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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Feb 25. 2020

교회·사원·화약 창고로 쓰였던 ‘세계문화유산 1호’

<32>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인간 중심 사상 기본이 되는 건축물
수많은 전쟁 거치면서 수난 겪어
아테나 상 소실… 현재 복제품 전시
대리석 조각 40% 해체돼 영국행
그리스 정부, 반환 요청 진척 없어



파르테논 신전의 전경. 사진=픽사베이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중심부 아크로폴리스 언덕에는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유적인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에서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고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Athena)를 위해 기원전 5세기에 건축됐다. 파르테논은 ‘처녀의 집’이라는 뜻으로 여성 신관들이 머물던 것에서 유래했다.

신전은 서양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지만, 2500년 세월 동안 전쟁으로 여러 번 손상을 입었다. 고대 그리스가 멸망한 후 기독교가 보급되면서 교회로 쓰였고, 15세기 이후에는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 아래 모스크(이슬람교의 예배당)로 변경됐으며 화약 창고가 됐다. 1687년 베네치아 군의 포격으로 폐허가 됐으며 1822년 그리스 독립 전쟁 때 오스만 튀르크의 포격으로 또 파괴됐다. 유네스코는 파르테논을 인간 중심의 사상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여겨 세계문화유산 1호로 지정했으며 해당 기관의 상징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1호로 지정한 문화재이자 상징 로고로 사용하는 파르테논. 사진=유네스코


마라톤 전투 후 건설했으나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침략으로 무너지고 재건설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라는 도시국가들로 이뤄졌고, 폴리스마다 모시는 신이 달랐는데 아테네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모셨다.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군이 제2차 페르시아 전쟁 때 마라톤 전투의 승리와 수호신 아테나를 기념하기 위해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기원전 490년부터 건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재위 기원전 486∼465)가 마라톤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2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해 당시 건설 중이던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해 아크로폴리스 곳곳을 파괴했다.

그 후 그리스군은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과 플라타이아이 전투(기원전 479)에서 승리를 거둬 아테네 탈환에 성공한다. 전쟁이 끝난 후 페르시아로부터 입은 피해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아크로폴리스를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남기기로 했으나, 기원전 5세기 중반 아크로폴리스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연맹인 델로스 동맹의 중심지가 되면서 정치가이자 군사 지도자인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가 아크로폴리스 재건을 추진했다. 이때 파르테논, 프로필라이아, 에레크테이온, 아테나 니케 신전이 세워졌다.


독일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레오 폰 클렌즈(Leon von Klenze)가 1846년 파르테논과 아크로폴리스를 복원한 상태로 그린 그림. 사진=home-plus-art.com


기원전 438년 준공, 기원전 432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까지 건물 장식

파르테논은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총감독과 조각을 맡았으며, 건축가 익티노스가 설계했다. 칼리크라테스가 공사를 책임져 기원전 447년 기공되었고 기원전 438년 준공됐다. 건물 장식은 기원전 432년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됐다.

완성된 신전의 외부는 중후한 도리아식, 내부는 우아한 이오니아식을 채택했다. 바닥과 기둥, 지붕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대리석만으로 건축됐다. 신전의 면적은 가로 69.5m, 세로 30.9m이며, 12m에 달하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여신상인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를 모신 성소 안치실은 길이가 29.8m, 너비가 19.2m이다. 아테나 상은 완전히 소실돼 현재 복제품이 그리스의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파르테논에 있던 아테나 동상의 복제본. 이 동상은 그리스의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사진=home-plus-art.com


신전에는 총 46개의 외부 기둥과 23개의 내부 기둥이 있는데 외부의 도리스식 열주(줄지어 늘어선 기둥)는 지름이 1.9m이며, 높이는 10.4m이다.

