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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원쌤 Jun 06. 2021

고요함과 반짝임이 있는 수업 3

교사교육과정

교사와 교육과정


교육이라는 이미지


교육이라는 말처럼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는 단어도 드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와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과정 속에 교육한다는 개념이 적용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답니다. 길을 걸어가는 세 사람이 있다면 그중 한 명은 나의 스승이라는 말도 있지요.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이처럼 교육한다는 말은 특별한 말도 아니고 특별해질 수도 없는 말 같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사이기에 교육에 대해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생각했어요. 교사로 임용되고 아이들 앞에 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교육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제 주변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죠.


먼저, 교육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라고 저에게 주어진 교과서가 보이네요. 그리고 교과서를 제대로 활용해서 수업하라며 지도서도 주었네요. 그리고 이러한 교과서와 지도서의 원본이 되는 교육과정도 주어져있군요. 그래서 초임교사 때부터 교과서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할지 고민했었죠. 그땐 그것이 교육이라 생각했어요. 교과서 내용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고 자세히 알려주는 것, 지도서나 다른 참고서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문제를 많이 풀어주는 것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것이 과연 교육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아이들과 하고 싶은 교육 중 하나는 하나의 교과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웠으니까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냐면 바로 “생명”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생명의 소중함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진 누구나 다 알고 있지요. 하지만 생명이 가진 무게를 느끼고, 모든 생명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여요. 이런 모습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속에도 들어있어요. 아이들은 곧잘 이렇게 이야기해요.


“선생님, 저기 잡초들이 많아요. 잡초들은 뽑아야 하지 않나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식물들 중에서 잡초는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잡초라 말하는 식물들은 아마 무척 억울하지 싶었어요. 왜냐하면 어떤 식물이건 자신만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고, 생명의 무게는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제 마음과 생각을 아이들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무슨 교과시간에 이런 내용을 다뤄야 아이들이 배울 수 있을까요?


꽃마리와 봄맞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풀꽃들


분과적 교육방법과 통합적 교육방법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는 우리의 교육이 발전하며 만들어졌죠. 아이들과 제한된 시간과 기간 동안 꼭 필요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알려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과가 만들어졌다 생각해요. 그리고 각 교과에서 다루는 내용이 교과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 수준에 어울려야 하기에 아이들의 삶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생각해요. 다른 말로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고려한 교과 수준 즉 성취기준이 만들어졌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교과를 학교에서 다루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생각해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한다는 말속엔 교과 속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공부하는 것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데도 무척 중요하지요. 앞에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이야기처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사유되지 못할 테니까요. 교과를 공부한다는 것은 교과를 경험하게 하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그 경험을 교과의 방식으로 교과가 대상이 되어 할 수도 있고 교과를 통해서 다른 교과와 함께 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전자를 분과적 접근이라 말하고 후자를 통합적 접근이라 말해요. 두 가지 접근법 중 어느 것이 우월하고 좋다는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각 각의 장단점이 존재하는 접근법일 뿐이죠. 여기서도 저의 경험을 다시 떠올려보아요.


초임 시절부터 10년을 분과적 교육방법으로


앞에서 각 교과를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교육행위라 생각하고 지냈던 저의 초기 10년의 교사생활을 생각해봤어요. 그 순간에도 아이들과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고, 아이들과 치열하게 공부하던 기억들도 많아요. 그런데 항상 아쉬웠던 것 같아요. 앞에서 제가 생명에 대해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고 한 것처럼 수업을 통해, 교과를 통해 생명에 대해 나누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다양한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특정한 아이들과 동아리를 구성하고 지냈죠. 나름 성과들도 있었어요. 앞에서 이야기 한 내용처럼 다양한 상도 받았지요. 상 때문에 여러 언론매체에 소개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국은 저와 마음이 맞는 몇 명의 친구들만 생명에 대해 저와 공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만날 수 있는 많은 친구들, 아니 모든 아이들과 그 마음에 대해 나누고 싶었는데 말이죠. 분과적 교육방법은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각 교과에서 다루는 교과별 구조나 탐구 방법 등을 배울 수 있거든요. 각 교과를 다루며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신에게 어울리는 교과가 무엇인지 알 수도 있고요. 물론 호불호가 강해져서 너무 어릴 때부터 특정 교과만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싫어하는 모습도 가질 수 있긴 해요. 그런데 제가 고민한 지점은 각 교과를 분과적으로 하는 것은 아이들의 개인능력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었어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배움의 질이 결정?


