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이발사와의 대화

by 이 륙

보르도에서 지낸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출국 전 머리를 짧게 잘랐건만, 그새 많이 자라 있었다. 앞머리와 윗머리는 비교적 짧았지만 옆머리와 뒷머리가 문제였다. 원숭이 같았다. 부랑자 같기도 하고. 이런 꼴로 다닐 순 없었다.


위험 부담이 컸지만 미용실에 가야 했다. 남은 기간 동안 원숭이를 자처할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온라인으로 집 근처 바버샵 예약이 가능했다. (한국에서만 모든 것이 디지털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다음 날로 예약을 하고 그날이 오자 떨리는 가슴을 안고 바버샵으로 향했다.


문 앞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웹사이트도 있고 하니 트렌디한 인테리어와 젊은 미용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내부는 동네 이발소 느낌인 데다 미용사보다는 이발사라는 타이틀이 더 잘 어울리는 50대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머리카락의 비극이 뻔히 그려졌지만 예약을 하고 왔기 때문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앞 순서 남자와 이발사가 프랑스어로 유쾌하게 대화를 나눴다. 몇 마디 밖에 하지 못하는 나는 걱정이 됐다. 무슨 말을 하지? 영어를 할 줄 알까? 어색할 것 같은데? 모르겠다. 30분만 꾹 참아보자. 그러는 사이 남자 손님이 "옵라!" (Opla, 한국어로 치면 "아이고" 정도의 표현이다.) 하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에이프런을 두르고 이발사에게 하고 싶은 머리 사진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굉장히 젠틀한 분이었고 나와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쓰며 (서로 절반 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한 데도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예상과는 반대로 어색함이 비집을 틈도 없이 대화가 끊기지 않았고,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하지 않았다면 놓쳤을 흥미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됐따.


이발사는 자신을 30년 넘게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는 뮤지션이라고 소개했다. 무언가 고독해 보이는 얼굴이 베이스와 잘 어울렸다. 바버샵 일은 사이드잡으로 시작했지만 주 수입원이 된 지 오래인 듯 보였다. 프랑스는 예술을 하기 좋은 나라라고 했다.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았거나 내가 놓쳤다.


그는 또 프랑스의 북부 지역인 노르망디 출신이었다. 노르망디 지역은 시골인데다 작은 도시밖에 없다 했지만 표정을 보니 그게 이발사의 취향인 것 같았다. 들어보니 노르망디, 니스, 리옹 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여러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현재는 보르도에 10년 넘게 거주 중이라고 했다. 이곳에 머무르는 가장 큰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편하다는 점을 꼽았다. (2시간이면 파리, 툴루즈, 스페인에 갈 수 있다.)


지난주 마르세유에 다녀왔다고 알려주었더니 질색을 했다. 그쪽은 프랑스의 "캘리포니아"라며 마치 뉴욕 사람이 엘에이를 못 참아주는 뉘앙스였다. 돈 있는 사람들이 은퇴하고 노년을 즐기는 휴양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지역이라고.


이발사는 격조된 목소리로 사촌이 한국과 비즈니스를 한다고 알려주었다. 신용카드에 들어가는 칩을 만드는 일을 하며 비즈니스 목적으로 한국을 여러 번 갔다고 했다. 사촌으로부터 들은 건데 한국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일한 뒤 집에 안 가고 술을 먹는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가장 심도 있게 나눈 대화는 프랑스의 정치 이야기였다. 그는 현재 프랑스의 정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러-우 전쟁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마크롱의 정책 미스로 에너지 값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세금도 너무 높다고 했다. 나로부터 26유로를 받을 텐데 전기세, 렌트비 등 이런저런 비용과 세금을 제외하면 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나라에서 주는 돈이 많아 일하는 사람과 무직자의 수입 차이가 크지 않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그의 말을 빌리자면 "Social" 또는 사회진보적인 스탠스를 고수했기 때문에, 세금 부분은 체념한 듯했다. 다른 선진국들과 같이, 또 그의 말을 빌리자면 "Capitalist", 즉 자본주의적인 정책과 삶의 방식을 추구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내비쳤다.


다양한 표정과 손짓을 동원해 가며 열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발이 끝났다. 중간중간 거울을 보았을 때 낌새가 이상했는데 역시나 망했다. 하지만 실망은커녕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머리는 금방 자라지만 한 프랑스 이발사의 인생과 견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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