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한 업무(청렴의 길)
나는 지역산림조합에서 고객응대를 하였고 지금은 대학의 비전임 교원으로 활동하면서 온라인 기업교육 원고를 집필하고 인강촬영을 하는 강사이자 SME내용전문가를 주메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글을 쓰는 직업을 메인으로 하고 있는 연구자이자 강사이다.
나는 지난 이십년이 넘는 세월을 한우물만 팠고 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나의 원래 꿈은 금융인이 아니었다. 숫자를 쳐다보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수학을 싫어했다. 역사소설이나 에세이집을 즐겨 읽으며 유년시절을 보낸 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수능에서도 언어영역이나 사회탐구영역에서는 만점가까이 받았지만 수리영역에서는 형편없는 성적이 나올만큼 숫자에 어두웠던 내가 금융인의 길을 걷게된 계기가 있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시기에 아버지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방공무원의 길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근무하시던 아버지께서 한차례 인사파동을 겪고는 공무원 생활에 회의를 느껴 이직을 검토하는 등 집안이 뒤숭숭하였다.
집안의 장녀로서 나의 길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 아버지를 돕고 싶은마음에 상경 계열에 진학한 것이 금융인이 된 배경이다.
우리집안은 대대로 공직자 집안이다. 할아버지께서 민선면장을 지내셨고 아버지께서도 고향의 여러 곳에서 면장을 지내시다 농업기술센터소장으로 퇴직하셨으며 큰아버지는 평생을 교직의 길을 걸어셨다.
돈과는 거리를 두고 청렴을 고집하신 할아버지 덕분에 그렇게 어렵진 않았지만 넉넉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엔 청렴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아버지께서 지방공무원으로 첫 발령을 받아 출근하는날 할어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평생의 좌표로 삼아 근무하셨다고 한다.
“웃사람 눈치보지 말고 면민의 눈치를 보고 업무를 수행하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손으로 어루만지지 말고 가슴으로 다독여라. 그것이 공직의 기본이고 인간의 도리이다.”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내가 첫 출근하는날 들려주신 말씀이기도 하다. 아직도 내가 첫출근 하던 날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버지의 길과 나의 길이 다르긴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고 공평무사한 업무를 펼치는 것은 모든 길이 하나라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다. 아버지께서는 지방 세무직 공무원이셨다. 소위 말하는 좋은 자리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 세무직 공무원 외길을 걸어셨다. 아버지께서 말씀은 안하시지만 금전적 유혹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청렴을 고집 하셨고 우리집은 늘 넉넉하지 못했다.
그런 남편의 영향 탓인지 어머니께서도 돈 욕심이 별로 없고 늘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과 비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셨다. 우리에게 좀더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남의 아이를 돌보기도 하고, 집으로 공장제품을 가져와 부업을 하기도 하였지만 한번도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없다.
투덜되며 아버지를 원망하는 나를 보고 너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게되면 잘 사는 남과 비교하거나, 돈 이야기로 남편을 닥달하지 말거라. 사내가 돈에 연연하면 청렴함을 잃게 되고 업무에 소홀하게 된다. 이는 가정의 파탄과 건강한 사회를 망치게 되는 길이라고 늘 강조하셨다.
졸업과 동시에 고향의 산림조합 금융창구 직원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내꿈은 역사학자인데 전혀 분야가 틀린곳에 일하면서 나는 늘 방황하였다.
낯선 금융용어와 회계용어에 적응하지 못했고 적성에 맞지 않은 업무에 눈물을 빼며, 힘든 사회 초년병 시절을 보내면서 돈이 많았더라면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텐데, 나도 유학을 가볼텐데 하면서 여러가지로 불평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더힘든 업무상황에서 더 보태어져 한동안은 늦은 진급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냈다. 진급에 도움을 줄수 없고, 그렇다고 그만두고 공부만 하라고 하지도 않으신 아버지를 나는 철없는 어린아이마냥 원망하였다. 아버지의 지난날을 폄하하기도 하였지만 그때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뇌리에 쟁쟁하다.
“앞으로 많은 날을 살아가야 할 네가 벌써 그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아버지는 슬프다. 노력하지 않고 얼렁뚱땅 진급하고 싶은 생각, 그리고 사회생활이란게 다 힘든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이 인격적으로도 성장해가는데 뭐든 대충대충 쉽게 살려하는 것이 일상화 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결국에는 정석대로 꾸준히 묵묵히 열심히 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그게 세상 살아가는 이치이다.”라며 꾸짖어 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이젠 퇴직을 하시고 독서나 집필활동(아버지는 수필가이며 시인이시다.)도 하시며 소일하고 계신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도 늦게나마 공부를 시작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유년시절 꿈꾸었던 분야의 학자는 아니었지만 아버지 말씀대로 그 당시 내가 주어진 환경에서 역량을 키워나가다 보니 내가 그동안 근무해왔던 상경계열 분야의 학자가 되었다. 아버지 말씀대로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하고 살아왔다보니 이제는 내가 그동안 근무했던 것이 전문분야가 되어 많은 교육자료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나의 발전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고진감래라고 쓴 세월 보내고 나면 달고 단 세상이 오는 것처럼 주변의 달콤한 말과 유혹을 뿌리치고 열심히 한우물만 파고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살아왔던 이십여년의 기간이 허송세월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현재 대학의 비전임교수로, 기업교육 인강강사이자 집필자로 활동하면서, 후배금융인들과 기업의 직원들을 위한 연구와 교육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을 하면서 나의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교육생들을 보면 행복하다.
아버지께서는 요즘 이렇게 말씀하신다. 공직자의 최고 덕목을 정약용의 목민심서라고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두가지 가르침으로 40년 세월을 버텨냈다. 그러나 정년을 맞고보니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의 두가지 가르침 속에는 목민심서가 녹아 있었다는 것이다.
작은 청탁과 향응을 받고도 탈없이 넘어가면 별다른 죄책감 없이 상습적으로 부패에 빠지게 되어 있다. 즉 어떤 죄를 저지르기 전에 마음이 먼저 그 죄를 용서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죄에 대한 감정이 무뎌지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습관은 무서운 것이라고 하신다.
아무리 작은 청탁이나 향응이라도 처음에 단호히 배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각박하게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하나되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는 진정한 청렴의 기본 바탕이다. 내가 아닌 너의 입장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역지사지의 자세야 말로 청렴의 기반위에 피어나는 공직의 꽃이기 때문이고 공직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도 공평무사한 업무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바른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의 연세쯤 되면 희미하게 나마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길을 이해하게 될 것도 같다. 그 날이 올때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름침을 가슴 속에 새기며 난 오늘도 직장인들이 업무를 잘할수 있도록 강의교안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