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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Feb 12. 2020

수난(受難) 예술품 ‘쿼드리가’ 등 ‘수난’(水難)

<23> 이탈리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

성인 마르코 유골 안장 위해 세워
4차 십자군 원정 전리품으로 꾸며
4황제 조각상·황금 장막 등 약탈의 산물
지난달 베네치아 수해로 큰 피해

                                                       

산마르코 대성당 전경. 사진=www.tiqets.com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주 베네치아에 있는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은 기독교 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의 저자인 성인 마르코의 유골이 안치돼 있는 성당이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돼 있는 이 건축물은 9세기에 지어졌으나 화재로 소실돼 11세기에 재건됐다. 제4차 십자군 원정(1202~1204) 때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에서 약탈한 건축자재와 보물들로 화려하게 장식됐는데 이때 가져온 가장 유명한 예술품인 4마리의 청동 말 ‘쿼드리가’는 1797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점령하면서 파리로 가져갔다가 1815년 나폴레옹 폐위 후 다시 베네치아로 반환됐다. 성당 내부에 있는 박물관에는 4차 십자군 원정에서 약탈한 수많은 보물들이 전시돼 있다.


대성당의 남서쪽 모퉁이에 있는 ‘사두정의 네 황제들’는 제4차 십자원 원정 때 콘스탄티노플의 필라델피온 궁전에서 약탈했다. 사진=rear-view-mirror.com


로마네스크·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성인 마르코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이었던 성인 베드로의 통역가로 예수의 언행과 행적을 기록한 인물인데 58~62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828년 알렉산드리아에 매장됐던 성인 마르코의 유해를 베네치아 상인 2명이 도굴해 모슬렘들이 혐오하는 돼지고기로 관을 덮어서 베네치아로 옮겼다. 이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Doge·총독)는 성인 마르코를 베네치아의 새로운 수호성인으로 선언하며 유해를 안장하기 위한 새로운 성당을 짓도록 했다. 성인의 이름으로 명명한 산마르코 대성당은 비잔틴 양식으로 832년에 건설됐으나 976년에 폭동으로 인한 화재로 소실됐고 978년에 재건됐다. 1063년부터 1094년까지 기본적인 골격이 만들어졌다.


그 후 17세기까지 복구와 증축공사를 거쳐 로마네스크와 르네상스 양식까지 혼용된 건축물로 완성됐다. 대성당의 전체 길이는 76.5m, 폭은 62.5m이다. 비잔틴 정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5개의 돔이 있으며 가장 높은 돔 높이는 43m에 달한다. 대성당 내외부에는 푸른색과 황금색이 인상적인 모자이크 벽화와 성상들로 장식돼 있다.


쿼드리가. 사진=el-granada.com


비잔틴제국 약탈…전리품을 베네치아로


11세기 후반 대성당의 입구는 장식이나 조각이 없는 평범한 돌로 지어졌는데 13세기 초 제4차 십자군 원정의 전리품으로 입구를 비롯한 내외부가 화려하게 꾸며진다. 십자군 전쟁(1095~1291)은 서유럽 그리스도 교도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8회에 걸쳐 감행한 대규모 원정이다. 


제4차 십자군 원정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이슬람의 본거지인 이집트를 목표로 한 원정을 승인하면서 이뤄졌다. 원정을 위해 베네치아에 집결한 병력은 대다수가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플랑드르의 기사로 예상보다 적었고, 베네치아에 지급할 수송비도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베네치아 공화국은 십자군 지휘부를 설득해 기독교 도시인 달마티아의 자라(헝가리 보호령)를 약탈하고 난 뒤에 1204년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하도록 했다. 


