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끌어안기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지금도 그 선생님과의 첫 날이 생생합니다. 종이치고 보통의 아주 일반적인 선생님이시라면 교실에 들어와 ‘불을 켜시고’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자기 소개를 한 다음 잘 지내보자와 같은 형식적인 인사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좀 많이 달랐습니다. 우리 교실에 새로운 그 선생님이 들어오시기에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반 친구들도 저와 마찬가지 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불도 켜지 않으시고’ 자기 소개도 하지 않으시고 형식적인 인사도 하지 않으시고 말 한마디 없이 교탁도 아닌, 저희와 똑같은 학생의자에 앉아 저희를 (아주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쳐다보기만 하셨습니다. 당연히 당황했고 그 어두운 교실에 숨 막히는 정적이 2~3분 지났을 때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하지?’ ‘우리가 뭘 해야하지?’
그렇게 10분이 넘도록 웅성 거리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앞쪽으로 나가 교실 불을 켰습니다. 그제서야 그 선생님은 입을 열으시고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선생님과 1년을 생활하기 전에 아이들의 뇌를 살짝 깨워주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제 예상대로 그 1년은 아주 아주 아주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힘듦이 10이었다면 얻은 것은 100 아니 그 이상인 것 같습니다. 그 땐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던 것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아! 그런거였구나!’ 하고 깨닫는 것들도 많으니까요. ‘
‘교사의 탄생’ 책 마지막 글의 일부입니다. 저와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가 자신의 입장으로 쓴 편지내용입니다. 교사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매년 3월이되면 새로운 아이들과 학급을 구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겨울방학이 있어도 맘 편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교사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첫 만남은 두려운 법이니까요.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의 새학년 진급에 대한 생각은 얼마전 아이들과 함께하는 동아리활동의 결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진급에 대해 아이들은 ‘좋다, 설렌다, 화난다’라는 대답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합니다. 두렵고 속상하다는 표현이 뒤를 이었고요. 설문을 진행한 동아리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지금이 좋은데 바뀐다니 두렵다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네, 맞습니다. 누구나 변화는 두려운 법인가 봅니다.
뭘 해야하지?
첫 만남에서 가장 많이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은 ‘두려움’ 입니다. 새로운 것이 나빠서가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클 수 밖엔 없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비단 학생만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도 비슷한 감정입니다. 그리고 교사도 똑 같고요. 흔히 교사들은 매년 이러한 일을 겪고 있으니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사들도 매년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고 경력이 아무리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교사의 두려움에 대한 대처는 분명히 학생과 학부모와는 달라야 합니다. 교사가 바로 교육의 전문가이니까요. 그래서 교사들은 첫 날 무엇을 하며 아이들과 만날지를 고민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매년 첫 날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20년이 다 된 교사 생활 중 ‘첫 날 이것만 하면 된다!’ 라고 생각해 본 경험이 없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을 만나기 전 날 동네의 작은 산을 오르며 마음을 정리하던 모습이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교사로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첫 날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말고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요.
하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이기!
예전엔 저 또한 첫 날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여러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첫 날 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좋은 인상을 남길지는 잘 몰랐으니까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학급을 꾸려가야 하는 교사는 그 책임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더 긴장하게 되고 하려던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땐 실망하게 되는 제 모습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제 실망감을 아이들은 귀신같이 똑같은 감정으로 느낀다는 점이었죠. 아이들에게 첫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실망감이라는 느낌을 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실망감은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학급생활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되게 됩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격으며 흔히 찾게 되는 것은 다양한 사례들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교사의 호기심인 것이죠.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며 생활하는 곳이 다르기에 모든 것에 효과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테니까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방법이 아닌 생각의 전환을 말이죠. 저 만의 생각의 전환은 바로 ‘받아들임’입니다. 제가 만나야 될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친구들이 작년에 어땠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저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로 생각을 했습니다. 첫 만남이 두렵다면 그 두려움까지도 말이죠. 이렇게 생각을 하니 제 마음이 편안해 지더군요. 제 마음이 편해지면 그 속에서 ‘여유’가 샘솟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유가 있었기에 저만의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교실 불 켜기와 주인의식
