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아트 Sep 24. 2020

거친 역사 품은 古城의 여름엔 음악이 흐른다

<63> 핀란드의 올라빈린나 성

스웨덴의 지배를 받던 핀란드
러시아 방어 위해 1475년 건설
성 입지 놓고 몇 세기 동안 전쟁
예술·관광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
매년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 발길

                                                                        

올라빈린나 성 전경. 사진=www.reddit.com.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약 335㎞ 떨어진 남사보 주(州)의 사본린나 시(市)에 있는 올라빈린나 성은 15세기에 세워진 중세의 고성(古城)이다. 스웨덴과 러시아가 오랫동안 핀란드의 지배권을 두고 숱한 전쟁을 벌인 역사가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핀란드가 스웨덴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스웨덴의 섭정(국왕에게 사정이 생겼을 때 국왕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는 그 사람) 에리크 악셀손 토트가 러시아로부터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1475년부터 세웠다. 러시아가 핀란드를 침공하면서 1714년에서 1721년까지, 그리고 1743년에서 1809년까지 성을 점령했다. 1917년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성의 군사적인 중요성도 사라졌다. 이곳은 오늘날 핀란드의 주요한 관광지로서 세계적인 오페라 음악축제인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이 매년 여름에 한 달 동안 열린다. 

 

올라빈린나 성 전경.사진=www.tripadvisor.co.kr


‘올라프의 요새’라는 뜻

핀란드는 1155년부터 1809년까지 7세기 동안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스웨덴은 핀란드 동부에 국경이 맞닿아 있는 러시아로부터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와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1475년 스웨덴의 통치자인 에리크 악셀손 토트(1419~1481)는 사본린나를 보호하고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핀란드 최대 호수인 사이마 호수의 우뚝 솟은 화강암 바위 위에 성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성의 명칭인 올라빈린나(Olavinlinna)는 ‘올라프의 요새(Olaf’s Castle)’라는 뜻으로, 노르웨이의 왕이자 가톨릭 성인이었던 하랄손 올라프(Haraldsson Olaf, 995~1030)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본격적인 건축을 하기 전에 자재를 운반하고 건설인력을 보호하기 위해 목재 성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 장소가 러시아 영토에 있다고 생각한 러시아군은 계속 건설 작업을 방해했다. 나무로 지어진 첫 번째 성은 2년 후 철거되고 새로운 석조 성으로 건설돼 15세기 말에 완성됐다.


네덜란드의 판화 제작자인 피터 쉥크 더 영거가 1721년 그린 뉘스타드 조약 장면.사진=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대북방전쟁 때 러시아에 점령

올라빈린나 성은 최소 200명의 수비 병력을 갖춰 비보르크 성과 함께 핀란드 동부에서 스웨덴 통치의 가장 강력한 전초 기지가 됐다. 스웨덴과 러시아는 성의 입지를 놓고 몇 세기 동안 전쟁을 일으켰다. 이곳은 15세기의 러시아-스웨덴 전쟁(1495~1497)과 16세기의 러시아-스웨덴 전쟁(1554~1557) 동안 러시아군의 여러 포위 공격을 견뎌냈다.

하지만 성은 18세기에 스웨덴과 러시아가 벌인 대북방전쟁(1700~1721) 때 러시아의 차지가 된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1672~1725)는 발트해 연안 지방의 지배권을 놓고 덴마크, 폴란드, 프로이센, 하노버와 연합해 스웨덴의 칼 12세(1682~1718)와 전쟁을 벌였다. 성은 점령되지 않았지만 수비대는 1714년 7월 28일 러시아군에 항복했다. 전쟁은 스웨덴의 패배로 끝났다. 1721년 스웨덴과 러시아는 뉘스타드 조약을 체결해 러시아는 에스토니아, 리보니아, 잉그리아, 카렐리야의 일부를 얻어 발트 해안에 진출했고, 스웨덴은 러시아로부터 배상금을 받고 핀란드를 회복하는 데 그쳤다. 이때 성은 스웨덴에 반환됐다.


매년 여름에 올라빈린나 성에서 열리는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 모습. 사진=m-festival.biz.


핀란드 독립으로 군사적 목적 사라져

그 후 20년이 지나 다시 펼쳐진 러시아-스웨덴 전쟁(1741~1743) 때 러시아군은 1742년 8월 6일 성에 접근했다. 성의 수비대는 단 100명으로 구성됐고 이틀 만에 항복했다. 전쟁 역시 러시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743년 8월 18일 스웨덴의 투르쿠에서 조약이 체결돼 올라빈린나 성을 비롯한 사본린나 전체 지역이 러시아에 양도됐다. 이때 성은 러시아식 이름인 올라프스보르크(Olafsborg)로 명명됐다. 러시아는 개축공사를 벌여 성의 방어능력을 개선하고 시설을 확장했다.

나폴레옹 전쟁(1799~1815) 시기인 1807년 나폴레옹은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1세(1777~1825)와 틸지트 조약을 맺어 우호적인 세력권 분할에 합의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스웨덴과 핀란드 전쟁(1808~1809)을 벌여 핀란드를 차지했다. 1847년까지 성에는 러시아 수비대가 주둔했고 성 안에 감옥이 있었지만 1859년 폐쇄됐다. 성은 1860년대에 두 차례의 화재로 대규모의 피해를 입었는데, 복원되지 않고 방치됐다. 1917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을 기회로 그해 12월 핀란드가 독립하면서 성의 군사적인 목적도 사라졌다.

복원작업을 거쳐 1912년 7월에 성 안에서 첫 오페라 공연이 열렸다. 오페라 축제는 제2차 세계대전과 겨울전쟁(1939~1940)으로 휴식기를 갖다가 1967년 다시 개최돼 1970년대부터 매년 열린다. 다양한 오페라 작품이 상연되며 전 세계 오페라 애호가 7000명 이상이 찾는다. 성은 1961년부터 1975년까지 대대적인 공사로 완전하게 복원됐다. 성은 3개의 탑, 회의실, 작은 성당, 회랑, 박물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오랜 세월 전쟁을 치른 올라빈린나 성은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해 감동을 전하고 있다.  


<이상미 문화예술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200921/1/BBSMSTR_000000100082/view.do

매거진의 이전글 스코틀랜드 심장 묻힌 아름다운 폐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