다양한 교과를 교과의 목적에 맞게, 교과의 방식으로 다루면 아이 스스로 그것들을 재구성하여 우리가 의도하는 교육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이들 중엔 분명히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한 아이도 있었지만 혼자만의 힘으론 어려움에 빠지는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전 그 이유가 배움이라는 것이 가진 속성이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우리가 수업을 한다는 것은 객관적 인식범위 속에 포함된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수업의 재료가 되고 그러한 재료를 잘 가공해서 아이들과 나누는 것이죠. 하지만 수업을 했다고 해서 아이마다 의미 있는 배움으로 구성되고 받아들여진다곤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즉 가르친다고 해서 배운 것은 아니라는 의미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만약 이런 모습만이 우리의 수업이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배움의 깊이가 다를 수 밖엔 없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이 즉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교사의 수업과 아이가 혼자 학습지를 따라 학습하는 행위는 같은 것일까요?

이런 저만의 고민들이 어쩌면 분과적인 교육방법에서 통합적 교육방법으로 이어지게 한 것 같아요.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가는 배움의 질


우리가 수업을 통해 가르침을 나눈다면 그것이 아이들 개개인에게 배움이 되도록 하는 것, 어쩌면 모든 교사의 목표라 생각해요.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배움으로 도달하는 길은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교사의 영역이 아닐 수 있다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아이에게만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면 교사가 학교에서 하는 교육의 의미는 많이 축소될 수 밖엔 없다 생각한답니다. 전 교사의 교육행위 즉 수업이 소중하거든요. 수업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보이는 측면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한답니다. 수업이라는 행위는 혼자만의 행위도 될 수없고 함께 할 때 성립되는 것이라 생각한답니다. 이런 생각이 앞서 이야기했던 관계의 질과 관련되어 있어요. 그래서 생각했고 생각한 것을 실천하고 있어요.


각 교과를 날것 그대로 아이들에게 교과별로 주는 것이 아니라 각 교과들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각 교과가 하나의 교과인 것처럼 통합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교과가 목적이 아니라 교과를 통해, 교과를 활용해서 우리의 수업을 만드는 것이죠. 하나의 교과에서 다룬 내용이 다른 교과와 연결되고 함께 진행되기도 하는 경험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죠. 이렇게 통합한다고 해서 각 교과에서 다루는 내용을 다루지 않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들 입장에선 색다른 경험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특히 좋았던 것은 교과별로 진행될 때 가지고 있던 교과별 호불호가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선생님, 전 과학 과목은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싫어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공부하니 과학이 재미있어요. 이해도 더 잘 되고요.”
“우리 역사에 대해 공부할 때 이렇게 직접 나만의 역사책을 만들어서 너무 좋아요. 조사하고 나만의 그림 그리고 하는 것들이 저에게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예전엔 역사하면 외워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싫었거든요.”


고용함과 반짝임이 있는 수업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수업 하나하나가 아이들과 교사의 관계를 만들었답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관계는 깊어지고 더 고요하지만 빛나는 수업이 될 수 있었어요. 수업이란 그래서 관계의 질과 관련 있다 생각하기 시작했죠. 제일 좋았던 것은 수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자신을 드러낸다는 점이었어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배움은 없다 생각하거든요. 자신을 숨기는 배움이란 없어요.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과 다른 이의 삶을 받아들일 때 배움은 시작될 테니까요. 아이들과 통합적인 수업을 하며 이런 부분들이 정말 좋았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참여가 높아질수록 수업은 더 빛나기 시작해요. 그러면 어떻게 할 때 아이들이 더 열심히 참여할까요?


