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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
2020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갈 새해의 다짐은 코로나19와 함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리 모두를 끌고 다녔습니다.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엄중함 속에서 방어적인 삶을 살아가야 했던 1학기의 마지막! 우리의 수업을 살짝 공개합니다.
4월 초!
첫 온라인 수업이 결정되고 끊임없이 물어보고 대답하던 것은 '지금 우리가 하려는 수업이 교육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수업이 단순화되지 않기를, 수업이 학습으로만 채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노력하며 지내온 것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선 앞으로도 논의되고 사유되어야 하겠지만 일단은 나름의 교육적 의도를 아이들과 나누며 살아왔다 말하고 싶습니다.
온라인 수업을 디자인하며 고려한 많은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온라인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학습자 스스로의 자발성을 유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수업이건 학습자가 가진 자발성이 전제되지 못한 수업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시간의 편린일 뿐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했을 때 아이들은 자신의 학습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될까요? 학습자의 자발성 문제는 오프라인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에 교사라면 누구나 자발성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사들이라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학습하는 것을 가장 최고로 생각할 것입니다. 교사가 아니더라도 어느 곳에 있건 자발성을 가진 사람은 환영받을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자발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것에는 정답이 없다는 점입니다. 정답이 없기에 누군가는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가 하면, 누군가는 다양한 온갖 방법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이신지요? 많은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교사들의 공통점은 처음엔 온갖 방법들을 다 시도해 본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저 또한 온갖 방법들을 시도해 본 사람 중 하나이고요. 이렇게 온갖 방법들을 최선을 다해 시도하다 보면 자신만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겠죠. 이렇게 해서 제가 찾은 길은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수업은 결국 네 것이 될 거야. 그것도 너만의 작품으로 남을 거야. 아주 멋진 작품으로 말이야."
처음 이 말을 아이들에게 전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현재 해야 할 수업에 왜 공을 들여야 하는지, 왜 마음을 담으라고 하는지, 왜 아름답게 하라고 하는지를 말이지요. 하지만 교사는 저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그 결과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진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믿었습니다. 아이들이라면, 아이들 스스로 멋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온 것은 6월이 되어서였죠.
아이들은 공책을 정리할 때도 연필이 아닌 다양한 색으로 또박또박 기록하기를 강요(?) 받았습니다. 아마 처음엔 이런 요구들이 힘들게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당연히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모르고 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교사의 요구를 강요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계속되진 않을 것을 알기에 처음엔 요구하였습니다. 그 대신 처음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내용을 다루진 않습니다. 누구나 처음엔 적응의 시간일 테니까요. 전 '시나브로'라는 우리말을 좋아합니다. '살금살금'이나 '은밀하게'보다 '시나브로'라는 말이 더 예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시나브로 적응해 갑니다. 스스론 잘 모를 수 있지만 말이지요.
"시대의 얼굴"이라는 제목의 수업이 시작되는 첫 페이지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공책에 선생님의 요구대로 멋지게 그리고 최대한 꾸며서 글을 쓰게 됩니다. 마치 작품처럼 말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공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공책을 넘어 그다음은 아이들이 가진 스케치북으로 아름다움은 넘어갑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온라인으로 듣거나 본 후엔 자신의 스케치북을 꾸며야 합니다. 교과서 속의 삽화나 사진을 오려 붙이기도 하고, 프린트가 되는 친구는 집에서 프린트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손으로 그림과 글을 가지고 꾸미는 것이라는 격려도 잊지 않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선 선생님의 안내가 필수였습니다.
비록 온라인일지라도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목소리와 선생님의 손길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필기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했고 아이들은 그런 영상을 보며 자신들의 스케치북을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작품들은 그 수준이 높아져 갔습니다. 바로 우리가 바라던 그대로 말입니다.
시대의 얼굴이라는 수업은 단순히 사회교과만을 가지고 수업을 한 것이 아닙니다. "변화"라는 큰 마음을 중심에 둔 "트렌드 2020"이라는 주제 수업의 일부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되고 있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이야길 하는 수업이었죠.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변화되어야 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사회교과서를 가지고 이런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을 것 같았고 아이들도 깊이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정치와 경제를 양쪽으로 펼쳐서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으로 합의하게 됩니다. (동학년 협의회의 결정)
시대의 얼굴 스케치북 구성
스케치북의 장점은 양면을 동시에 펼칠 수 있는 큰 공책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공책처럼 사용하기 위해 번호를 부여했습니다. 1번 부분엔 정치사 부분을, 2번 부분은 경제사 부분을, 3번 부분은 1,2번에서 키워드로 생각하는 단어를 그리고 마지막 4번 부분엔 정치사와 경제사와 관련된 인물과 그리고 관련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구성하였습니다.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 교사들은 미리 예시 작품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설명하고(온라인 쌍방향이 이럴 때 큰 도움이 됩니다.) 작품을 올려놓았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따라주었고 그 작품의 수준 또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이런 방식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결국 첫 시간에 이야기했었던 시대의 얼굴이라는 잡지책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당연히 교사들은 아이들이 어려움이 있을 땐 해결해 주기 위해 개인상담을 진행하였고 아이들의 작품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응원했습니다.
