보다 깔끔하니 정돈되어 있었고 방금 빨아놓은듯한 하얀 걸레는 통안에 꼭짜여진체 담겨있었고 살림살이는 단출하였다.

첫인상처럼 참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 그대로구나 내심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예상 못한 방문에 놀란 기색이 역역하면서도 싫지 않는 눈치이다.

사과 하나를 꺼내어 깎으려는 걸 내가 얼른 받아서 깎는 동안 순자는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애꿎은 방바닥만 비비고 있었다.
"사실 옆집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친구 집 가다가 요기 계신다 해서 들렀어요. 이 친구가 댁을 알고 있어서~"

"아~네 여자 손님이 처음이라 그것도 두 분씩이나~ 좀 놀랬어요~"

하며 웃는 모습이 평소에 보던 모습과 다르게 참 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먹함을 없애보려 너스레를 떨다 보니 어느새 잘 아는 사람처럼 얘기들이 오고 갔다.

순자도 마음이 안정이 되었는지 살포시 웃으며 얘기를 곧잘 했다.


"아 혹시 두 분 내일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동래산성 가실래요? 종발이랑 같이 가기로 약속이 되어있는데 같이 가면 좋을듯한데요"
순자의 눈빛을 보니 반짝 빛이 나는 듯했다.
"그래요 우리도 별일은 없는데 순자야 어때?" 하니 친구는 살포시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히 좋아라 한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차 한잔을 마신 뒤 우리는 은주네 집으로 갔다.

샛길을 들어서면서 뒤따라 오던 순자가 

"칭구야 니 코트 그 집에 두고 온 거 아니야?"
"어맛 내 코트~어짜지?"
"어차피 내일 만날 거니까 내일 가져오면 되지 그냥 가자"

"그럴까? 아오~ 내정신 ~ 깜빡했어ㅠㅠ"

은주 친구는 어릴 적부터 살림을 도맡아 하다시피 한 알뜰한 살림꾼이라 음식 솜씨도 좋았다. 콩나물 무침 오이무침 짜글이로 오랜만에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었고 다음날 은주는 선약이 있어서 함께 가지 못하였고 순자랑 같이 다시 그 집으로 갔었다.

같이 가기로 한 종발 씨가 아직 도착 전이라 방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차 한잔을 마시고 있으려니 얼굴이 귀여운 종발씨가 스르륵 문을 열고 얼굴을 디밀며 눈이 똥그래진다.


동래산성에 올라 저 멀리 부산시내와 해운대가 한눈에 들어와 툭 터진 공간이 마음까지 넓어지게 해 주었다. 내려오면서 명물인 산성막걸리 한잔씩에 도토리묵, 파전도 맛있게 먹었고, 탁구장에 가서 탁구도 한 게임하고, 음악다방에 가서 신청곡을 들으며 차도 한잔하고 내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인 건 코트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힌 작은 메모지가 들어있었는데 같이 있느라 열어보지 못하다가 화장실에 가서 펼쳐보게 되었다.

어제 두고 온 코트 주머니에 메모를 적어 넣어 놓은 듯하였다.
내용인즉  

"방문해줘서 고마웠고 좋은 시간이 되었어요"
아하~ 이거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은데~~ㅋ

한층 가까워지고 벽이 없어진 것 같은 편한 사이가 되어서 가볍게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넷이서 함께 만나게 되는 날이 많아졌고 많이 편해진 듯했다.

그리고 한 가지 변화는 순자와 종발이가 의외로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좋아한다던 남자가 이 남자가 아니고 저 남 자였었나? 할 정도로 죽이 잘 맞았고 어쩌면 종발이가 더 적극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순자는 본인이 좋아한다고 했던 말을 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하면서~

어찌 되었건 순자의 첫사랑은 지금의 내서방이 되어 평생을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구나 싶다.
앞만 보며 바쁘게 살다 보니 뒤돌아 볼 여유를 못 가지고 살았는데 이렇게 글을 적어가다 보니 그때 그 시간을 한 번 더 새기게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고마움으로 남을 만큼 마음을 나누며 살고 있는지 반성의 기회도 가져본다.

수민 언니 ~
순자야~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하며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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