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Me 여전히 나
-그 틈에 나는 피어났다
어떤 향은 말보다 먼저 마음을 만진다.
그건 아주 은은하고 부드러우며,
오랫동안 곁에 있다가도 문득 사라져 버리는 향.
그러다 또 어느 날, 따뜻한 빛처럼 돌아오는 향.
나는 그 경계에 오래 서 있었다.
장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장애인도 아닌,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
18살이 되어서야 내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세상은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사람들의 말은 점점 멀어졌고,
나는 점점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늘 밝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잘 지내?”라는 말에 “응, 잘 지내!”라고 웃으며 대답하던 그때의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조차도 나를 속이며 살았던 시간들.
연기하는 인생이었다.
언제나 괜찮은 척, 충분한 척,
아무렇지 않은 사람인 척.
그런데
그 연기들이 모이고 쌓여
지금의 ‘진짜 나’를 만들었다는 걸
어느 날 문득 알게 됐다.
나는 연기 속에서 진짜를 배웠다.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 나를 돌보는 법,
그리고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법.
그리고 37살이 되어서야,
나는 내게 주어진 이름을 제대로 받아들였다.
청각장애인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부끄러움이나 슬픔이 아닌,
그저 내 삶을 설명해 주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이 향은, 그런 나를 위한 향이다.
처음엔 가볍고 투명한 시트러스 향이 코끝을 스친다.
그건 마치 “괜찮은 척” 웃으며 건네던 내 웃음 같다.
그러다 이내 부드럽고 따뜻한 머스크 향이 퍼진다.
그건 오래도록 숨기고 있었던,
하지만 결국 나를 감싸 안게 된 나 자신의 진심이다.
마지막으로 잔향은 아주 오래 머무는 우디한 향.
그건 아마도, 이 모든 시간을 지나
조금은 단단해진 지금의 내가 남긴 흔적일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경계에만 서 있지 않다.
경계를 지나, 내 안의 햇살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이 향이, 같은 경계 위에 선 누군가에게
살며시 말을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괜찮아. 너는, 너 그대로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