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원쌤 Mar 21. 2021

기후위기와 교육과정

#생명 #학생자치

1. 생명의 무게


“동학은 경물(敬物)까지 가더라. 만물이 귀하다는 거다.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까지 허문다. 특히 동학의 ‘생명 십계명’이 감동이었다. 해월 최시형은 ‘나무라도 생 순을 꺾지 말라’고 가르쳤다. 북미 원주민들이 마을 어귀에 있는 바위 하나를 옮길 때도 일곱 세대를 내다보고 판단하라고 했던 것과 통한다.”
출처: ‘자연과 더불어 사는 하나님나라 꿈꾸는 생태여성 신학자’ 숭실대 구미정 교수, 뉴스엔조이


동학의 생명 십계명은 검색으로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기사에 소개된 나무라도 생 순을 꺾지 말라는 정신이 동학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고, 무척 환생교(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스럽다고 생각했답니다. 저에게 환생교는 작은 싹 하나라도 나와 같은 생명의 무게를 가진 존재임을 알려준 곳이었으니까요. 심지어 북미 원주민들이 바위 하나를 옮길 때에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예시는 평소 마음 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저의 생각이자, 모든 환생교 교사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지 않을까요? 


“애들아. 이 세상엔 잡초라 이름 붙여지고 살아가는 것은 없어. 모든 것이 소중하고 소중한 존재란다.”


어쩌면 이 평범한 대사 하나가 환생교 교사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침 나들이를 하며 찍었던 예전 사진


2. 교사의 삶과 교육적 실천


환경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교사들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건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하려 노력하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의 형태는 ‘동아리’를 조직하는 것이었어요. 동아리 선발의 절차와 동아리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아이들과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길 나누고 싶었으니까요. 동아리 활동의 성과 덕분에 이런저런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얻기도 하고,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동아리를 조직해서 몇 년간 운영한 저에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느껴졌어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 아이들 이외엔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 부족했던 것이었죠. 물론 동아리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을 소개하였지만 그것이 동아리 아이들만큼 깊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죠.


“선생님, 00 이가 비둘기 둥지에 있던 비둘기 알을 떨어뜨려서 알이 다 깨졌어요. 어떻게 해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고 우리가 쉬는 시간마다 지켰는데도요.”


울먹이는 얼굴로 달려와 저에게 비둘기 알이 깨져서 흩어진 모습을 설명하는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환경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모두와 함께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모두와 함께 말이죠.


3. 함께한다는 의미 속 교육과정


생태계를 공부하면 필연적으로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생각해요. 바로 혼자만의 세상은 없다는 것이죠.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고 그렇기에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인식하는 것을 제가 하려는 교육에 담고 싶었어요. 이런 마음속 울림이 구체적 형태로 드러난 것이 교육과정의 재구성이랍니다. 


“국어, 수학, 도덕, 사회,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실과, 영어로 교과서는 나눠져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교과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우리가 어떤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할지 알려주는 것이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혼자만 따로 분리된 것은 없어요.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교육과정의 진정한 의미라 생각한답니다. 저의 이런 생각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과정의 흐름과도 일정 부분 궤를 같이 하고 있어요. 4차 교육과정에서 ‘통합교과’라는 말이 등장한 후 통합이라는 말은 6차까지 꾸준히 등장하지요. 7차부턴 통합이라는 말 대신에 ‘주제’라는 말이 등장하고 2009개정 교육과정에선 1, 2학년에 주제별 교과서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어요. 주제 교과서는 그동안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교과가 아니라 다양한 교과서 서로 관계 맺고 융합되어 만들어진 교과라는 점에서 특별하죠. 이처럼 잇고 연결 지으며 관계를 만드는 것이 교육과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을 때 그 학교가 가진, 그 학년이 가진, 그 학급이 가진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생각하고요. 그래서 학교 교육과정은 학교 문화를 담는 커다란 그릇이 되는 것이죠.

