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필요해!
아이들이 태어나 부모님의 품 속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사회화라고 부릅니다.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결국 혼자 서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죠. 그래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부모님의 영향을 느끼며 지낼 수 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턴 상황이 달라지게 됩니다.
낯설음!
유치원과는 다른 환경이 마음을 움츠려들게 하고 각진 책상과 사물들은 위험해 보이기만 합니다. 작은 일에도 신경쓰며 자신을 돌봐주던 손길은 저 멀리 있는 것 같은 교실에서 아이는 온전히 혼자만의 낯설음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낯설음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직접적인 영향의 하나는 교사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리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가 친절하게 대해도 아이 입장에선 유치원에서의 선생님보단 멀게 느껴질테니까요. 이렇게 시작된 초등생활은 교실이라는 공간에 대한 첫 인상을 만들어버립니다. 첫 인상에서의 느낌은 의외로 굉장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실에 대한, 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첫 인상에서부터 시작되고 끝난다는 생각입니다.
‘학교는 딱딱한 곳이다.’
‘학교에선 공부만 하는 곳이지. 공부만 잘 하면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아.’
‘선생님 중에는 좋은 분들도 많지만 우리에게 별 관심없는 선생님도 많아.’
학교를, 선생님을 큰 감정없이 바라보는 아이들(교사의 탄생 ‘아이들에게 학교란?’부분 참고)이 결국엔 우리 사회의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어른들 중에서 교사가 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학교에서 나름 공부를 잘 한다는 모범생의 경우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6년의 초등과정을, 3년의 중학과정을 그리고 3년의 고등과정을 거친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요?
낯설음으로 인한 두가지 선택
낯설음으로 시작한 학교생활의 가장 작은 단위인 학급에서 아이는 본능적으로 살아남기위해 노력합니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가야하는 학급이 낯설 때 아이는 크게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위한 행동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일엔 무관심하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행동. 첫번째 행동의 경우 그 정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주변 친구들을 괴롭히는 결과로 나타나거나 학교에서 말썽쟁이로 전락하는 일이 생길 수 있는 선택이고 두번째 행동의 경우엔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의 선택이거나 아니면 아주 영리한 아이의 선택일 수 있습니다. 내성적 성격이 아님에도 자신이 잘 모르고 낯선 상황에선 자신의 몸을 더 움츠리고 조심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할 수 있는 아이라면 영리한 아이라 할 수 있을테니까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겐 이 두가지 선택 모두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관심을 끌기위한 행동은 자칫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외면하는 무관심한 태도는 모든 일에 부정적인 시선을 먼저 가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학교에서 종종 보이는 아이들 중 공부도 열심히하고 영리해 보이는데 친구들과의 관계나 주변 일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보았을 땐 능력도 있어보이고 차분한 스타일이라 학급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라지만 반장이나 회장선거에 출마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죠. 이런 마음으로 자라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그저 수행해야 하는 하나의 단계일 뿐이지 특별한 무엇이지 않습니다.
시간의 힘
첫 인상에서의 낯설음이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어른에게 학교와 학급은 여전히 낯선 곳일 뿐입니다. 오랜시간 그렇게 여겨지던 학교나 학급은 그 속에 따뜻함이나 관계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하나의 제도나 관문으로 보일 뿐이죠. 그래서 학교와 학급이라는 누구나 경험하지만 어쩌면 가장 특별한 경험을 하는 곳을 잘 모른체로 경험을 이어갑니다. 학교나 학급이 가진 마음 깊은 곳에 주는 영향에 대해선 잘 느끼지 못하고 그 시절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이런 경험을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맙니다. 저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학교나 학급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와는 관련없는 저 멀리 하나의 대상일 뿐입니다. 내가 감내해야 할,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이라기 보단 내가 다뤄야 하는 대상으로서 보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대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경영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급경영? 학급운영?
자신이 속해있는 곳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하는 태도는 분명 필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숲 속에 들어가있을 때 숲 전체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말과 같이 내가 속해있는 곳이라도 그곳을 한발 떨어져서 볼 수 있는 태도는 필요합니다. 교사에게 학교와 학급 또한 그렇습니다. 내가 속해있는 학교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보려고 노력해야 하고, 내가 만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주요 공간인 학급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학교와 학급은 누구나 한번씩은 경험하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영향력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학교나 학급을 객관화 시키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학교나 학급에 있으며 그 속에서 지냈기 때문에 지금은 객관화하는 일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교사 또한 어린 시절 학교와 학급에 속해서 지내왔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내가 느끼던 학교와 학급은 교사로 내가 느끼고 있는 학교나 학급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와 영화감독이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같은 느낌을 가지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이죠. 결국 학교나 학급을 객관화 하는 것과 동시에 교사로서 학교나 학급의 구성원이 되어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의 느낌이 진짜 중요합니다. 그래서 학교나 학급을 객관화 시키고 대상화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학교경영이나 학급경영과 같은 말들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특히 교사로선 어색한 말들이지 싶습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우리 가족과 지낼 때 가장으로서 우리 가정경영을 잘 해 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한 것처럼 말이죠. 부부사이에 함께 살아가는 것을 부부경영이나 부부운영이라 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우리가 아이들과 경험해야 하는 것은 학교나 학급을 경영하거나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입니다.
