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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원쌤 Aug 03. 2018

직업과 교사

교사의 탄생

직업인과 직장인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직업과 직장에 대한 의미가 다르다.


직업(職業) :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직장(職場) : 사람들이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곳


직장은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곳을 말한다. 좀 투박하게 해석하면 일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직장인이라고 하면 특정한 곳에 나와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누구나 그 장소에 나오면 일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학생 때 용돈과 학비를 벌어보겠다며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봉고차에 실려 가던 기억이 있다. 어디로 가서 어떤 일을 할진 모르지만 아무튼 어떤 장소에 도착하면 그곳에 마련된 일을 하는 것이다. 누가오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힘만 좀 쓸 수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일을 ‘노가다’라고 불렀다. 토목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노가다라는 말은 일본에서 유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은어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지 싶다. ‘일당 노동자’ 정도가적당할 것같다.누구든 상관없이 하루동안 일한만큼 대가를 받는다.

하지만 직업은 다르다. 직업은 국어사전에서도 밝혔듯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이런 사전적 의미보다 더 중요하게 봐야 하 는 것이 ‘業(업)’이라는 글자다.


‘業(업)’


業(업)에 대한 국어대사전에서는

‘1. 직업, 2. 부여된 과업, 3.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이라는 세 가지 의미로 설명한다. 특히 세 번째 설명이 직업의 진짜 의미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흔히 힘든 일들이 생겼을때 ‘내게 무슨 업보가 있어서 이런 일들이 생겼냐’며 한탄한다. 업의 세 번째 의미처럼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우리 스스론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존재인 것이다. ‘직업’이라는 단어에 ‘사람 인’을 붙여 ‘직업인’이라고 하는 뜻은 결국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 온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할 때 교사의 위치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교사는 전문 직이면서 더 크게는 성직이라는 내용이었다. 과연 요즘 세상에 교사라는 직업을 성직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있을까? 전문직이라는 인식조차 바라는 것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교사들의 위치는 허약해졌다. 교사라는 직업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많은 교사들의 마음속엔 스스로를 전문직이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자괴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근무하는 많은 교사들 중에는 직업인이 아니라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세상에 없는 어부가 있다면 어떤 어부일까?”


말이 이상하다. 세상에 없는 어부라니. 어부라는 직업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질문이다. 어부는무슨업을 가지고 있기에 강이나 바다처럼 물이 깊은곳에서 일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부라면 최소한 물을 무서워하진 않을 것이다. 물이 무서워 물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면 어부라는 직업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물을 잘 알아야 하고 물속의 상황에 대해 예측하고 다양한 물의 성질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어부인데 물을 무서워해서야 어부가 될 수 없지 않을까? 진정한 어부라면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넘어 물을 사랑하고 아낄 것이다. 물이 있기에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런 마음과 태도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직업인이고 어부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직업이 펼쳐지는 장소나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노가다의 경우엔 좀 다르다. 하루 동안 제공해야 할 노동의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다. 그저 실려 간 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면 되는 것이다. 주변에 대한 깊은 이해나 예측은 크게 소용이 없고 그것을 사랑하고 아낄 필요까지는 더더욱 없다. 설혹 공사장이라는 장소가 무섭더라도 큰 사고 없이 자신의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족하다. 그 장소에 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그저 묵묵히 처리하고 오는 일, 누구나 그 자리에 있게 되면 나 대신에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우리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직장인’이라고 불러야 하지 싶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일터에 나가지 않아도 그 일이 진행되는 것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래서 이런 일은 누가와서 일하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그 일과 관련된 세세한 매뉴얼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매뉴얼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만을 원할 뿐이다. 최근의 많은 직장인들의 모습이 생각나는 것은 너무 오지랖이 큰 것일까? 물론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노가다를 위해 새벽부터 승합차에 실려가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일도 우리 삶의 모습이니까. 하지만 어떤 일은 직장인의 자세로 하면 안되지 않을까?


직장인으로 살아가면 안 될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라도 누군가는 직업인으로 살아 가고 있다. 어쩌면 그런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세상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는 의사가 직장인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의사 스스로 그저 매뉴얼에 따라 처방하고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그런 자세로 살아가는 의사를 만나는 것을 원하는 환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진심을 다해 환자의 아픔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처방하는 의사를 원한다. 대형 병원에서 특진이라는 명목하에 유명한 의사선생님을 만나 치료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비슷하다. 그래서 신청한 특진인데 의사가 매뉴얼대로만 반응하고 환자의 표면적 증상만을 이야기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반면 동네의 작은 병원이지만 원장님과 솔직하고 깊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아픔에 대해 종합적인 이해와 처방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매뉴얼이 중요시 되는 세상에서 이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는 생각도 있긴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매뉴얼대로만 움직이지 않고 마음과 진심으로 자신의 직업을 ‘업’ 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귀한 것은 어쩔수없다. 의사처럼 우리에게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을 요구하는 특별한 직업이 또 있다. 바로 교사다. 직업인으로서의 교사 말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어쩌면 의사보다 더 크게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최근 몇 년 사이 교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현상 중 하나는 이런 교사의 처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교사라는 직업인으로 살아가야 함에도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수많은 일들에 치여 살아가는 교사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형태로 공유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을 인정할 수가 없다. 물을 두려워하는 어부가 없는 것처럼 아이들을 두려워하고  학교 가는 것을 어려워하는 교사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현실에서 교사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고 불합리해 보이는 여러 가지 일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은 나 또한 교사이기에 잘 알고 있다. 19년여를 교사로 지내며 그런 것에 눈감고 귀막은 채 지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을 두려 워하거나 학교 가는 것을 힘들어하며 교사로 살아오진 않았다는 점이다. 최소한 그런 생각이 들어도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왜 그랬냐고 물어 본다면 당연히 ‘난 교사니까!’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의외로 이런 이야기들이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려온다. 왜 학교가 두려운 곳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현실에 대해 잘 모르는 철부지이거나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오해받기 일쑤다. 그런데 진짜 모르겠다. 왜 교사가 학교 가는 것을 어려워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Place에서 Space까지


교사는 학교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사람이 아이들을 무서워해선 더더욱 안된다. 교사라는 직업은 내생각 속에만 갇혀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학교라는 물리적 장소(Place)에서 그곳을 어떠한 공간(Space)으로 만들어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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