문화라는 맥락으로 이어진 교사, 학년, 학교교육과정의 모습


4. 기후위기에 앞장서는 기업들


코로나19로 인해 ‘환경교육’이라는 말보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엄중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학교가 아닌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이익으로만 똘똘 뭉치고 다른 가치들은 소홀히 대하던 기업들이 앞 다투어 기후위기 대응책을 내어놓고 있지요. ‘ESG 경영’을 추구하는 기업들 소식이 매일 뉴스로 전해지고 있어요. 물론 기업들의 이러한 변화도 결국 돈과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환경에, 기후위기에 반응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랍니다. 도시락 업체로 유명한 한 기업에서도 ESG경영을 실천하겠다며 보도자료를 내고 일회용 사용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은 진작부터 우리가 원하던 모습이 아닐까요?


5. 기후위기 교육에 앞장서야 할 학교


제가 생각하는 학교의 모습은 어둑한 세상 속 희망 봉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봉우리 끝에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이 학교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무한경쟁이 세상의 모습이라면 협력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학교에서 교육하면 좋겠다 생각했고, 개발과 발전을 위해 나누고 가르는 일이 세상의 일이라면 합치고 함께하는 일이 학교의 교육이라 생각하고 실천했죠. 세상 속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학교 안에서 더 성장시키고 나누는 일도 학교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죠. 그렇다면 지금 세상의 많은 곳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목소리를 높이는 이 시기, 학교에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 교육과정 속에선 기후위기에 대한 내용이 총론에 포함되어있진 않아요. 물론 각 교과 속 내용 요소들엔 포함되어있지만요. 학교교육과정도 살펴보면 학년 별로 교과 별로 기후위기 관련 교육내용을 담을 순 있어요. 하지만 학교교육의 목표나 추구하는 학교 상엔 포함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마 대부분 그런 부분을 넣진 않았을지 싶어요. 자, 그렇다면 환생교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생길 것 같지 않나요?


6. 교육과정 만들기는 우리의 이야기 만들기


“우리 학교 교육과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학년 교육과정은 시수만 잘 맞추면 되지 않나요? 어차피 보지도 않을 건데.”


최근엔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졌다고 하지요. 하지만 여전히 교육과정은 행정문서처럼 취급받는 곳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되었느냐를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에게 교육과정은 누군가 혼자서 뚝딱 만들어낸 문서인 경우가 많아서라고 생각해요. 그 누군가가 보통은 학교라면 연구나 교무부장이, 학년이라면 학년부장이거나 학년에서 가장 어린 선생님이. 교육과정이 일로, 업무로 취급받게 되면 누구나 그 일을 피하고 싶어 하지 더 들여다보려고는 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이 문제의 해답에 ‘이야기’가 있다 생각해요. 이야기는 힘이 세거든요. 무언가 멋진 말들로 가득 채워진 문서가 아니라 우리의 실제 이야기, 우리가 진짜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그 속에 담긴다면 그 이야기는 아마 날개를 달고 퍼져나가 문화를 만들어낼 거라 믿으니까요. 


7. 공감하는 교육과정 만들기


학교교육과정에 기반한 학년 교육과정의 핵심은 이야기가 있는 교육육과정이라 정했어요. 그 이야기를 채워가고 만들어가는 존재는 당연히 학생, 학부모, 교사여야 하고요.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세 가지를 정했죠. 물론 동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협의하고 정한 것이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더불어 살아가기’라는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상이 있어요. 아마 학교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그대로 사용하되 더 넓은 개념으로 확장하자고 했어요. 바로 사람을 넘어 모든 ‘생명’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고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Eco’가 탄생했어요. 사회의 기업들이 요즘 지향하는 ESG경영을 생각하며 우리도 영어 약자로 써 보았답니다. 

두 번째로 생각한 것은 ‘Action’이었어요. 왜냐하면 초등의 발달단계에선 실제적인 활동이 무엇보다 효과적인 수업의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공부한 것을 혼자만의 것으로 끝내긴 보단 함께 나누는 실천을 생각해서였어요.

마지막으로 ‘Community’는 공동체의 가치로 우리 학년의 교육과정에 바탕이 되는 것이라 넣었어요. 무엇을 하건 함께하는 학년, 함께 공부하고 함께 실천하는 공동체가 우리의 이야기일 테니까요.


8. 우리의 이야길 살짝 보실까요?