앞에서 언급한 제자의 글 속에 교실 불을 끈채로 아이들을 바라만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보통의 교실에선 밝은 분위기에 무엇인가 장식들도 있고 칠판 가득 축하의 말들이 있을텐데 이 교실은 어둡고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은 말도 없는 이상한 분위기인 것이죠. 몇 몇의 아이들은 첫 날이면 학교에 아주 일찍와서 미리 교실을 둘러보고 다른 반도 기웃거립니다. 또 몇 명의 아이들은 학교에 늦게 오는 친구들도 있기에 모두가 교실에 모이는 시간은 9시가 넘어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인 저는 8시 40분정도부터 교실 맨 앞에 서 있습니다. 교실은 불이 꺼져 있고 칠판도 깨끗하게 닦여져 있을 뿐 어떤 내용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며 주섬주섬 교실로 들어옵니다. 자리를 어떻게 앉아야 한다는 내용도 없기에 주변의 친구들 눈치도 살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럴 땐 그저 아무 곳이나 일단 앉으면 된다고 간단하게 이야기 하고 맙니다. 어떤 분위기인지 아이가 쓴 글을 인용하면 ‘당연히 당황했고 그 어두운 교실에 숨 막히는 정적’ 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온 순간부턴 더 심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안 그래도 불안함 가득한 마음인데 앞에 계신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교실은 조용하기만 하니 말입니다. 아이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살작 미소띤 얼굴로 쳐다보며 전 가끔씩 교실을 둘러보거나 교실 천장쪽을 바라보는 행동을 합니다. 이 행동은 아이들에게 약간의 힌트를 주는 행동이고 이 행동을 통해 선생님의 의도를 파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가장 오랫동안 불을 켜지 않았을 때 10분이 지난 경우도 있었음) 누군가 일어나서 앞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교실 불을 켜게 됩니다. 그 순간 전 환하게 웃으며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며 본격적으로 제 소개를 시작합니다. 칠판에 제 이름도 크게 쓰고 말이죠. 그리고 묻습니다. 이 교실의 주인은 누구인지를 말이죠. 아이들은 대답합니다. 바로 자신들이 이 교실의 주인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이야기 합니다. 이 교실의 주인은 여러분과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 이 교실이라고. 그래서 교실의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일 정도는 여러분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선생님의 생각은 이런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봅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묘한 경우가 많습니다. 무언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느끼는 표정같기도 하고 당황한 것 같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앞에 서 있는 교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들을 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느낌은 교사에 대한 첫 느낌이기도 하고 앞으로 학급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첫 느낌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학생들끼리의 우리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함께 살아가는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교실에서 맞이하는 첫 만남 속 느낌들은 무척 중요하기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만남을 구성하는지는 무척 중요한 것입니다.
받아들임에 대한 저학년과 고학년의 차이
초등학교의 경우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은 무척 큰 성장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교사의 탄생'에서 저학년과 고학년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학년이 경험하는 세상은 고학년이 경험하는 세상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소개한 교실 불켜기의 첫 만남 모습은 고학년이기에 가능한 방법입니다. 만약 저학년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라면 이런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았을 것 같습니다.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의 전환이 중요하다 했으니 저학년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도 받아들임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고학년의 경우 받아들임의 주체는 주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모습이건 그 모습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저학년의 경우엔 다릅니다. 특히 1학년이 입학한 후 첫 만남부터 시작되는 아이들과의 생활에서 받아들여야 할 큰 부분은 사실 아이들보다는 학부모의 마음상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학부모의 경우 대부분은 젊은 부부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고학년 아이를 이미 키우고 둘째나 셋째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님의 경우완 다르게 첫 째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님의 마음은 두려움을 넘어 걱정이 꼬리를 물고 따라다니게 됩니다. 그것의 반증으로 입학초기 1학년 교실 복도엔 학부모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복도에서 창문넘어로 보이는 아이를 바라보는 학부모님들의 눈 속엔 걱정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부모님들의 마음상태와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로인해 두려움을 키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학년의 경우 받아들임의 주요 대상은 학부모님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의 마음
교사완 다르게 내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고 난 후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학부모로서 너무나 당연한 마음이고 느낌입니다. 이 느낌이 잘못되었거나 괜한 걱정이니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머리론 이해가 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을테니까 말이죠. 결국 머리로 이해한 상황을 마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나와 생활할 수 있고 그 생활을 든든한 교사가 함께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메시지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받아들임의 주요 대상이 학부모의 마음임을 잊지 말고 교사는 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학부모가 안심하게 되면 그 느낌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강하게 전달될 곳은 바로 아이의 마음일테니까요. 이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일단 학부모님들이 학교가 두려운 곳이 아니라 안전한 곳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론 밝은 분위기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밝고 환한 교실은 무엇보다 안정감을 선사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담임교사의 태도입니다. 항상 밝고 건강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활동이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실 앞에서 아이들이 오기 전 교사가 항상 먼저와서 아이들을 맞아주고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매일 본다면 학부모님들의 입장에선 믿음이 가지 않을까요? 이렇게 시작한 학교생활과 학급생활은 어쩌면 믿음이라는 느낌으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느낌이 전체 교육제도에 대한 믿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