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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Feb 14. 2020

佛 에투알 개선문, 드골 입성에 자존심 회복

<25> 프랑스의 에투알 개선문

건설 명령한 나폴레옹 사후에 완공
샤를 드골 장군 입성에 자존심 회복
개선문 아래 ‘무명용사의 무덤’ 설치
노란조끼 시위 때 훼손 복구되기도


에투알 개선문 전경사진사진=픽사베이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광장에 웅장하게 서 있는 에투알 개선문은 로마시대 세워진 티투스 개선문을 본떠 만든 근대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1806년 나폴레옹 1세가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비롯해 프랑스의 모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을 지시했지만 1814년 실각하면서 공사가 중단됐고 이후 왕정복고, 7월 혁명 등 격동의 시대를 지나면서 1836년에서야 완성됐다.


이 개선문이 완성된 후 전 세계에 전승 기념비 열풍을 일으켰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선문으로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지만 독일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1871)과 제2차 세계대전 때 파리를 점령하고 이곳을 행진해 프랑스에 치욕을 안겼다.


에투알 개선문은 높이 50m, 길이 44.8m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선문이었으나 1982년 북한이 이 개선문을 모방한 높이 60m, 길이 50m의 평양 개선문을 세우면서 두 번째로 큰 개선문이 됐다. 개선문 아래에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으며 프랑스의 주요 국가 행사가 이곳을 중심으로 열린다.


1944년 8월 26일 자유 프랑스군이 에투알 개선문 앞을 행진하고 있다. 사진=미국 의회 도서관.


나폴레옹, 퇴위 25년 만에 유해로 통과

1805년 12월 나폴레옹 1세는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동맹군을 상대로 치른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병사들에게 “제군들은 승리의 개선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제는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야심을 품고 이탈리아 원정(1796~1797) 때 인상 깊게 봤던 티투스 개선문을 참고해 에투알 개선문에 대한 건설 계획을 세웠다. 1806년 2월 18일 프랑스 제국 법령은 개선문 건설을 승인했다. 1806년 8월 15일 나폴레옹의 생일에 첫 돌이 놓이며 공사가 시작됐다. 같은 해 지어진 카루젤 개선문은 2년 만인 1808년 완공됐으나, 규모가 2배 이상 컸던 에투알 개선문은 그 기초를 다지는 데만 2년이 걸렸다. 하지만 1814년 4월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 실패로 이탈리아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나며 공사는 중단됐다.

1830년에 7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루이 필리프(1773~1850)가 왕위에 올라 쇠퇴한 프랑스의 군사적 위용을 되살리기 위해 개선문 완공을 지시했다. 프랑스의 마지막 왕이기도 한 필리프는 베르사유 궁전과 루브르 궁전을 박물관으로 변경해 일반에 공개했으며 세인트 헬레나 섬에 묻혀 있던 나폴레옹 1세의 유해를 프랑스로 이장하도록 했다. 


에투알 개선문은 1836년 7월 29일 완공됐다. 죽어서 조국에 돌아온 나폴레옹 1세의 유해는 그의 퇴위 25년 이후인 1840년 12월 15일 앵밸리드에 최종 안장되기 전 이 개선문을 통과해 지나갔다.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도 1885년 5월 22일 팡테온에 묻히기 전에 개선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제까지 이 둘의 운구차만이 에투알 개선문을 지나갔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에투알 개선문을 행진하는 프로이센 군대를 그린 그림. 사진=브라운대학교 도서관 소장


에투알은 ‘별’ 의미…높이 50m, 길이 44.8m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Etoile)은 ‘승리의 개선문’이라는 뜻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샤를 드골 광장 둘레로 뻗은 12개의 도로가 별 모양이라고 해서, 프랑스어로 별을 뜻하는 에투알(Etoile)을 붙였다. 규모는 높이 50m, 길이 44.8m, 폭은 22.2m으로 멀리서 보는 것보다 가까이에서 볼 때 웅장함이 느껴지도록 설계됐다. 내부에는 개선문의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이 있다. 


