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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sang Oct 07. 2019

나는 왜 '임신'을 하려고 했을까

엄마가 돼야겠다는 결심(?)까지의 생각 정리

작년 이맘때쯤, 난 엄마(친정어머니)와 '임신' 이야기만 나오면 투닥거렸다.

이건 win-win 하는 합의점을 찾아내는 토론이 아니었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주입하는 강요밖에 되지 않았다.

나와 엄마의 대화는 이러했다.



"이제 나이도 있고 아기 가질 계획이면 하루라도 젊을 때 가져야지."

"난 애 낳는 기계가 아닌데?! 아직 인생에 자식이 필요한지 모르겠어."

"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래. 살면서 자식은 꼭 필요해."

"왜?"

"부부관계가 언제나 지금처럼 좋을 줄 아니?" 

"(헐...진심 당황) 엄마, 나는 신랑이 지금도 정말 좋고 앞으로도 쭉 좋을 거야.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그건 너 생각이고. 나중에 자식 없으면 노후도 쓸쓸해."

"노후 때문에 애를 낳으라고?"

"인생에 자식은 꼭 필요하다고. 회사 그만두고 지금처럼 엄마랑 옆에 있을 때 임신하면 얼마나 좋아?"

"...엄마, 내가 아기가 갖고 싶을 때 노력할게. 그만 얘기하자."

"잘 생각해봐."

"제발 그만 얘기하자."


뭐, 이런 식이었다. 둘 다 감정이 상하긴 마찬가지.

엄마는 인생 경험과 연륜으로 자식은 꼭 있어야 한다는 갖가지 이유를 찾아냈고, 나는 모든 권유에 하나씩 반박했다.  

이제 환갑이 넘은 엄마를 보면서 '자식이 있으면 덜 외롭고, 삶이 더 즐겁겠다.' 싶었지만

그 아리송한 느낌만으로 자식을 낳을 수는 없었다.

뒷감당(?)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차고 넘쳐났기 때문이다.



언론은 연일 '인구절벽', '인구감소의 충격', '초저출산 시대'라며 나라가 망할 것 같은 공포감을 형성한다.

통계를 보면 오히려 아기 낳기를 포기해야만 할 것 같다.

유엔경제 사회국은 '2019년 세계 경제인구 전망' 보고서에서 "2060년 한국은 생산연령인구(15세~64세) 1명이 1명 이상의 비생산연령인구(노인·유소년)를 부양"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 자식이 태어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생산연령을 부양해야 할 짐을 지게 된다.


또한,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출생 통계'에서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8명이었다. "사상 처음 1명 밑으로 떨어졌고, 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한 0명대 국가"라고 한다.(서울신문, 2019년 9월 11일 자, '인구절벽에 1인가구 급증 2045년 추석 땐 귀경 풍경 볼까').

참고로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세~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로, 국가별 출산력 수준을 비교하는데 사용된다(통계표준용어 참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라에서 그렇게 애를 낳으라고, 그러면 돈도 준다고, 홍보해도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않는 이유.


참고로 아기를 낳으면 출산축하금이 있다.

출산축하금으로 '지자체지원금', '시도지원금', '국가지원금(양육수당+아동수당)' 등이 나오는데 재량껏 주는 '지자체지원금'은 편차가 크다.


첫째 아이 기준,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하는 나는 지자체지원금 100만 원을 받는다.

서울시 25개 구 중 36%에 달하는 9개 구(강북구, 구로구, 금천구, 노원구, 동대문구, 서초구, 성동구, 송파구, 양천구)는 지자체지원금이 없다.

반면 강원도 내 삼척시 236만 원, 양양군 220만 원, 홍천군 200만 원을 지자체지원금으로 준다. 

같은 강원도지만 지자체지원금을 안 주는 곳도 있다. 

모든 지자체를 다 검색해 본 것도 아니고, 지방 재정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을 것이다.


물론 안 주는 것보다 100번 나은 일이지만,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은 누구에게나 똑같은데 어디에 거주하냐에 따라 차등하는 것이 

지원금 더 줄 테니 우리 동네에서 아기를 낳으라는 유인책 정도로 느껴졌다.

그 동네에서 아이를 낳는 근본적인 대책은 절대 될 수 없다.

( '우리동네 출산축하금' 확인 : https://news.joins.com/Digitalspecial/312 )



이렇게 나라가 아이를 낳으라고 떠들어대는데

출산하면 뭐가 좋을까? 출산해서 내가 얻는 이익이 뭐야?

나한테도 좋은 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를 갖게 된 후 생기는 불편함만 몇 개 짚어보자.

