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토요일 점심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데 통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전날 저녁 이천 농장에 가셨다. 불길한 예감에 동생과 친구를 데리고 농장으로 달려갔다. 허름하게 지어놓은 집 거실 바닥에 거적때기처럼 납죽 뻗어 정신을 잃은 아버지를 발견했다. 119를 불러도 산 속이라 좀처럼 빠르게 도착하지 못했다. 겨우겨우 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을 진행했다. 뇌출혈. 풍이 왔다.
아버지는 온유한 사람이었다. 다혈질인 엄마와 함께 살면서 자기표현과 주장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 속으로 누르고 삭히시는 분이었다. 나는 엄마를 닮아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기 전까지도, 엄마와 참 많이 부딪혔다. 아버지는 항상 중간에서 내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금요일 기도회 전, 이른 저녁 식사 후 아버지와 둘이 공원을 산책했던 기억이 마음에 아로새겨져 있다. 가끔씩은 귀찮기도 했지만, 그때 나는 아버지와 감정의 잔고를 어느 정도 쌓아 놓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목사였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이제 정상적인 목회가 그에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친가에는 기독교인이 없었다. 농군의 아들로 자라며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고, 일머리가 있어서 농기계를 잘 다루셨다. 할아버지는 유복자이셔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모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우리 삼 형제에게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어 했다. 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농대를 가고 싶어 하셨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포기하고, 신학교를 가셨다. 한 번은 이런 말을 하신 기억이 난다. 그의 소원 중 하나는 필리핀 어학연수를 가보는 것이었다. 결국 이루지 못하셨다.
엄마는 추억했다.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아버지의 어린 전도사 시절, 시간과 돈을 쪼개 안양에서 서울로 다니며 영어를 배우는 젊고 노력하는 그를 추억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가난한 목회자 후보생의 모습을 젊은 아버지와 겹쳐 떠올리니 마음이 뭉클했다. 아버지는 왜 목사가 되고 싶었는지 성인이 되면서 궁금해졌다.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고, 소위 카리스마적인 모습이 전혀 없는 분이다. 성실함. 그는 성실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좋았지만, 동시에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은연중에 아버지에게 강요했다. 왜 목사가 되고 싶었냐고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 고모와 함께 다니던 교회에서 장로들이 목사님에게 너무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목사님을 도와주고 싶어서 신학교에 간 것이 20살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 대단한 소명의식으로 결정한 것이 아닌 것에 놀라기도 했고, 인간적인 동기가 심지어 귀엽기도 했다. 사람에게 상처를 잘 받는 그는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몰랐다.
4개의 교회를 개척하며 갈등 상황이 많았다. 어린 나의 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갈등도 여러 번 있다. 그런 갈등과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조언해 주는 멘토가 아버지에게는 없었다. 갈등이 실패가 되었고, 연속된 몇 번의 작은 실패는 깊은 쓴 뿌리가 되었다. 군 입대를 위해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무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울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시간만 나면 농장으로 갔다. 도망치듯 트럭을 타고 농장으로 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이유가 궁금했던 것 같다. 그가 가진 중년의 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기도에 집중하지 못했다. 평생 성실하게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딱 40분을 넘기지 않았다. 위기가 있을 때 엄마는 아버지가 기도원에 갔으면 했다. 울부짖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단판을 한번 지어보라는 반강요였다. 아버지가 엄청 가기 싫어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같이 가면 가겠다고 해서, 중학생인 나는 학원을 땡땡이치고 기도원에 끌려갔다. 간절하고 슬퍼우는 사람의 기도소리가 싫지 않았다. 기도원의 밤.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찬송가에 맞추어 홀린 듯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는 마치 산짐승의 울음 같았다. 나는 그때 무슨 기도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피곤한 아버지를 위해 방석을 깔고, 무릎을 꿇어 소리 내어 기도했던 것 같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니 눈물도 찔끔 나고, 하나님이 이 정도 간절함이면 내 기도를 들어주실 것만 같았다. 실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반쯤 누워 나를 바라보고 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숙소에 가서 자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좀 더 이 분위기에 취하고 싶었다. '목사님이 기도를 더 하셔야죠..'라고 아쉬움 반, 투정 반 섞어가며 숙소에 돌아가는 중에 말했다. 슬픈 아버지의 대답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주형이는, 아빠보다 영성이 있는 것 같고 하나님과 친한 것 같으니 기도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왜 아버지는 포기한 사람처럼,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그 대답에서 아버지의 그늘을 처음 느꼈다.
