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몸짓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 장을 픽업하러 쌤스에 온다. 무더운 여름날 그늘 없는 곳에 주차하면 직원이 물건을 가지고 낑낑거리며 나온다. 나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많으면 좀 기다린다.
이번 주부터 대부분 학교의 가을 학기가 시작한다. 어제는 유난히 바빴다. 학교 보낸 부모님들이 자유를 만끽하며 브런치 즐기러 나온 것이겠지.
쌤스에 픽업하러 온 손님이 없다. 텅 비어서 당황했다.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 가을학기 시작을 빈 주차장에서 느낀다.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이처럼 계절이 바뀌는 것이 다소 새삼스러울 때면, 나는 잘 살고 있나 괜스레 생각한다.
젊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건강하게만 사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부와 귀를 따라 줄을 잘 서는 것도 처세가 아니다.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마지막 한 줄을 맘대로 바꿔 부른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는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8년 함께 산 우리 집 작은 강아지는 아침마다 불쌍하게 쳐다본다. 혹시나 엄마가 자고 있는 침대에 올려줄까 싶어 눈치를 본다. 잠결에 걸어 나오면 그 조그마한 녀석이 내 발에 치일까 무서워 날쌔게 피한다. 내가 조금만 신경 써서 조심스럽게 피해 걸으면 되는데 막 걸어 다니니 작은 녀석이 요리조리 피해야 한다. 미안함이 솟구친다. 내게 즐거움과 애틋함을 주는 같이 사는 작은 동물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내 모습에 슬퍼진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그 정도의 눈치를 애완견이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또 누가 아는가. 일방적인 관심을 바라는 작은 생명의 그 눈빛과, 당연하고 습관처럼 움직이던 내 몸뚱이에 적응된 일종의 갑질이 마음에 박혀 미안해진다.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하지 말고, 더 많은 사람 앞에 서려하지 말자. 하나도 나이 들어 바뀐 것 없이 싹수없게 살지 말자.
마음에 새기자.
조금 더 친절해지기. 조금 더 진실해지기.
누구에게도. 누가 뭐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