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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Jul 27. 2020

전쟁 상흔 아물기도 전 환경오염으로 신음하다

<56> 독일의 쾰른 대성당

1248년 착공 완공까지 632년 걸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고딕양식 성당

2차 세계대전 폭격 공습으로 파손

소이탄 화재… 하얀 외벽 검게 그을려

현재 산성비·매연에 석재 부식·변색


라인강변에 위치한 쾰른 대성당 전경. 쾰른 대성당은 높이 157.38m로 세계에서 네번째로 높은 고딕양식 성당이다. 사진=픽사베이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州) 최대 도시인 쾰른은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고도이다. 이곳의 상징인 쾰른 대성당은 높이 157.38m로 독일의 울름 대성당(161.5m), 영국의 링컨 대성당(159.7m), 코트디부아르의 평화의 성모 바실리카 성당(158m)에 이어 세계에서는 네 번째로 높은 고딕 양식 성당이다. 


길이는 144.5m, 폭은 86.25m이다. 대성당은 1248년 착공했지만 비용 문제로 공사가 중단돼 632년만인 1880년 완공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2년 쾰른은 영군 공군의 밀레니엄 작전으로 폭격기 1080여 대의 공습을 받았다. 이때 대성당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대규모 폭격은 면했으나, 14발이 떨어져 피해를 입었다. 전후 복구를 거쳤지만 여전히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쾰른 대성당 전경. 사진=픽사베이


1248년 고딕 양식으로 착공한 쾰른 대성당 


독일어 ‘쾰른’이란 지명은 식민지를 의미하는 라틴어 콜로니아(Colonia)에서 유래됐다. 로마 군이 기원전 38년경 이곳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4세기 무렵 쾰른의 초대주교 마테르누스는 쾰른에 최초의 성당을 세웠다. 이후 5세기 말에 프랑크 왕국이 쾰른을 지배하면서 차츰 종교적인 도시가 됐다. 


힐데볼트 대주교는 처음 지어진 성당을 허물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새 성당을 지었는데, 그가 사망하고 나서 873년 12월 27일에 축성됐다. 1164년 쾰른 대주교 라이날트 폰 다셀(1114~1167)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1122~1190)가 롬바르디아를 정복할 때 전리품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져온 동방 박사 3인의 유골함을 받아 성당에 전시했다. 유물을 경배하기 위해 많은 순례자가 모여들자, 새로운 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전 성당은 보수가 되지 않고 노후화되다가 1248년 4월 화재로 전소됐다. 그해 8월 15일 대주교 콘라트 폰 호흐슈타덴(1205~1261)이 프랑스의 아미맹 대성당을 참고해 고딕 양식으로 지어질 쾰른 대성당의 주춧돌을 놓았다. 하지만 15세기에 이르러 종탑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인력 고용과 재정난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날이 많아졌다. 결국 1560년 성당이 반밖에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는 전면 중단됐다. 


쾰른대성당의 내부 전경. 사진=픽사베이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군에 점령, 나폴레옹 실각 후 공사 재개


3세기가량 방치된 대성당 건설이 다시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1815년 나폴레옹의 실각과도 관련이 깊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1794년부터 라인강 서쪽 지방을 프랑스에 넘겨줬다. 1794년 프랑스는 쾰른을 장악하면서 대주교와 교구를 아헨으로 이전했고 대성당은 곡식과 사료의 저장고로 쓰이며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1796년 11월 프랑스군은 대성당에서 미사를 올리기 위해 교구 교회로 사용했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난 뒤에 오스트리아의 빈 회의 결정에 따라 쾰른은 다시 프로이센 왕국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대성당을 완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재정 문제로 건축이 또다시 지연됐는데 시민 성금으로 건축비용의 3분의 2를 모으고 프로이센 정부가 나머지를 부담했다. 1863년부터 서쪽 전면부 공사가 재개돼 1880년 드디어 대성당이 완공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의 폭격을 받은 쾰른 대성당의 모습. 대성당은 문화유산으로서 폭격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14발의 폭탄을 맞아 여러 곳이 손상됐다. 사진=워히스토리 온라인


1942년 5월 31일 영국 공군의 쾰른 대공습에서 살아남아 


하지만 1세기도 채 안돼 전쟁의 그림자가 쾰른에 드리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공군은 1940년 9월부터 1941년 5월까지 영국의 주요 도시 16곳을 폭격한다. 이에 영국은 본토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의 주요 도시를 공습하는 계획을 수립한다. 독일 서부의 대도시인 쾰른은 영국에서 거리가 가깝고 독일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데다 군수 산업시설을 갖췄기에 좋은 공격 목표가 됐다. 


 1942년 5월 31일 영국의 폭격기 사령부 아서 해리스 장군 휘하의 폭격기 1080여 대가 쾰른에 폭격을 감행한 일명 ‘밀레니엄 작전(Operation Millennium)’을 실행했다. 불과 20분 만에 도시는 괴멸됐고, 6만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대성당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명목으로 폭격대상에서는 제외됐지만 14번의 타격을 입어 신랑(身廊·교회당 건축에서 좌우의 측랑 사이에 끼인 중심부) 등의 아치형 천장과 내부, 외부 석상들이 파손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의 공습으로 처참하게 폐허가 된 쾰른. 사진=rarehistoricalphotos.com


특히 첨탑 기반에 큰 구조적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소이탄으로 일어난 화재로 발생한 그을음이 성당의 외벽인 하얀색의 조면암을 검게 변하게 했는데 이 역시 석재 특성상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위험을 넘기자 환경오염이 닥쳤다. 오늘날 대성당은 산성비로 인한 석재의 부식과 매연으로 변색 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2007년 8월 25일 독일의 현대미술 거장인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2차 대전 때 파괴된 기존 스테인드글라스를 대신해 1만1263개의 색상을 입힌 균일한 유리 조각들로 구성된 리히터 창을 봉헌했다. 2018년에는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아 대성당 전체에 화려한 조명을 밝히기도 했다. 쾰른 대성당이 온전히 복원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오랫동안 보존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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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국방일보 2020년 7월 27일 월요일 기획 19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200724/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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