아버지의 풍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그가 쓰러진 곳에 작은 맥주 캔 두어 개가 찌그러져 있었다. 한 번도 술, 담배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면서 그것은 당연히 나에게는 먼 것들이었다. 보수적인 목사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맥없이 쓰러진 곳에 버려진 맥주캔을 보니 배신감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시간이 지나고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이곳에 숨어 맥주를 안주도 없이 홀짝이고 있었을 아버지 모습을 생각하니 서글펐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는 내게 울타리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그늘을 아들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이 야속했다. 개척교회 목사가 무슨 돈이 있어서 두 아들을 유학까지 보낼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것이다. 대신에 아버지는 연로한 할아버지가 논농사 밭농사를 위해 아들이 필요할 때 항상 불려 갔다. 그렇게 그는 항상 피곤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양복과 작업복을 입은 모습이 모두 생각난다.
아버지는 뇌기능의 40%를 잃었다. 김대용 신경외과 선생님이 생각났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왕진까지 마다하지 않는 좋은 분이셨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걸음에 찾아오셨다. 본인을 소개하고 인턴 선생님에게 MRI사진을 보여달라고 하셨다. 나와 동생이 생물학을 전공한 것을 알고 서는 우리 형제를 불러 설명해 주셨다. 골든타임을 지나 뇌출혈이 시작되고 12시간 이후에 발견되어,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야 한다고 내게 말해주셨다. 수술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고, 수술이 끝나도 이 정도 뇌가 손상되면 재활기간이 길고, 재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걷지 못할 거라고 하셨다.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가 수술대에 올라가고 나니 생각이 또렷해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당장 연락해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렸고,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수술은 잘 끝났고, 아버지는 재활을 성실하게 하셨다. 재활 과정은 성공적이었다. 아버지는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운동 기능은 회복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신다. 감정을 제어하는 뇌기능이 제한되어 잘 삐지고, 잘 운다. 아버지는 평소에 모자와 운동화를 그렇게 갖고 싶었나 보다. 기회만 되면 그렇게 모자와 운동화를 사 오셨다. 거동은 불편하지만, 정상적으로 말하고 성인이 자기 카드로 결제하는데 어떤 가게 주인이 의심하겠는가. 한 번은 200만 원 상당의 화분을 사 오기도 하셨다. 2년이 이상이 지속되는 재활 기간 동안, 교회는 공중분해되었다. 아버지는 상실감을 통제하지 못해, 분노를 쏟아놓고 다니셨다. 엄마는 체력적, 정서적, 감정적으로 모두 고갈되어 만신창이가 되었다. 나는 부모님의 이런 무너지는 모습이 도통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금요일마다 나누었던 대화를 주도했던 아버지는 사라졌다. 결혼 후, 부모님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 그가 남긴 공백은 그렇게 텅 비어 버렸다. 아프다고 울고 있는 두 분의 내적 자아가 만날 때마다 드러나는데 나는 그분들을 살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한다.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은 과제 같았다. 고난의 이유를 이해하고 새로운 소명을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못했다. 나의 성숙하지 못한 신앙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불안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내가 먼저 무너질 것 같았다. 하나님에게 멋지게 드릴 수 있었다고 상상한 나의 30대는 결국 죄인의 읊조림으로 채워졌다. 하나님이 필요한 죄인.
하나님은 나를 부르시고 보내신다. 고난으로 부르셨고 승리로 부르셨다. 고난으로 보내시고, 승리로 보내신다. 역대상의 암송 구절이 일대일 과정을 마무리하며 가장 마음에 남는다. 나의 언어로 바꾸어 본다. 하나님, 당신은 크십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승리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이 다 당신의 계획아래 있었습니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 사건, 이해하지 못한 시간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나의 수고가,
나의 열심이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모든 순간에 인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 손에 나의 삶을 다시 드립니다. 강하신 손으로 저를 붙들어 주세요.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 역대상29: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