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수의 사칙연산만 잘해도...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연산을 잘하는 아이를 많이 봤다.
나는 큰아이 7살 때부터, 영어 홈스쿨링을 해주고 있어서, 수학에는 많이 신경 쓰지 못했었는데,
이런 나의 불안함이 연료가 되어 부랴부랴 1학년 때 구O 수학을 시작했다.
지인이 있었기도 했고, 그걸 꾸준히 한 6학년을 보니 가히 그 결과가 대단하여 혹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학년 담임 선생님과 상담할 때, 초등학교 때는 연산 속도를 빨리 해주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추가로 당부하시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 공부량은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지 않을 정도'로 하라고...
특히 저학년은, input = output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가 잘 따라오기 때문에 (특히, 첫째들)
부모들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고...
아이는 진즉에 수학 학습지를 그만하고 싶어 했다. 급기야 남편은 학습지 문제들을 보더니 암기가 목표냐고 놀렸다.
아이가 연산이 느리기도 해서 이걸 끌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엄청 고민하다가,,,
결국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이와 약속한 1년을 꾸역꾸역 채우고 그만두었다.
그 이후에는, '수'의 감각을 건드려보고자 주판도 시켜보고,,, 보수 놀이도 하고,,,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셈하면 됐지, 하필 가르기 기법(10을 만들어 연산하는 방법)으로 셈하는 것을 강요하여, 아이를 어렵게 하는지 교과과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르기 기법의 예 : 8+7 = 8 + 2 + 5 (이런 식으로 10을 만들어서 계산하는 방법)
아무리 효율적인 계산법이라고 해도, 어른에게나 훤히 보이는 방식일 텐데,
계산법의 한 종류로 소개하는 정도가 알맞다고 생각한다! (화르르...)
2학년 때부터는 학교 방과 후 수학으로 복습을 하고, 방학에는 내가 한 학기 예습을 해주는 형태로 진행했고,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직 구O 수학의 암기 비슷했던 연산법이 먹히고 있었음... 은 부정할 수 없다.
효과는 좋은데, 반복되는 문제는 좀 너무하긴 했다. ㅇㅈ
3학년에는 나누기와 분수가 등장한다. 개념적으로는 특이사항은 없었는데, 나누기를 분수로 또는 분수를 나누기로 서로 막~ 바꿔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혼란이 왔다.
나누기는 분수랑 같은 것인지, 어떨 때는 나누기를 분수로 써야 하고, 또 어떨 때는 분수를 나누기로 계산해야 하는 것인지...
일례로 내가 설명을 일목요연하게 하지 못했던 웃픈 사례를 소개한다.
4 ÷ 5 = 4/5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빵 한 개를 5명이 나눠 먹는데, 빵이 4개가 있네.
(엄마) ■□□□□ + ■□□□□ + ■□□□□ + ■□□□□ = 1/5 + 1/5 + 1/5 + 1/5 = 4/5
(아이) ■□□□□ + ■□□□□ + ■□□□□ + ■□□□□ = 4/20 에잉?
이렇게 지금은 아주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기준이 1이라는 얘기를 해줘야 했던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이때 분수와 나누기의 관계(?)를 알기 위해 엄청 초등수학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었다.
어느 일본 사람이 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나도 납득할 수 있었다.
나누기는 더하기, 곱하기, 빼기 같은 연산자 중 하나이고,
분수는 나누기 연산으로 나온 값인데, 자연수, 소수 같이 값을 나타내는 수의 한 형태라고...
즉, 2+3=5라고 쓰듯이 2÷3=2/3으로 쓴다고 결론 내렸다.
초등 수학, 뭐 별거 있나 생각했는데 아이를 통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는 것인가; 미소 지으며 추억을 소환해 보았다.
5학년 때부터는 사칙연산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져 나오는데, 특히 분모가 다른 분수의 연산을 하면서
곱하기, 더하기, 빼기의 연산이 빠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셈이 느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면서 아이는 답답함을 많이 느꼈고, 연산을 연습해야겠다는 결심까지 생길 정도였다.
다행히 초등 교육의 모토가 모두를 잘 이끌어 가는 것이기에,,,
의지가 있었던 우리 아이는, 흔히 말하는 수포자 대열에 끼지 않고 무난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대망의 6학년. 정말 많은 아이가 중학교 선행을 한다.
우리 아이도 불안했나 보다. 어느 날 불쑥 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미친 듯이 동네 수학학원을 알아봤다.
셔틀 타고 가는 학원은 안 보내는 나만의 철칙이 있어서, 최대한 동네 수학학원에 전화를 쭉 돌렸다.
수학을 삼키는 학원, 더 쎄게 하는 학원, 김쌤/정쌤/한쌤/강쌤... 수학, 정상, 천재, 너무 다양했으나,
가격은 모두 사악했다. 무슨 중학교 기껏해야 1차 방정식일 텐데 35만 원씩이나!!
많은 선생님을 찾아뵙고, 수업하는 방식도 찾아봤는데, 아이가 아직 어린데 너무 입시처럼 하는 데가 많았다.
상담하는 학원 원장님들이 내게 하시는 말씀은 하나 같이 너무 늦었다는 거였다.
지금 고1꺼 들어가야 한다나... (옆집 엄마가 이 말할 때는 진심 과장하는 줄 알았음)
하나 같이 마음에 드는 학원이 없었다. 우리 딸이 남들이 물어보지 않는 질문을 많이 하기도 하고, 좀 지엽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럴 때 웃으며 토론해 줄 수 있는 덕망 있는 선생님을 찾으려니 그게 어디 쉽나.
이런 경우가 매우 드물 것 같은데, 우연히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을 수소문하여 찾았다.
이젠 나이가 지긋하시지만, 허무맹랑한 우리 아이 질문도 잘 받아주실 만한, 또 우리 아이를 손녀처럼 봐주실 할머니 선생님이셔서 더욱 좋았다. 젊은 선생님도 좋지만,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인 만큼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이를 가르쳐주실 선생님을 원했기 때문에 딱 좋았다.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니게 되니, 숙제 외에는 공부하지 않던 수학에 하루에 한 시간씩 꼬박꼬박 할애를 하니 실력이 어디 안 늘고 배기겠나. 2학기에는 꽤 신이 났다. 제법 쪽지시험을 다 맞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수학은 어렵댄다.
물끄러미 수학 숙제하던 아이를 보다가 불쑥 물었다.
"친구 중에 벌써 수포자 있어?"
"응, 있긴 있어"
"초등학교 수학 과정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데, 왜 수포자가 벌써 생길까?"
"하기 싫다고 안 하니까 수포자지"
"그럼 너는,, 하고 싶은 건 아니라며?"
"나중에 하고 싶은 거 하려면, 이거(수학) 안 하면 안 되니까,,, 나도 수학 별로긴 하지만 그래도 하니까 수포자가 아닌 거야"
"그래.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다니 대견하다. 우리 딸, 대단해"
6학년까지 공부가 싫지 않게만 잘 유지하라는 1학년 담임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싫은 과목이 생기긴 하겠지만, 왜 꼭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딸은 지금 중학교 1학년 수학을 배우고 있다. 여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신기한 질문을 한다.
"왜 더하기 빼기를 배운 거야, 처음부터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가르치지, 배신당한 거 같아 황당해."
아이에게는 마냥 황당한 수학이지만, 한 발 한 발 그 황당함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우리 딸에게 응원을 보낸다.