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매물도 백패킹
우리는 매물도로 향하기 위해 통영터미널로 이동했다. 잠시 서호시장에 들러 필요한 먹을거리들을 구매한 뒤 매물도로 향하는 자그마한 배에 올랐다.
매물도가 눈에 들어오고 우리는 배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배에서 내리자 귀여운 간판을 메단 당금구판장이 정면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당금 구판장에서 회를 사서 저녁으로 먹을 참이었는데, 우리가 간 날은 회를 팔지 않았다. 아쉬웠다. 저녁으로 맛있는 회와 라면을 함께 먹을 심산으로 기대에 가득 부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작은 카트를 얻어 타고 야영장으로 향했다. 좁은 길을 돌고 돌아 잔디가 펼쳐진 야영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적당히 경치가 좋은 곳에 텐트를 쳐두고 짐을 풀었다.
텐트 피칭을 끝낸 후 우리는 곧장 걷기 시작했다. 매물도는 정말 자그마한 섬이었다. 걸어서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가 섬에 늦게 도착한 바람에 장군봉까지는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가는 길목마다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있어 어두운 밤에 산을 오르게 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대신 소매물도가 보이는 전망대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빌딩이 없어 내리쬐는 볕을 온몸으로 받은 식물들은 지천을 뒤덮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꾸밈없이 우거진 수풀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도시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청계천을 따라 오래도록 걷다 보면 서서히 꾸밈들이 사라지고 그저 자라는 대로 쏟아지듯 우거진 풀들이 우리를 마주한다. 그러한 풀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걷는 길에도 그와 같은 자유로운 모습의 풀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길가에 무성히 자라난 풀들은 산책로를 뒤덮을 기세였다.
짧은 흙길을 지나자 다시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한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마을에는 옹기종기 섬마을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다에 다녀온 사람들은 슈트를 널어 말리고, 멀리 여행온 가족들은 저녁준비가 한창이었다. 자그마하지만 왁자지껄했다. 어린아이들은 목적지 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푸근한 저녁풍경이었다.
우리는 국립공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은 있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원래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인 걸까? 나무들이 너무 빼곡하여 어떤 구간은 해가 들지 않아 어두울 정도였다. 그러한 어둠을 몇 번 통과하자 너른 풀밭이 나타났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이어갔다. 마침내 소매물도가 마주 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랐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는 뱃시간이 빠듯해 들어가 볼 수 없는 소매물도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다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라면이다. 보통의 캠핑에서는 주로 빵이나 간단한 과자를 먹으며 저녁을 해결하는 우리였기에 라면을 끓이는 일도 대단한 요리를 해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국물과 함께 라면을 먹다가 분교 건물 위에 올라선 사람들이 보였다. 노을을 보는 것이었다. 우리도 먹던 음식을 덮어두고 건물 위에 올랐다. 보석같이 붉은 해가 수평선에 걸쳐져 있었다. 잠시 그 하늘을 만끽했다.
해는 금세 넘어갔다. 사람들은 하나 둘 불을 밝혔다. 매물도는 백패킹으로 워낙 유명한 장소라 야영장이 빼곡한 텐트로 가득한 사진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걱정되었더랬다. 도시를 떠나 멀리까지 왔는데 또 사람들에 치이는 것은 아닐지 불안했었다. 하지만 날을 잘 고른 탓인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주변은 조용했고 각자 자그마하게 밝힌 불빛 아래에서 서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텐트 앞에 앉아 고요한 시간 속에서 쉬었다.
빗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가벼운 비였다. 겉옷을 걸치고 산책에 나섰다. 야영장 옆으로 작은 샛길이 있었다. 그곳을 향해 걸으면 색색깔의 텐트가 쳐진 폐교 야영장이 그대로 내려다 보였다. 우거진 숲과 바다를 보았다.
우리는 빗속에서 짐을 정리했다. 비가 많이 내리진 않았지만 짐이 젖을 수 있어 우리는 서둘러야 했다. 간단히 짐을 챙겨 폐교 건물 안에 두고 텐트를 정리했다.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난 것은 오랜만이었다. 이래저래 짐을 정리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캠핑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소 어렵고 불편한 환경을 마주하더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감각을 깨우게 된다.
작은 배는 금세 출발했다. 매물에서는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많았다. 장군봉에 오르지 못했고, 야영장 옆 산책길을 마저 다 걷고 싶었다. 다음에 매물에 오면 꼭 마저 걸어보자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렇게 촉촉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매물을 떠났다.
300mm - https://youtu.be/p2Oe5kKDO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