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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May 11. 2020

45년간 방치된 교회 복원…시민이 짓고 지키다

<45> 독일의 드레스덴 성모교회

2차 대전으로 폐허된 교회 방치
1990년 獨 통일 돼서야 복원 시작
시민이 모은 3800개 벽돌도 쓰여
전쟁 반대·재건의 상징으로 부활 

                                                        

드레스덴 성모교회 전경. 사진=픽사베이.


독일 동부 작센의 주도(主都)인 드레스덴은 엘베 강을 끼고 있는 데다 아름답고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자리 잡아 ‘엘베 강의 피렌체’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2월 영국과 미국 등 연합국의 융단 폭격으로 도시의 90% 이상이 잿더미가 됐다. 18세기 지어진 드레스덴 성모교회 역시 앙상한 벽체 조각만 남은 채 모두 파괴됐다. 동독 정부는 연합군의 참상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성모교회를 복원하지 않고 45년 넘게 폐허로 방치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된 후 복원이 시작돼 독일뿐 아니라 세계 20개국에서 성금을 보탰다. 2004년에 외벽 복원이, 2005년에 내부 복원이 완료됐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가 과거사 반성의 흔적으로 ‘평화의 경고비’ 역할을 한다면, 성모교회는 드레스덴 재건과 전쟁 반대를 상징한다.


‘엘베 강의 피렌체’라고 불리는 드레스덴의 전경.사진=픽사베이


1743년 1만2000톤이 넘는 사암으로 건설

‘드레스덴(Dresden)’은 ‘강변 숲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진 고대 소르브어(독일 동부, 슈프레강 상류 지역에서 쓰인 언어)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작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의 왕이었던 아우구스트 2세(1670∼1733)에 의해 18세기 바로크 문화가 꽃피었던 도시다. 아우구스트 2세 시절 츠빙거 궁전과 드레스덴 일본식 궁전, 타쉔베르크 궁전, 필니츠 성, 드레스덴 대성당 등 호화롭고 웅장한 건축물이 많이 세워졌다.

아우구스트 2세는 왕이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강한 권력욕을 보였다. 하지만 드레스덴 시민들은 더 근사한 개신교 교회를 지어 신앙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이것이 바로 성모교회이다. 성모교회는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톨릭 성당으로 지어졌는데,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며 개신교 교회로 바뀌었다. 드레스덴 시민들의 뜻에 따라 건축가 게오르게 베어가 바로크 양식으로 새 교회의 설계를 맡아 1726년부터 1743년까지 공사가 진행됐다. 1만2000톤이 넘는 사암으로 지어진 성모교회의 폭은 41.96m, 길이는 50.02m이다. 이곳의 독특한 특징은 지지하는 기둥 없이 지어진 석조 돔으로 ‘돌로 만든 종’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드레스덴 폭격 이후인 1965년 동독 시절 폐허로 방치된 드레스덴 성모교회. 사진=landhausnicolai.de


7년 전쟁 견뎠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파괴

드레스덴은 슐레지엔 영유를 둘러싸고 유럽 대국들이 둘로 갈라져 싸운 7년 전쟁(1756~1763) 중 프로이센군에 의해 점령당한다. 특히 1760년 드레스덴은 프리드리히 2세(1712~1786)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의 포위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프로이센군이 발사한 포탄 100여 발이 성모교회의 석조 돔을 가격했지만 무너지지 않으며 견고함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성모교회의 앞날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20세기에 드레스덴은 독일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이자 127개의 공장과 주요 산업체가 있는 통신과 제조업의 중심지였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연합군의 공격 목표가 됐다. 1945년 2월 13일에서 15일까지 영국 공군 소속 폭격기 722대와 미국 육군 항공대 소속 폭격기 527대가 드레스덴으로 출격해 3900톤 이상의 고성능 폭탄과 소이탄을 투하했다. 폭격과 폭탄에서 생성된 열로 인해 도시 전체에 화염 폭풍이 형성됐다. 이로 인해 드레스덴의 90%가 파괴됐으며, 약 2만5000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했다. 성모교회는 이틀간 진행된 연합군의 폭격을 견뎌냈지만, 공습 셋째 날 떨어진 소이탄으로 1000℃가 넘는 불길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2월 15일 오전 10시 폭발하듯 주저앉았다. 건물 전체를 이루는 사암이 열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드레스덴 시민들의 청원으로 성모교회 복원 사업에 들어가 재건 중이던 모습. 사진=www.pul-ingenieure.de

동독 정부 ‘연합군 만행의 상징’으로 이용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독일은 소련군이 진주한 동독과 서방 연합군이 진주한 서독으로 나뉘어 분할 통치되면서 1949년 분단됐다. 드레스덴은 동독의 영토가 됐다. 동독 정부는 폐허가 된 교회를 방치해 연합군의 만행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이용했다. 동독 정부는 교회 터를 밀어버리고 주차장으로 쓰려고 했지만 드레스덴 시민들이 항의해 이를 철회했다. 드레스덴 시민들은 교회 폐허에서 잔해를 골라내 재건의 희망과 의지를 새기듯 번호를 매겨 보관하면서 언젠가 성모교회가 재건되는 날을 준비했다.

교회 복원은 독일 통일 한 해 전인 1989년 12월 19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가 성모교회 앞에서 “역사적 순간이 허용한다면 내 목표는 한결같이 우리 민족의 통일”이라고 한 연설이 계기가 됐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드레스덴 시민들의 청원으로 성모교회 복원 사업에 들어갔고, 드레스덴 시의회는 1992년 2월 20일 재건을 승인했다.

교회 재건은 건축가 에버하르트 부르거가 맡았다. 초기 설계도를 기본으로 교회 모습을 기억하는 시민들이 제공한 자료들을 모아 교회 원형을 되살렸다. 잔해에서 수습한 3800여 개의 검게 그을린 돌을 새 돌과 함께 쌓아 올렸다. 완성된 건물에서 보이는 검은 돌들이 바로 시민들이 폐허에서 건져내 보관해온 돌들이다.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잔해에서 수습한 벽돌이 약 3800개가 재사용됐는데, 바로 외관 곳곳에 있는 검은 벽돌이다. 사진=www.kingssingers.com


드레스덴 공습 참여한 영국 공군 조종사의 아들이 제작한 십자가, 돔 꼭대기에 세워져

재건 비용은 1억8000만 유로(한화로 약 2300억 원)에 달했다. 이 중 1억1500만 유로는 미국과 영국 등 20개국을 비롯해 개인과 기업이 보낸 기부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고, 나머지 6500만 유로는 드레스덴 시, 작센 자유연방 및 연방정부가 분담했다. 또 소년 시절 드레스덴 폭격을 목격한 생물학자 귄터 블로벨은 199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상금을 교회 복원을 위해 기부했다. 드레스덴 공습에 참여했던 영국 공군 조종사의 아들인 앨런 스미스가 독일 공군의 코벤트리 폭격으로 파괴된 코벤트리 대성당의 잔해에서 가져온 중세의 못으로 만든 십자가가 2004년 6월 22일 돔 위 꼭대기에 세워졌다. 십자가를 포함한 교회의 전체 높이는 91.24m이다.

모든 공사를 마치고 2005년 10월 30일 재축성 행사가 개최되며 복원된 성모교회는 전쟁 반대와 함께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부활했다. 이곳은 복원 후 3년간 700만 명이 다녀갔고, 현재도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는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칼럼은 국방일보 2020년 5월 11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200511/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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