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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Mar 23. 2020

승리의 여신서 평화의 천사로 베를린 지키다

<38> 독일의 베를린 전승기념탑

통일 과정 세 번의 승리 기념 상징물
히틀러에 의해 현재 장소로 옮겨져
2010년 보수 후 반전 기념비 역할

                                                        

베를린 전승기념탑의 전경. 사진=픽사베이.


독일의 수도 베를린 티어가르텐에 있는 베를린 전승기념탑(Berliner Siegessäule·베를리너 지게스조일레, 전승기념탑)은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이 덴마크와의 슐레스비히 전쟁 승리 기념으로 1864년 착공해 1873년 완성한 석조 기념탑이다. 프로이센은 전승기념탑을 건립하는 동안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1871)에 잇달아 승리하면서 통일된 독일 제국으로 우뚝 섰다. 당초 국가의회 의사당 앞 광장에 세워져 있었지만, 1939년 히틀러가 ‘세계수도 게르마니아’(Welthauptstadt Germania)를 계획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베를린 곳곳이 폐허로 변했지만 폭격을 온전히 피하고 살아남은 건축물이다.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만든 카이저 빌헬름 1세·비스마르크

19세기에 이르러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프로이센(Preussen·프로시아라고도 부름)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여러 영방 국가(領邦國家·13세기에 독일 황제권이 약화하자 봉건 제후들이 세운 지방 국가)로 분열돼 있었다. 프로이센은 북부 독일을 비롯한 게르만 족으로 구성된 나라만을 독일 통일에 포함하는 소(小) 독일주의를 내세운 반면 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영토에 살고 있는 슬라브족, 마자르족, 이탈리아까지 독일에 포함하는 대(大) 독일주의를 주창하고 있었다.

1861년 왕위에 오른 프로이센의 카이저 빌헬름 1세(1797~1888)는 다음 해 쇤하우젠 출신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를 총리로 등용해 독일 통일의 발판을 놓았다. 러시아와 프랑스 대사를 역임해 외교 수완이 뛰어났던 비스마르크는 “현재의 큰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과 피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철혈 재상’으로 의회와 대립한 채 병제 개혁을 단행해 독일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실 ‘철혈 재상’은 비스마르크의 반대파가 과장하고 왜곡한 말로, 통일 후 비스마르크는 평화주의적 정책으로 평화 유지에 힘쓴 인물이다.


1871년 7월 3일 정수리에 꼬챙이가 달린 투구인 피켈하우베를 착용한 비스마르크의 사진. 사진=joyreactor.cc


2차 슐레스비히 전쟁 승리 후 착공

덴마크는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1848~1852)으로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 공국(군주의 작위가 공작·후작인 나라)과 홀슈타인 공국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비스마르크는 이곳부터 되찾기로 한다. 1863년 11월 13일 덴마크 의회는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킨 뒤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지역을 덴마크에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어 덴마크를 상대로 1864년 2차 슐레스비히 전쟁을 벌였다. 그해 8월 1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브랑겔 장군의 지휘 아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은 최신 화력을 앞세워 덴마크에 승리를 거뒀는데, 이를 기념해 요한 하인리히 슈트랙크의 설계로 전승기념탑 건축이 시작됐다.


베를린 전승기념탑의 전경. 사진=www.smarttravelers.de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전 지역의 통제권을 확보해 공동 관리하게 됐다. 오스트리아는 두 공국을 독립 영방(領邦)으로 독립시켜 일원으로 만들려고 한 반면 프로이센은 이 지역을 병합하려고 계획했다. 양국의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비스마르크는 전쟁 전 프로이센에 유리한 국제외교 공작을 전개했다. 프랑스의 중립을 보장받고 이탈리아와는 공수동맹을 맺었으며,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를 계기로 프로이센군을 오스트리아령 홀슈타인으로 이동시켰다.