15세기 작가 미상에 의해 그려진 제4차 십자군 원정 때의 콘스탄티노플 약탈. 사진=gallica.bnf.fr


2만여 명의 십자군이 비잔틴제국의 수도를 점령하고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을 사흘간 자행하는 동안 베네치아 군은 전리품을 베네치아로 옮겼다. 이때 유입된 조각상 등의 예술품과 보물은 물론 대리석과 같은 건축자재들로 대성당의 내외부를 장식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모자이크 재료가 대량으로 반입되면서 베네치아 특유의 정교하고 화려한 모자이크 기법이 만들어졌다.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성스러운 지혜라는 뜻)로 불리는 콘스탄티노플의 동방정교회 대성당에 있는 대리석을 떼어 산마르코 대성당의 내부에 깔기도 했으며 산마르코 대성당 제단 뒤에 장식된 제단화인 팔라 도로(Pala d’Oro, 황금 장막) 역시 이때의 약탈품 중 하나다. 대성당의 남서쪽 모퉁이에는 필라델피온 궁전에서 가져온 사두정의 네 황제들(The Tetrachs)이 놓였다.


4마리의 청동 마상 ‘쿼드리가(Quadriga·고대 로마시대에 전차 경주 때 사용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두 바퀴의 전차)’는 본래 고대 로마에 있었던 것으로 3세기 동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가 콘스탄티노플로 가져와 대전차 경기장 히포드로무스(Hippodromus)를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베네치아로 옮겨지면서 1254년부터 대성당 입구의 위쪽 테라스에 놓여 ‘산 마르코의 말’로 둔갑했다.


프랑스의 화가 장 듀플레시스- 베르타우가 그린 베네치아에 입성하는 나폴레옹과 프랑스 군대. 뒤에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다. 사진=www.engramma.it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쿼드리가’ 수난


600년 가까이 산마르코 광장을 내려다보던 쿼드리가는 18세기 프랑스의 나폴레옹에게 또 수난을 당한다. 나폴레옹이 1796년 3월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그해 11월 이탈리아 북부의 베로나 근처에 있는 아르콜 다리 전투에서 오스트리아에 승리하고, 1797년 2월에는 이탈리아 북부의 최대 거점인 만토바를 점령한다. 1797년 4월 17일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 레오벤 평화 조약을 맺고 그해 10월 오스트리아와 캄포포르미오 조약을 체결하기 전인 5월 12일 베네치아 공화국을 포위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나폴레옹에 무조건 항복하며 8세기부터 약 1000년 동안의 역사를 뒤로하고 멸망하고 만다.


대성당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807년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베네치아 대주교가 산 피에트로 디 카스텔로 성당에서 이곳으로 주교좌(主敎座·가톨릭 성당에서 주교가 예식 때 앉는 의자)를 옮기며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 관저인 두칼레 궁에 속한 성당에서 바티칸 소유의 대성당으로 승격됐다.


1797년 나폴레옹은 전리품으로 쿼드리가를 파리로 가져가 1808년 완성된 카루젤 개선문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쿼드리가는 나폴레옹이 1815년 워털루 전쟁 패배 후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1차 세계대전 때 보호를 위해 로마에 있는 베네치아 궁전에 숨겨졌고 2차 세계대전 동안 프라글리아 수도원과 테올로 지역의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에 보관됐다가 전쟁이 끝나고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그 후 대기오염으로 인해 훼손이 우려되자 쿼드리가 진품은 1980년대 초에 대성당 내부 2층의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입구의 동상이 서 있던 자리에는 복제품이 대신 세워졌다.


‘물의 도시’로 불리는 베네치아의 기원은 5세기경으로 바다 위에 드문드문 땅이 솟아 있는 습지대에 도시를 조성해 만들어졌다. 이곳은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교량으로 이어져 있다. 베네치아 전체가 점점 가라앉아서 곳곳이 물에 잠기는 횟수가 잦아지자 베네치아 시는 2006년 바닥을 높이는 공사를 했다. 하지만 산마르코 대성당은 지난해 10월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데 이어 올해 11월 12일 집중 호우로 베네치아의 조수 수위가 187㎝까지 치솟아 대리석 기둥 하단 부분이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색되는 피해를 입었다. 대성당이 건립된 이후 1200여 년 동안 이번까지 총 6번의 홍수 피해를 겪었다고 한다. 매년 5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이자 제4차 십자군 원정의 비극이 담긴 산마르코 대성당이 온전히 복구되길 바란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칼럼은 국방일보 2019년 12월 2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91202/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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