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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원쌤 May 31. 2020

교육+학습=수업

융합의 조건

융합의 조건


교사들이 학교에서 수업하는 행위는 학습행위일까요? 아니면 교육행위일까요? 학습의 목표와 교육의 목표가 다르듯이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구분지을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하게 구분될 때 두가지 행위를 섞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흔히 융합을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성격의 것들이 섞여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두가지를 섞기 전 두가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과통합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각 교과가 가진 속성과 수준을 정확히 구분지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의 특성이 살아있는 융합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마찬가지입니다. 학습이 가진 특징과 교육이 가진 특징을 구별짓지 못하고 그저 수업이라는 것으로 묶어 놓게 되면 지금 우리가 진행하는 것이 학습의 과정인지, 교육의 과정인지 구별짓지 못하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교육부가 EBS와 함께 진행하며 온라인 수업을 미리 보여준 EBS의 모습엔 교육이 보인다기 보다는 학습이 주로 보였습니다. 


학습과 교육


학습은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익혀서 자신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고 얼마만큼의 이해를 했는지 평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은 학습의 내용을 포함하는 큰 영역입니다. 교육이라는 커다란 영역 속에 학습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교육은 그래서 학습과 더불어 학생 개인의 삶을 가꾸어 나갈 때 필요한 삶의 기술도 포함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삶의 모습을 익혀가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학교는 교육기관


학교는 교육기관이고 교육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흔히 인성교육이 필요하다 이야기하며 학교교육에 인성교육이 들어와야 한다 이야기하지만 사실 학교 자체는 이미 삶의 기술을 배우는 곳,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곳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성교육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삶의 기술을 학교에선 언제 배우게 되는것일까요? 수업시간엔 학습을 하고 상담시간이나 다른 시간에 인성교육을 따로 하는 것일까요? 이런 사고방식이 얼마나 허무한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수업과 학교생활은 시간으론 구별되지만 삶의 연속이라는 같은 흐름 속에 있는 하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기술을 교과시간엔 다루지 않는다면 각 교과의 목표에서 정의적 기능이나 태도부분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선 각 교과별로 정의적 영역과 태도를 다뤄야 한다 서술되어 있고 중요한 목표로 제시되어있습니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선 평가지침에도 인지적 영역과 정의적 영역이 균형있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즉, 수업의 과정은 학습을 기본으로 하되 교육의 본질을 외면해선 안되는 것이고 개인의 삶에 필요한 내용까지 포함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온라인 수업이라 하더라도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는 수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이것을 전제한 정책방향이 정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부에서 이런 구별을 하고 있는진 알 수 없었습니다. 교육을 위해 온라인 수업에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어보아도 학습에 대한 이야기 외엔 접하기 힘들었습니다. 왜 교육부의 온라인 수업은 온라인 학습이라는 프레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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