파르테논의 전반적인 비율은 9대 4로, 벽면 사방에는 92개의 채색 부조가 둘려 있다. 얼핏 보면 이 신전은 직선과 평면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곡선과 곡면으로 이뤄져 있다. 기둥의 간격이 균일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사람의 착시까지 감안해 곧바르고 균일하게 보이는 과학적인 건축법인 엔타시스 양식(Entasis·배흘림)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1830년대 피에르 페티에(Pierre Peytier)가 그린 파르테논 신전. 오스만 튀르크로 인해 모스크 사원으로 변해있다. 사진=eidolon.pub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으로 교회에서 모스크 사원으로 변경

서양사 최고의 건축물로 칭송받는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은 역사가 흐르면서 수난을 맞게 된다. 고대 그리스가 몰락하고 로마가 들어선 3세기 중반 직후 큰 화재가 발생해 지붕과 성소 내부가 많이 파괴됐다. 4세기경 동로마 제국의 줄리안 황제의 통치 기간 수리가 이뤄졌지만, 5세기 기독교 교도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신전 내부의 나신(나체)을 드러낸 조각상들을 파괴했다.

6세기로 접어들면서 신전은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교회로 탈바꿈한다. 13세기경에는 프랑스인들의 선조인 프랑크족이 침입해 종탑을 세웠고, 15세기 오스만 튀르크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데 이어 아크로폴리스까지 공격했다. 1456년 오스만 튀르크 군은 아테네를 침공해 아크로폴리스를 방어하는 피렌체 군대를 포위하고 1458년 6월 항복을 받아냈다. 이때 오스만 튀르크는 파르테논을 모스크 사원으로 변경하고 첨탑을 건설했다.


파르테논 신전의 전경. 사진=픽사베이


화약 창고로 쓰인 신전, 1687년 베네치아 군의 포격으로 큰 피해

1687년 9월 26일은 파르테논이 전쟁의 포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날이다. 베네치아 도제(최고지도자의 명칭)인 마리노 모로시니(1191~1253)는 제2차 빈 공방전(1683)에서 오스만 튀르크가 대패하자 결성된 신성 동맹에 참여해 베네치아 군을 이끌고 오스만 튀르크의 점령지인 아크로폴리스로 쳐들어간다. 오스만 튀르크는 파르테논을 화약창고로 사용했는데, 베네치아 군의 포격으로 불붙은 화약이 폭발하면서 신전의 지붕이 모두 파괴됐으며 성소의 4개 벽 중에 3개가 무너졌다. 모로시니가 조각상 약탈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남아 있었던 파르테논이 추가로 훼손당한 것이었다.                    


1816년부터 대영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파르테논의 조각상인 ‘엘긴 마블(Elgin Marbles)’. 사진=대영 박물관 블로그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파르테논의 앞날에는 약탈이라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1799년 오스만 제국에 영국 대사로 부임한 영국 엘긴 지방의 영주 토머스 브루스(1766~1841) 백작은 오스만 술탄의 허가를 받아 1801년 파르테논에 남아 있던 대리석 조각의 약 40%를 해체해 영국으로 옮겨갔다. 이 조각들은 1816년부터 대영박물관에서 ‘엘긴 마블(Elgin Marbles)’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다. 나머지 다른 조각들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덴마크의 코펜하겐박물관 등에 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파르테논을 찾아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라는 시를 지어 “이것을 보고 울지 않는 자, 어리석어라/너의 벽은 마멸되고, 허물어진 신전은 앗아져 버렸다”라고 개탄했다. 1821년 그리스는 오스만 튀르크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파르테논은 오스만 튀르크군의 포격으로 또 파괴됐다. 1832년 독립한 그리스는 파르테논을 비롯해 아크로폴리스에 있던 오스만 제국의 건물을 모두 철거했다.

그리스의 유명 배우이자 사회운동가 겸 정치인인 멜리나 메르쿠리가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한 1983년 이후부터 그리스 정부는 영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엘긴 마블을 반환하도록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다. 파르테논은 1981년 아테네에서 지진이 발생해 기둥 상부가 떨어져 나가는 피해를 입었으며 최근 산성비로 인해 대리석이 훼손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1975년 이래로 파르테논을 보호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수리와 복원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전쟁의 참상을 이겨낸 파르테논 신전이 온전히 복원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칼럼은 국방일보 2020년 2월 10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200210/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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