경영엔 계획서가 필요하지만 삶엔 철학이 필요하다!
회사를 경영하려면 훌륭한 경영계획서가 필요합니다. 학교를 경영하기 위한다면 학교경영계획서가 필요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학급을 경영한다 이야기한다면 훌륭한 학급경영계획서가 필요하겠지요. 회사를 경영한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 아닙니다. 회사라는 조직이 개인에 우선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삼성에 다딘다고 하지 삼성의 누구라고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00초에 다닌다고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00초에 다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몇 학년 몇 반 누구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경험했던 학교와 학급에선 개인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학급과 학교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개인들 중엔 교사라는 개인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조직이 앞서고 조직이 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회사에선 경영원칙이 중요하고 경영계획서가 세세한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조직을 이루는 개개인의 모습이 중요한 학교에선 조직이 아닌 자신들의 삶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삶과 교사의 삶이 함께 뒤엉켜있는 곳이 바로 학교이고 학급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각의 소중한 개인들의 삶이 뒤엉켜있는 곳엔 경영계획서가 아닌 철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나 학급을 위한 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철학을 통해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회화의 첫 느낌이 진심어린 따뜻함이어야 하고 생명력이 넘쳐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각의 개인들이 모여있지만 결국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 있음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첫 느낌은 무엇보다 강렬하고 힘차게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될테니 말이죠.
교사에게 철학이란?
철학이라는 말만으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철학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단순히 단어를 찾은 것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한자어를 파해쳐보았습니다. 철학이라는 단어에서 ‘철’은 ‘밝을 철’로 그 한자를 해체해서 보면 꺽을 절과 입 구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꺽을 절은 다시 손 수와 도끼 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꺽을 절을 생각하며 밝을 철을 생각해보니 손에 도끼를 들고서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말 속에 도끼를 든 손이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둘 다 말을 하지만 손에 도끼를 들었다는 것은 같았습니다. 도끼 근의 근원을 이야기한 글을 보면 다듬는다는 의미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말을 다듬어야 한다는 말과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철학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누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아니 특히 교사에게 더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밝을 철의 의미
옳은 말을 살리되 그렇지 않은 말은 꺽고
생명을 살리는 말은 살리되 생명을 위협하는 말은 꺽고
진심이 담긴 말은 살리되 껍데기만 번지르한 말은 꺽는
그래서
우리의 삶에
옳은 말이, 생명을 살리는 말이, 진심이 담긴 말이 넘쳐나 밝은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정 밝을 철에 담긴 의미, 교육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철학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당신에게
여전히 철학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영이나 운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 교사로 시작하는 교사들에겐 잘 짜여진 경영계획서나 운영계획서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 또한 초임교사 시절에 자신의 노하우를 나눠준 많은 선배들과 동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미 세상엔 오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학급경영계획서나 운영계획서를 공개한 분들과 책으로 출판된 자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노력들 또한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단지 이제는 학급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젠 좀 더 넓혀갈 필요가 생겼다는 생각입니다. 언제까지 교사는 주어진 교과서를 잘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시선에 갇혀있을 순 없습니다. 교사는 교수들보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속에 살아갈 순 없습니다. 교사는 교사대로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교수는 교수대로 그래야 합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의 전문직도 자신들만의 전문성이 있는 것처럼 교사 또한 자신의 전문성을 더 넓혀가고 깊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이번 글은 쓰여졌습니다. 3월엔 무엇을 하면 좋고, 5월 어버이날엔 이런 활동이 좋다는 경영과 운영계획을 넘어 학급을 이루는 아이들과 교사의 삶이 어우러져 살아갈 때 필요한 철학적 담론들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학급에서 만나는 수많은 상황들을 접할 때 한번씩 곱씹어보면 좋을 것같은 담론들을 꺼내 보았습니다. 순전히 20년동안 아이들 속에서 살아가며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과 주변 동료교사들을 상담하며 생각했던 담론들입니다. 이 담론들이 실제 현장에서 새롭게 변화되고 창조되는 기쁨은 읽고 공감하신 분들의 몫이자 권리입니다.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