출산 후 몸은 망가질 거고, 나는 적어도 2년 동안 풀타임 사회생활이 어렵다. 즉, 향후 몇 년간 경제권을 놓치게 된다. 출산휴가 후 바로 직장에 복귀했던 회사 선배들조차도 우스갯소리로 "내 월급은 출퇴근 아주머니가 다 가져간다."고 했다. 

양육 비용에 대한 부담, 신랑과 매년 일주일 이상 다녀왔던 해외여행 포기, 여가생활의 제한 등

신혼생활 때 누리던 여유는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아기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신뢰가 없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에, 미국 중국 북한 일본에 치이고 있고, 한국의 내수경쟁력은 무엇이며, 정치도 개떡이고, 심지어 사계절 내내 황사용 마스크를 준비해야 하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뚜렷해지는 빈익빈부익부에 따른 경제소득 차이와 교육 수준 등.

무엇보다 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생태계가 조성돼 있지 않다.

'너도 이런 헬조선에서 죽을 듯 경쟁하며 살아봐라.'라고 자식을 낳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아이를 갖고 나서 얻는 이점은?

삶의 행복? 충만함?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해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행복의 총량이 무게를 달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식이 추가됐을 때 얼마나 늘어날까? 누가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으련만.



작년 3월부터 우리 부부는 피임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제안이었다.

특별히 가임기 날짜를 맞춰서 부부관계를 하지는 않았다.

아기를 갖겠다는 확고한 의지는 없었지만, 자연스레 생기면 '하늘이 주신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은 계속해서 복잡해지니 그냥 운명에 맡기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자식을 가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성적으로 머리에서는 NO! 라고 외치고 있지만, 입 밖으로 확실하게 NO! 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의 무한반복 걱정을 신랑에게 구구절절 늘어놓을 때마다 신랑은 일관된 답을 해줬다.


"여보, 난 여보랑 둘이 사는 지금이 정말 행복해. 그런데 여보가 아기를 갖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돼.

회사 선배들이 힘든 점도 많지만 그걸 뛰어넘는 행복이 있다고 하더라.

난 여보가 원하는 대로 할 거야. 여보가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해."


으잉? 처음에는 당황했다.

일생일대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게 전적으로 짐 지운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신랑은 자식을 갖고 싶다는 것인지 아닌지 의아했다.

일 년 반 동안 신랑의 메세지는 한결같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생겨도 두렵지 않겠구나. 신랑을 믿으니, 내가 간절히 원하게 될 때. 그때 아기를 가져도 되겠다."



그리고 올해 여름, 아주아주아주 이상한(?) 계기로 아이가 갖고 싶어졌다.

어이없게도 나를 자극했던 건 '욕심', '셈' 같은 감정이었다. (이럴 수가...! 정녕 감정의 동물이다! @.@)

7월 중순, 주일 예배 시간이었다. 나와 동갑인 친구가 출산하고 돌도 안 된 아기와 함께 교회에 왔다.

목사님(시아버지)은 강단으로 부부와 아이를 부르셨고,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아버지의 손이 아기 머리 위에 사뿐히 놓였을 때! 

마음이 세차게 울렁거렸다.

'아, 아기가 갖고 싶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무슨 주술이라도 외우듯 되뇌였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왜 그랬을까. (호르몬아. 진정해라.)

마냥 부러웠고,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내 아기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강한 바람이 일었다.



인생 처음으로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해 '숙제'하던 7월 말,

신기하게도 바로 임신이 됐다!!!

배란테스트기를 쓰며 3개월 정도 시도해 보고, 임신이 안 되면 산부인과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한 번에 임신이 돼버린 것이다.

임신하기 전에 치과 정기검진도 받고, 머리도 하고, 입덧 때문에 먹지 못할 수도 있는 음식을 다 찾아 먹으려 했건만.

예상보다 빨리 임신이 됐고, 역시 인간은 계획대로 살지 못한다.

아기를 갖기 위해 난임 치료를 하는 사람들, 여러 차례 시험관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래, 이것도 복이다.'라고 생각했다.



임신했다고 지금까지의 모든 걱정이 허무하게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나는 계속 예의주시하며,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고

육아와 내 삶을 구분해 저울질하며 균형을 맞추려 할 것이다.

걱정이 많은 나에게 친구는 "우리가 어떻게 자랐는지 알고,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해주는 어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최대한 많은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조언을 해줬다.

(참고로 딩크족인 친구인데 이상하게 출산, 육아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본인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을 함께 고민해주어 고맙소.)



완벽이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식도 없다.

모든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는 것보다 세상의 다양함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키워주고 싶고(나도 참 어려운 것),

그저 씩씩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내가 부모로부터, 평생 내편인 동반자로부터 받은 사랑 덕분에 헤쳐나갈 것 많은 복잡한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느꼈던 소중한 감정을 전해주고 싶다.

부모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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