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인 단어들을 피한다. 목사의 아들로 자라며 종교인들을 많이 만났다. 학습된 종교인의 모습이 내 안에 보일 때면 절망감이 잦아든다. 하지만 이것도 나의 부분이다. 폭력적인 진지함을 버리고, 따뜻한 진실함을 가지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돈도 벌어본 사람이 잘 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만 내 것이다. 내 유튜브 계정은 18년 되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비디오를 보았을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중에 얼마만큼이 정말 내 것일까. 비디오로 학습이 가능할 경험이 있을까. 내가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면,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일터를 오가는 시간이 매일 적지 않다. 음악을 틀지 않는다. 일종의 디톡스 같은 리츄얼이다.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한다. 의미 없는 종교적인 말을 내뱉는 종교인이 되고 싶지 않다. 대신 정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알고 싶다. 경험한 것을 간결하게 말하고 싶다.
충만함. 쉽게 와닿지 않는 종교적인 단어였다. 평생을 들어왔는데도 말이다. 내가 이해하는 충만함을 표현하려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익숙한 종교적인 단어로 쉽게 환원하고 싶지 않았다. 9월이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100도가 넘는다. 뜨거운 초가을날 나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한다.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6시를 생각하면 나는 충만함을 느낀다. 어릴 적부터 나는 크리스마스 오후 6시를 좋아했다. 그즈음의 차가운 겨울 입김까지 따뜻하다. 크리스마스이브 오후에는 미묘한 흥분감과 기대감 그리고 해방감이 적절히 섞인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었다. 선물교환을 기대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하며 놀기도 했다. 성인이 되었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6시에, 나는 다시 가장 충만함을 느낀다. 아내가 사준 네이비 색과 흰색이 적절히 섞인 스웨터를 입는다. 12월 내내 들었던 많은 캐럴 중에서도 가장 잔잔한 클래식을 듣는다. 고요하다. 거리에는 분주함이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식사를 나눈다. 해결되지 않은 걱정은 잠시 미뤄둔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에서 따뜻함과 충만함을 느낀다.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의 충만한 사랑을 묵상한다. 이른 새벽에 나를 만나주는 그분을 생각할 때, 마음이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6시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는 것만 같다. 벅차고, 바랄 것이 없다. 세르토닌이 나오는 것일 게다. 몇일 전 라스베가스를 다녀왔다. 좋아하는 친구 가정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지드래곤의 콘서트도 보고, 새로운 쇼도 여러 개 보았다. 가성비 좋은 훌륭한 호텔에 머물렀다. 슬롯머신에서 900불도 땄다. 실시간으로 뇌에서 도파민이 터지는 것을 알아챘다. 내가 흥분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이런 흥분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지만, 내가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알았다. 분명해졌다.
돈을 뱉어내는 슬롯머신보다, 돈 버는 일을 주시는 하나님이 좋다. 화려한 라스베가스의 쇼보다, 충만한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6시가 좋다. 하나님은 경험해 봐야 한다. 그의 사랑은 느껴봐야 안다. 그가 주는 충만함을 맛보아봐야 한다. 경험해 보면 진짜가 된다. 당신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