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대사능력과 개인 이력의 그 쓰잘대기 없는 관계
원래의 나의 저녁 시간은 우아했다. 좋아하는 카버네쇼비뇽 와인 한잔과 치즈를 준비해 놓고 안락의자에서 김훈 작가의 책을 보거나 IPA 맥주를 해당 브랜드 전용 잔에 따라 놓고 영화를 보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자 그런 시간은 사라졌다(사실 아직도 그 시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분유, 기저귀, 병원 출동 등 극강의 체력 소모형 육아 시기가 무르익을 즈음 이어진 것은 아이 재우기였다. 내 셔츠 자락을 조약돌 만한 손으로 꼭 잡고 놓지 않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줘야 하는 것이 새로운 저녁 일상이 되었다. 아내에 의해 내게 주어진 동화책은 내가 봤던 동화책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다양했고 다시 만난 이야기들은 사건과 배경을 반세기가 지나 21세기에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재미가 있었다. 가령 '백설공주 이거 공주병 아닌가?', '인어공주는 대체 왜 이렇게 아버지 말을 안 듣나' 하는 식이거나 '개미는 일 년 내내 일만 하다가 겨울이 되면 허리디스크가 와서 쌓아 놓은 곡식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을 것이고 열심히 노래하던 베짱이는 유튜브 뮤직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겠다'하는 식이기도 했다. 또한 장화홍련이 계모로 지칭되는 새어머니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괴롭혔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어(정약용의 ‘흠흠신서’에 따르면 영조 시절 ‘백필랑·필애의 자살 사건’은 필랑·필애 자매가 자살을 유도한 계모를 때려죽였다는 기록이다. 후에 계모는 인자했고, 자매가 독살스러웠던 것으로 진상이 조사됐다. <전을 범하다> 중) 동화를 읽는 일이 갈수록 흥미로웠다.
동화책을 읽을 때 나는 마치 어릴 적 들었던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 극장' 속 배우처럼 또 당시 유행하던 팟캐스트처럼 생생하게 읽으려 노력했다. 점차 요령이 생기고 목소리 연기에 감정도 실렸다. 당연히 막연한 배우에 대한 동경이 담겼고 어느새 나는 우리 집 방구석 연기자가 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의 연기에 점차 놀라는 일이 많았다. 물론 연기력에 놀란 것이 아니라 아이들 동화책에 너무나 많이 등장하는 무서운 대사와 거기에 한 스푼 실린 감정 때문이었다. 가령 '떡 안 주면 작아먹겠다', '배를 갈라 할머니를 꺼내겠다', '가마솥에 넣어 삶겠다', '춤을 멈추기 위해 발목을 자르자', '독이 든 사과를 먹이자' 등의 동화 속 대사는 잔혹했다. 아이들의 놀라 동그래지는 눈빛에 우쭐한 나는 차차 두 꼬마의 인정 받는 방구석 배우 날로 발전했다. 같은 대사를 여러 가지 버전으로 읽어보고 같은 캐릭터의 일괄된 말투를 다시 읽을 때마다 다르게 설정해 보았다. (그때 아이들은 여러 번 읽은 책도 처음 듣는 것처럼 좋아했다) <왕과 사는 남자>의 장항준 감독은 유해진 배우를 일컬어 '대본 속 활자를 위대한 연기로 승화한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시절 동화책 읽기가 나의 인물 연구 및 리딩의 시초였다.
3달여의 학원의 코스를 마치자 원장은 '우수 성적 수강생 특별 연장 수업'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학원 등록 할 때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가 처음 나타난 그는 그때와 같이 특혜를 하사하겠다는 식의 가식적인 얼굴을 재차 보였는데 두 번 속아주기엔 내 코가 다시 다 자라지 않았다. 이후 프로필을 사진을 찍었고 학원 동료 수강생들과 강사들은 프로필 찍으면 그때부터 '배우'라며 축하해 줬다. 진짜 촬영 현장 한번 안 가봤는데 배우는 무슨. 배우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천리길 중 한걸음 디딘 정도의 격려려니 웃었다.
그들의 기준대로 배우가 되었으니 나는 이제 진정한 일 없는 무명 배우가 된 셈이었다. 프로필을 정성껏 만들었으나 정성에 비해 담을 것이 없었다. 담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진 몇 장과 이름, 출생 연도, 키, 몸무게 일뿐 경력 한 줄 담을 것이 없었다. 무명 배우가 아니라 유명무실 배우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사진과 '이름'만 있는 '실적' 없는 유명무실 프로필.
출연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Filmmakers라는 (알바천국 같다고 보면 된다) 사이트에 가입하고 회사에서 틈 날 때마다 공고창을 새로고침하며 기회를 찾았다. 'oo 드라마 40대 남 회사원역 단역 모집 (대사 있음)' 혹은 'oo 브랜드 광고 요리사 역 40대 남 출연자 모집' 등 '40대 남자'만 있으면 무조건 이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이섭이라고 합니다. 연기 경력은 아직 없지만 회사를 오래 다녀 회사원역에 자신 있으며 기회를 주신다면 오랜 회사 생활을 통해 몸에 밴 성실함으로 현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중략) 부디 좋은 작품 되시길 바라며 저도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좋은 인연 되길 희망하며 부디 성공적이 작품 되시길 빕니다. 이섭 드림'
내세울 경력한 줄이 없으니 엎드려 빌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부디', '영광' 같은 낯 뜨거운 단어만 남발한다. 회사 경력이 무슨 이력이라고 그 얘기를 했던지 안쓰럽다.