시대의 얼굴 수업은 온라인 수업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생각해야 할 다른 부분도 생각한 수업입니다.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온라인 수업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수업이었습니다. 온라인 수업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라면 무엇일까요? 전 다른 부분보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컸습니다. 교육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으로 인해 건강을 해친다면 그것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테니까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화면을 적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 일지를 말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되었기에 온라인 영상의 길이를 10분 내외로만 만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화면을 바라보지 않아도 될 수업을 디자인하려 노력했습니다. 설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보더라도 오랫동안이 되지 않도록 말이지요. 시대의 얼굴 수업은 수업에 필요한 안내 영상을 보고 나면 자신의 스케치북과 사회책을 참고해서 스스로 꾸미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잠시 잠시 볼 순 있지만 집중해서 봐야 할 대상은 책과 스케치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실제 학교에 나와서 수업을 받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이 수업의 또 다른 의미입니다.
온라인 수업에서 아이들이 각자의 집에서 혼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줘야 함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각자가 시대의 얼굴 작품을 만들었고 그 작품을 이젠 실제 잡지책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실제 앨범을 제작하는 업체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온라인 세상엔 온라인 현상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곳 중 하나를 선택하고 아이들에게 안내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모두가 자신의 앨범을 스스로 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경우 어른들보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익히는데 시간이 짧게 걸립니다. 특히 온라인일 땐 더 그렇지요. 아이들은 익숙하지 않을 것 같은 온라인 앨범 제작에 쉽게 적응했습니다.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아이들 중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작업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 작업은 휴대폰이나 태블릿으론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낸 후 줌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신의 앨범을 선생님과 함께 꾸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교 등교 수업이 한 번도 이뤄지기 전, 시대의 얼굴 작업은 거의 끝난 상태였습니다. 마무리 작업 및 학교에서의 지출을 위한 업무만 남은 상태였고 드디어 받게 된 자신만의 세상 하나뿐인 작품!
앨범이 담긴 상자가 행정실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우리 교사들도 뛰어내려 가 보았답니다. 이런 마음은 아이들도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소중한 작품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글들이 아이들에게서 쏟아져 나올 때 교사는 가장 행복합니다. 결국 교사는 아이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요.
시대의 얼굴 이후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네, 아이들은 처음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금 하는 일에 스스로 나서서 마음을 다하고 있답니다. 비록 온라인이라 어려움이 크지만 아이들은 정말 훌륭하게 스스로 힘을 내어주고 있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교사로 살아가는 이 순간이 너무 보람되고 좋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어릴 땐 컴퓨터도 못하게 하고 휴대폰도 주지 않는다 하더라고요."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이야길 들어보셨나요? 저 말의 진위까진 제가 알 순 없습니다. 단지 온라인 세상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보여주는 말 같아서 언급을 해 보았습니다. 온라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도 아니고 나쁜 세상만도 아닙니다. 내가 어릴 때 없었던 세상이라고 해서 그 세상은 무언가 부족한 세상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변화되는 세상에서 혼자만 변화를 거부하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온라인 세상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우리의 현실 세상과 마찬가지의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함께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부모님들과 상담할 때 말씀드립니다. "아이에게 휴대폰을 주지 않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안내해야 하는 사람이 우리라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아이는 결국 휴대폰을 사용할 수 밖엔 없을 테니까요."
온라인 세상을 인정하고, 온라인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떤 것을 꿈꿀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온라인 세상과 지금 네가 존재하는 세상 사이에 균형이 필요함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온라인 수업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이 아닌 수업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 수업이 더 좋다가 아니라 어느 쪽이건 마음을 다해서 하길 바란다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담은 수업이 교육이다!
얼마 전 영화를 보며 평범하지만 위대한 생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노래대회의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목표로만 살아온 주인공이었습니다. 우승이 아니면 모든 것은 실패로 규정짓고 살아온 삶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깨닫게 됩니다. 우승한 노래가 위대한 노래가 아니라 마음을 담은 노래가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것이라고 머리론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우리의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의 수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수업 도구, 화려한 수업 영상, 화려한 수업방법이 아닌 그저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수업이면 우리가 원하는 교육은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요? 전 그렇게 믿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