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기, 곁눈질로 바라보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맞춤형 서비스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말 그대로 나에게 최적화된 서비스가 보편화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것에 아낌없이 소비를 한다.
최근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기 시작한 부분 중 하나는 단연코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 the Top) 서비스이다.
사람들은 집에서의 여가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당연하게도 넷플릭스는 호황을 맞게 된다.
그런데 넷플릭스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적이 한결같을까?
일단, 누구나 넷플릭스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자 할 것이다.
모든 소비의 핵심은 즐거움에 있고 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넷플릭스 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넷플릭스를 소비하는 것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진 않다.
그럼 어떻게 보냐고?
넷플릭스 무료 시청 기간을 거친 후 주저 없이 결재를 했었다. 왜 그랬냐고 누가 물어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엄청난 기술을 경험할 수 있어서요."
그동안의 우리나라에서 제공되는 동영상 서비스와는 너무나 다른 차별성을 넷플릭스는 제공했다.
엄청난 화질과 나름 최적화된 사운드까지 갖추고 있으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빨랐다. 그동안 다른 서비스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매끄러운 작동이 신기할 뿐이었다. 거기다 드라마의 경우 시작할 때 나오는 오프닝을 매번 봐야 하거나 스킵하느라 힘들게 조작했던 기억은 넷플릭스에선 되풀이되지 않았다. 오프닝을 한 두 번 스킵하고 나면 넷플릭스가 알아서 스킵하는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인공지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 시대에 가장 앞서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는 나에겐 소비재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는 생산재에 가까운 것이었다.
넷플릭스를 구독한 지 일 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시간 날 때마다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나 또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사용했다. 새로운 세상과 만나며 상상력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수많은 영상 속 무엇을 볼 것인가와 끝없이 다퉈야 하고, 내가 찜한 콘텐츠는 쌓여만 가고 보진 못한다. 언제 볼지 알 수 없고 어떤 것은 어느새 넷플릭스에서 사라진 영상이 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며 살짝의 권태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서비스로 눈을 돌려보려고 알아보고 무료 서비스를 받아보았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경험을 제공하면서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아직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넷플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그동안 접하기 어려운 다른 나라권의 드라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독일 드라마들은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드라마들이고 아주 좋은 것들이 많았다.
프랑스 드라마 - 라 레볼뤼시옹 (킹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이야기이다.)
독일 드라마 - 다크(무언가 완전히 새로운 장르 혹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조금은 복잡한 이야길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드라마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도 어떤 것은 본방송과 함께 편성되어 올라오는 것도 있었고 지나간 명작들도 많이 있다.
한국 드라마 - 슬기로운 감빵생활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쌓여만 가지 보진 못하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가 아니라 무엇을 봐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아주 적은 시간 시청할 뿐이었다. 이래선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쌓여있기만 하고 해결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낀다. 이 불안감은 결국 무엇인가를 실행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악순환을 계속 만들어낸다. 결국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고, 도전하지 못하게 만든다. 현대인이기에 겪는 많은 어려움 중 하나는 '선택 장애'가 아닌가 싶다. 말 그대로 무엇을 선택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힘들다는 것이다. 선택 장애의 기본 조건은 당연하게도 선택할 것들이 많이 있을 때라는 것이다. 선택할 것들이 많으면 좋다는 것은 그 선택이 적절하게 이뤄질 때 이야기이지 선택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선택의 가짓수만 늘어난다면 오히려 선택을 더 방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은 그래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다양한 것이 있기에 선택의 폭이 넓지만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선택을 못하는 것도 동시에 찾아온다. 그리고 쌓여만가는 내가 보고 싶다 표시한 것들은 이러한 상황을 더 부추긴다. 이럴 때 해결책은 단 하나이다. 쌓아두지만 말로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소비를 통해 쌓아 둔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게 되어야 우리는 새로운 것을 또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넷플을 사용하는 슬기로운 방법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외국 드라마의 경우엔 집중해서 볼 수 밖엔 없었다. 일단, 언어가 다르기에 자막을 열심히 봐야 했고, 새로운 이야기와 문화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외국 드라마를 보려면 마음먹고 봐야 하는 것이다. 시간을 특별히 내어서. 하지만 한국 드라마의 경우엔 달랐다. 그 시기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라면 한번 더 보거나 혹은 보지 못한 것을 챙겨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 드라마는 접근하기가 쉽다는 점이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귀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준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가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음악과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른 소음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집에서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를 배경으로 삼고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화면을 계속해서 보지 않아도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 어려움이 없다. 가끔은 중요해 보이는 장면에선 하던 일을 멈추고 시청하면 되는 것이다. 예전 케이블 TV를 볼 때 하루 종일 화면을 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를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집중해서 볼 때도 있다. 보통 나의 경우는 중반 정도로 드라마가 진행된 이후엔 그렇게 하는 편이다. 초반엔 이야기 구조상 갈등을 만들어내기 위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경우를 잘 못 보는 성격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다. 그런데 의외로 나에겐 이것이 문제가 된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 하나를 마음먹고 보려고 앉았는데 초반의 그 어색한 갈등이 도저히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드라마를 보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이렇게 곁눈질로 보다 보면 그런 장면은 그냥 슬쩍 넘어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그 부분을 넘기고 적당히 캐릭터와 상황에 익숙해지면 그때부턴 집중해서 볼 수 있고 재미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쌓여있던 것이 하나씩 해소되어갈 때 외국드라마를 볼 힘도 생기는 것 같았다. 새롭지만 집중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난 교사다. 결국 무엇을 하건, 무엇을 보건 그것이 교육과 연계된 생각으로 이르게 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엔 그렇다는 것이다. 넷플을 접하고 그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보며 나의 학교생활을,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생각했다. 아이들도 하루하루 쏟아지는 수업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고, 수많은 교육정책 속에서 나 또한 다르지 않음을 생각했다. 결국 우리에겐 선택의 기회가 없거나 주어진 것들이 다양하지 않아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선택하라고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렇다. 드라마를 곁눈질로 보며 일정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드라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나의 모습처럼 현실 속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그런 행동이 허용되어야 한다. 잠시 느리게 가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잠시 곁으로 빠지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단지 그것과 이별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마 다시 집중해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분명히.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 있는 대사 한 줄을 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생활은 새로움과 깨달음으로 채워지며 살아가게 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대사 중 한 줄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