참고로 지금이나 되서야 알지만 연출부는 단역배우의 배경이나 이력에 관심 없다. 그럴 시간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서 조용히 있다가 짧은 대사 깔끔하게 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게 가장 큰 덕목이다. 그 짧은 대사에 자신의 20년 회사 이력을 투영해서 혼이 담긴 한마디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혼자서 좋아하는 게 옳다. 모든 작품은 작품마다의 세계관이 있고 대사엔 시적허용이 있다. 당연히 당신의 이력 속 직장현실과 맞지 않는다. 이때 바쁜 연출부한테 이 인물의 성장배경이 어떻고 이 회사는 어떤 회사인데 이런 대사가 문제가 있으니 나의 인물 설계를 비추어 볼 때 이 대사는 이렇게 고치는 게 어떨까요 하며 연예가 중계에서 한석규 배우가 허진호 감독과 담배피며 토론하는 장면을 따라 했다가는 다시 일하러 가기 힘들다. (그래도 요새는 조금씩 하긴 한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시키는 대로 대사 하는 능력이다. 오죽하면 어떤 캐스팅 디렉터들은 '대사 가능하세요?'라고 초장에 묻기도 한다. 간혹 나에게 배우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야 나도 배우 한번 시켜주라. 내가 이래뵈도 변호사 개업 십수년인데 변호사 연기 껌이지 않겠냐?' 나는 대답한다. '니맘 이해한다'. 그러나 이력과 대사하는 능력은 다르다. 그 친구를 예로 써먹어 보자. 자신은 말 잘한다고 생각한다. 의뢰인을 만나서도 법정에서도 술술 말 잘하고 다 잘 알아듣는다. 이뿐 만이 아니다. 동료들과 농담도 하고 택시에 타서 목적지도 칼 같이 전달하고 베트남 식당에서 고수 빼달라고 할 때 메시지 전달에 실패한 적 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말들을 대사로 해보라고 하면 쉽게 말해 엉망진창이 된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방영되고 있는 ENA 드라마 <아너>의 단역 대사를 보자. 아니 읽어보자.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백태주 대표 조사 자료입니다. A레벨, 즉 조사가능한 모든 정보망을 동원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국내는 물론 미국 현지 로펌, 증권사, 부동산 거래내역 모두 조회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금융기록과 소송, 세무 기록 모두 확보했고 관계자들 인터뷰, 건강상태 및 진료기록 사생활 및 구설, 뒷소문까지’
뭐 누구나 매일 같이 저 정도 길이의 말은 하고 사니까 쉬울 것 같지만 작정하고 읽을 땐 다르다. 잘 읽히나? 그럼 촬영을 해보자 본인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위 대사를 한번 평소처럼 말해보고 촬영 본을 재생해 보자. 미리 위로의 말을 전한다. 대부분 혀는 꼬이고 단어 발음은 뭉개져 알아듣기 힘들고 띄어 읽기 못해서 호흡은 들쑥날쑥이고 속도도 빨랐다 느렸다 다르고 끝은 내려가고 난리 법석이다. 그래도 아직 자신이 너무 잘한다고 하면 프로필 찍고 배우 시작해 보시길 권한다.
위 대사는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대사이다. 개인적으로 친하고 좋아하는 ‘문요셉’이라는 베테랑 배우가 연기했는데 내공도 보통이 아니고 정말 세련되게 잘한다(한번 찾아보시길 권한다) 호흡도 안정되고 발음은 칼 같아서 쏙쏙 귀에 박히고 뒷조사하는 비장함까지 묻어난다. 그런데 이 배우가 변호사 경력이 있을까? 신도림역 인근에서 치킨집을 운영한 적은 있다.
이렇듯 지금은 이력을 얘기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이력 한 줄 없는 프로필에 지푸라기라도 하나 얹고 싶은 마음에 별의별 얘기를 다 했었다. 미국에서 주재생활을 6년 해서 교포 연기를 할 수 있다는 둥, 사단장 운전병을 출신이라 운전기사역 가능하다는 둥(20년도 넘은 일을 막 끌어다 쓴다), 광고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오래 해서 기업 드라마 발표 장면, 법정 변호 장면 자신 있고, 애들이 있어서 아빠역 잘할 수 있으며, 골프 실력이 어떻고 등등 공고 역할에 맞춰 거짓말이 아닌 범위에서 모든 기억을 끌어다 팔았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어린이 추모 웅변대회' 나갔던 이력까지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다 지원해야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학원을 나오고 8개월 동안 단 한건의 출연건도 따내지 못했다. 하루에 대략 3~5개 정도씩 지원했으니 대략 1,000건 정도 이메일 보낸 셈이다. (아주 오래전에 포털 다음이 이메일을 우표처럼 유료화 하겠다고 한적이 있었다. 그 한치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정책이 좌절되서 그나마 이메일에 돈 안드는게 감사할 따름이다). 1,000 대 0. 결과가 0이라서 승률 계산도 안된다. 아쉬웠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회사로 접수되는 그 수많은 이력서, '제리 맥과이어'를 보며 스포츠마케팅을 꿈꿔왔고 누구보다 스포츠를 사랑하고 타고난 마케터라며 알지도 못하는 회사에 뼈를 묻겠다던 그 수많은 경력 증명 없는 자기소개서를 내가 파쇄한 게 몇 포대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