수업 하나=작품 하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며 아이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생각해요. 수업을 통한 신뢰구축은 앞으로의 모든 수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거든요. 수업에서 의미를 찾기도 쉬워지고, 궁극적으론 수업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아이들은 그때부턴 주도성과 더불어 자발성도 보이게 된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까요? 저의 경우엔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수업, 우리들이 함께 만든 수업이 멋진 작품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해요.


독도 디자인 수업과 전교생과 함께 그리는 독도 큰그림 그리기

독도에 대해 공부했다면 독도 작품을 멋지게 만들어보는 거죠.

우리 주변의 식물을 관찰하는 수업을 했다면 그 식물을 디자인하고 목공 작업 후 판화로 찍어서 표현해 보는 것이죠.

세계 평화를 공부했다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새롭게 그려보는 것이죠.

세계의 문화를 공부했다면 실제 같은 건축을 해 보는 것이죠.


수업 하나 = 삶의 변화


아이들이 자신들의 공부가 작품이 되는 경험을 하며 달라지기 시작해요. 수학을 싫어하던 아이가 수학에 맛을 들이기 위해선 수학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수업과 함께 변화하기 시작해요. 물론 수업 하나만으로 변화가 100%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학교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수업시간은 분명 아이의 변화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생각해요. 나움가보 곡선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수업 중 하나라 생각해요. 숫자 20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두 개의 숫자를 알아본 후 두 개의 숫자를 직선으로 연결해 보면 어느새 완벽해 보이는 곡선이 눈앞에 펼쳐지게 되죠.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할 때면 신기해하면서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 아이가 그러더군요.


“선생님, 오늘 수업을 하고 나서 제가 마음이 풀렸어요. 사실 얼마 전 엄마랑 싸웠거든요. 그런데 왜 엄마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엄마는 결과만 보셨으니 당연히 화가 날 수 있었다 생각해요. 이제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려고요.”


우리가 원하는 수업은 바로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주인 되길 원하는 수업이 아닐까 생각해요. 주인 된 삶이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에 대해 주장할 수도 있어야 하니까요. 단, 예의 바르게 말이죠.


수업 하나 = 삶의 시선 변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모범생이라 생각하세요? 그동안 저 또한 모범생을 생각하면 말 잘 듣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성실하고, 주변에 친절한 학생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에게도 변화가 찾아왔지요. 앞에서 설명한 모범생은 왠지 주변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삶 같았거든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주인공 되는 삶인데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예의 없이 굴거나, 다른 사람의 방식은 모두 틀렸다는 식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모습을 인정하며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니까요. 우리는 모두 개인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속 일원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만들어진 수업이 용기 테스트 수업이에요.


용기 테스트를 하며 아이들과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수업시간 어떤 모습이면 좋겠다를 이야기한답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 모르는 것을 모른다 이야기하는 것이 용기라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도 용기라 생각하고요. 우리 용기 있게 수업을 해 볼까요? 선생님도 모르는 것이 나오면 모른다 이야기할 거랍니다. 모른다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모르면서 아는 체, 알면서 모른 체하는 것이 진정 부끄러운 것이라 생각해요.”


거대한 악에 맞서서 싸우는 영웅은 모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생각해요. 우리가 실천할 용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주변에 진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세 가지


우리의 일상은 매일매일이 특별할 것 없어 보여요. 우리의 시선이 변화되지 못한다면요. 하지만 나의 시선을 바꿀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또한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생각해요. 지금의 시선에 저 높은 하늘 위 시선과 가장 낮은 자세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삶이 얼마나 특별한지,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지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고 봐요.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도 이런 시선이 있다 생각해요. 아이들과 있는 순간순간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나의 마음은 무엇을 느끼는지 예민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교사가 되고 싶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지 않으실래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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