동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우리의 교육 모습을 그려보았어요. 모든 생명을 포함하는 교육, 보이지 않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는 교육이 첫 번째 이야기로 나오고, 이어서 가치가 있는 교육, 최선을 다하는 교육, 성장하는 교육 등 우리의 이야길 담은 것이 학년의 교육과정인 것이죠.

물론, 교육과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교육과정 성취기준과 계획도 포함되지만 그것을 포함시키기 이전에 먼저 함께하는 교사들의 생각과 이야길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면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이야긴 어떻게 포함시킬까요? 일단, 학부모님들과의 소통을 위해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인 것은 다들 아시죠? 그런데 소통이라는 말로만으론 막연할 수 있죠. 그래서 ‘교육과정 설명회’라는 것을 진행해요. 올해도 교육과정 설명회를 진행했죠. 비록 온라인이긴 했지만 30여분의 부모님들께서 함께 해 주셨답니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부모님들과 아이의 성장에 대해, 아이의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자 손 내미는 것이죠. 결국 학교에서의 수업을 진행하는 핵심엔 교사와 학생이 있으니까요. 부모님과는 그 내용에 대해 항상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그럼 이제 아이들과의 이야기가 남았네요. 어떻게 이야길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9.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우리들의 이야기 – 학생자치


학생자치가 최근 중요한 교육적 화두로 회자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생각해요. 그런데 학생자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엔 얼마나 변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있기도 합니다. 학생자치를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시기와 방법에 대해선 예전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인 것이죠. 학생들 중 대표를 뽑아서 그 대표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거기서 결정된 사항을 학교의 장에게 말씀드리고 실행하면 진정한 학교자치가 이뤄진 것일까요? 학생 자치력을 올리기 위해 자치회에 소속된 아이들에게 리더십 캠프와 같은 특별 프로그램을 제공해서 아이들의 역량을 키우면 학생자치가 이뤄지는 것일까요? 모든 생명의 무게가 다 똑같다는 생각을 가진 저에게 이런 학생자치의 형태는 불편하답니다. 누구라도 대표가 될 수 있고, 누구라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생각하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제가 가진 생태적 관점에 어울리는 학생자치의 모습일 테니까요. 실제로 오랫동안 학생자치회를 구성하지 않고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을 땐 누구라도 이야기를 하는 교육을 진행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도 확인할 수 있었죠. 물론 제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지만 제가 속한 학교에서의 현상이기도 하니까 나름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왜냐하면 그렇게 지낸 지 10년이 넘었으니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표를 선정하고 학생자치회가 특별하게 구성되지 않았어도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누군가 들어주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충분히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학생회가 없었음에도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다양한 학생회 활동을 어느 학교의 아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서 어느 해엔 학생회 임원 전체가 제가 속한 학교의 출신 아이들인 경우도 있었죠. 그리고 그 아이들은 이야기해요. 자신들은 그저 자신이 생각한 것을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래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임원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요. 

앞서 생태교육의 초반에 동아리를 구성해서 활동했던 제 경험과 비슷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특별히 선정된 아이들과의 활동은 그 아이들과 활동을 주도한 교사에겐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되지요. 그리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도 돋보이기도 쉬워요. 하지만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돋보이지도 않고 평범해 보일 순 있겠죠. 그래도 제가 동아리를 버리고 모두가 함께하는 문화로 생각을 바꾼 것은 그것이 장기적으론 더 큰 교육적 효과를 줄 것이라 믿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학생 자치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안 되는 것일까요?

올해, 저는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어요. 당연히 낯설고 익숙하지 못해서 실수도 많아요.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멈추지 않고 있고, 학생자치에 대한 놀라운 시도를 아이들과 계획하고 진행 중입니다. 그 진행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모두가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이번 학생자치 활동과 함께 잘 꽃 피우길 바라고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언젠가 지금의 새로운 시도가 어떻게 흘러왔고 어떤 결과들을 보여주었는지 이야기할 때가 있겠지요. 우리의 학생자치 계획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학년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모든 환생교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가장 귀하고 소중한 행위를 함께하는 모든 교사들과 학생, 힘내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교육과정 &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