1866년 6월 15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시작됐는데, 프로이센 측에는 북독일의 17개 영방이 가세하고 오스트리아 측에는 바이에른과 작센, 뷔르템베르크 등이 가담했다. 7주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쟁은 프로이센 참모총장 몰트케의 탁월한 작전으로 7월 3일 엘베 강 상류에서 벌어진 쾨니히그레츠 전투(현재 체코 북부의 흐라데츠크랄로베)에서 오스트리아와 작센 연합군을 괴멸시켰다. 그 후 8월 23일 프라하조약이 체결되고 오스트리아가 독일 영방을 탈퇴함으로써 독일 영방은 해체됐다. 프로이센은 북독일 영방을 성립하고 독일 통일의 기초를 확립한 데 이어 1867년 북독일의 하노버와 그 근방 지역을 병합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승리 후 독일 제국 성립

프로이센에 남은 눈엣가시는 프랑스였다.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다시 공격하려 하자, 독일이 더이상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은 나폴레옹 3세(1808~1873)가 오스트리아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1871)은 프랑스가 먼저 선전포고하면서 1870년 7월 19일 시작됐는데, 외교 공작과 군비에서 뒤떨어진 프랑스의 패배로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종전을 선포하고 독일 제국 초대 황제 빌헬름 1세의 대관식을 열었다. 프랑스가 패하자 유력한 지원군을 잃은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도 프로이센에 굴복함으로써 독일 제국이 성립했다.


1939년 히틀러에 의해 현재의 티어가르텐으로 이전되기 전 국가의회 의사당 앞 광장에 있던 전승기념탑. 사진=www.welt.de


1873년 완공…1939년 나치 정권 도시계획으로 이전

1864년부터 건축된 전승기념탑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 치렀던 세 번의 전쟁을 기념하는 상징물로 1873년 9월 2일 완공됐다. 그 후 20세기 들어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선 후, 히틀러는 베를린을 ‘세계수도 게르마니아’(베를린 재건축 계획에 붙여졌던 이름)로 바꾸려고 계획했다. 1935년 수립돼 1943년까지 진행된 이 도시계획의 핵심은 베를린 중심을 십자 모양으로 가로지르는 광대한 교통축을 건설하는 데 있었다.

이에 따라 국가의회 의사당 앞 광장에 있던 전승기념탑은 1939년 티어가르텐으로 이전됐다. 당시 총 높이 60m에 달하는 전승기념탑은 해체돼 이전하는 과정에서 기둥을 7m 높여 바닥에서 꼭대기의 조각상까지 67m에 달하게 됐다. ‘황금의 엘제(Goldelse)’라고 불리는 승리의 여신을 표현한 조각상은 프리드리히 드리케가 로마의 여신 빅토리아를 표현한 것으로 높이는 8.32m, 무게는 약 35t에 달한다. 네 면의 기단에는 덴마크·오스트리아·프랑스 전쟁 승리와 1938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함락을 기념하는 조각이 장식돼 있다. 탑 내부에는 285개의 나선형 계단이 있으며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베를린 전투 당시 소련군과 함께 싸운 폴란드 군이 1945년 5월 2일 전승기념탑 상단에 폴란드 국기를 세운 모습. 사진=www.outono.net


전승기념탑을 건설하는 동안 세 번의 전쟁을 모두 승리로 장식한 독일은 그 후 제1·2차 세계대전에서는 모두 패배했으며, 2차 대전 말기인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했을 때 베를린은 미국과 영국, 소련 등 연합군의 폭격과 시가전 여파로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된 상태였다. 하지만 전승기념탑은 숲이었던 티어가르텐에 있어서 시가전 당시 작은 총격과 포격에 의한 탄흔이 있을 뿐 폭격을 받지 않아 온전히 보존됐다. 베를린 전투 당시 소련군과 함께 싸운 폴란드군은 1945년 5월 2일 전승기념탑 상단에 폴란드 국기를 세우기도 했다.

2010년부터 1년간 약 4만 유로를 들여 보수한 이 전승기념탑은,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오늘날 평화와 화해를 기원하는 반전 기념비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칼럼은 국방일보 2020년 3월 23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200323/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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