개선문의 4개 기둥에는 각각 커다란 부조로 장 피에르 코르트가 제작한 ‘1810년의 승리’, 앙투안 에텍스가 제작한 ‘저항’과 ‘평화’, 프랑수아 뤼드가 제작한 ‘라 마르세예즈’ 등이 있다. 상면에는 6개의 작은 부조가 있다. 외벽에는 프랑스 공화정 시대와 나폴레옹 전쟁 때 벌어졌던 128건의 전투의 이름과 이 전투에 참여한 558명의 프랑스 장군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15㎝ 길이로 밑줄 그어진 이름은 전쟁터에서 전사한 장군을 의미한다. 내벽에는 전투 승리를 담은 서른 개의 방패가 새겨져 있다. 총 284개의 계단을 통해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다.


1940년 7월 에투알 개선문 앞에서 열린 독일군의 행진 사진. 사진=www.yadvashem.org

 

1871년·1940년 독일군의 행진

에투알 개선문은 완공 후 프랑스인들의 국민적 자부심이 된다. 하지만 독일군은 1871년과 1940년 파리를 침공해 이곳을 행진하면서 큰 치욕을 안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7월 19일 독일의 통일을 원치 않았기에 프로이센(독일 동북부에 있는 나라로 독일 제국의 전신)에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마르스라투르 전투와 그라블로트 전투에서 참패한 후 그해 9월 1일 스당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나폴레옹 3세까지 포로로 붙잡혔다. 프로이센군은 1806년 나폴레옹 1세가 군대를 이끌고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베를린 궁전까지 향했던 것처럼, 1871년 에투알 개선문을 지나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1944년 8월 26일 샤를 드골(가운데)이 자유 프랑스군의 장군들과 에투알 개선문 앞을 행진하고 있다.  사진=영국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소장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는 전쟁 개시 1개월 만에 국가의 심장부인 파리를 독일군에 점령당했다. 1940년 6월 14일 히틀러의 독일군은 파리를 무혈입성하며 에투알 개선문을 지나며 행진했다. 그해 6월 22일 프랑스의 페탱 원수가 독일의 히틀러에게 공식적으로 항복했다. 파리 곳곳에 나치의 깃발이 걸렸으며 에투알 개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선문 꼭대기에 나치의 깃발이 세워졌다. 4년 뒤인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8월 25일 파리는 드골 장군의 자유 프랑스군에 의해 해방됐다. 다음 날 드골과 자유 프랑스군은 개선문을 행진하며 프랑스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개선문 아래에 있는 꺼치지 않는 불꽃 재단. 사진=픽사베이

무명용사의 무덤과 불꽃 재단

프랑스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무명용사의 무덤에서 영감을 받아 1921년 1월 28일 개선문 아래에 무명용사의 무덤을 안장했다. 이 때문에 군사 행진 때 개선문을 통과하지 않고 돌아서 지나가는데 1940년 파리에 입성했던 히틀러의 독일군과 1944년 파리를 해방시켰던 드골 장군의 자유 프랑스군도 모두 엄수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무덤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용사들을 추모하는 불꽃 재단도 설치됐는데 불꽃은 1923년 11월 11일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에 의해 점화된 후 현재 제1·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 있다.

에투알 개선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인 5월 8일, 프랑스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 제1차 세계대전 휴전 기념일인 11월 11일 등의 국가 행사 때 군사 행진이 열린다. 지난해 11월 11일에는 제1차 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전 세계 70여 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됐다. 또 지난해 말에는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발표에 반대해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로 개선문 일부가 훼손됐다가 복구되기도 했다.

올해는 7월 14일 프랑스혁명 230주년을 맞아 유럽연합 주요국의 정상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다. 에투알 개선문은 프랑스의 자존심으로서 오늘도 파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칼럼은 국방일보 2019년 12월 18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91216/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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